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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경종을 울리는 이용수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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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운동'에 경종을 울리는 이용수의 절규

[좋은나라이슈페이퍼] 윤미향과 이용수의 정치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

이용수 할머니는 두 번의 배신을 당했다. 한번은 주권을 빼앗긴 무능한 조국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다른 한번은 윤미향과 정의연의 반일 민족주의운동 노선에 배신을 당했다. 배신감에 울부짖는 이용수의 절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의 언급대로, 국가와 정치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권을 빼앗겨서 보편적 인권보장을 주장할 수 없는 무국적자의 헐벗은 생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국가를 빼앗긴 조선 위정자들의 무능으로 인해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연약한 생명들은 전쟁국가 군대의 도구로 끌려가 끔찍하고, 헐벗은 상처뿐인 삶을 살았다.

헐벗은 생명들은 겨우 해방되어 상처뿐인 몸을 추스르기 위해 정대협/정의연에 소속되었지만 거기에서도 치유를 위한 시민권의 회복과 인간다움을 온전하게 보장받기는커녕 운동의 이념으로 반일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운동권 조직의 도구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많은 의사결정에서 소외되는 상처를 입었다. 이용수의 절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스런 처지에 공감하지 못하고 소통능력이 부족한 반일 민족주의 운동권이 저지르고 있는 '악의 평범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필자)

이용수의 절규를 부인하고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 드디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운동방식과 회계투명성의 문제점 및 공직자로서 부적절성을 지적한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를 끝내 외면한 것은 씁쓸하다.

특히, 그가 조국, 김의겸, 양정숙 등과 같이, 입으로는 진보를 말하지만 생활적으로는 보수기득권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는 강남좌파와 운동경험을 입신출세와 정치진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586 운동권의 퇴행적 모습을 답습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윤미향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당선자 신분으로 5월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 자신과 정의연에 쏟아진 의혹들을 해명하고자 했다. 윤 당선자는 기자회견이 늦어진 데 대해 "30년의 활동을 돌아보고 장부와 기록을 뒤져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윤 당선자가 받아왔던 의혹은 안성 힐링센터 고가 매입, 자신과 가족들의 주택 구매 대금, 딸 유학 비용 출처, 개인계좌를 통한 후원금 모금 등이다. 윤 당선자는 개인계좌를 통한 후원금 모금과 관련해 "안이하게 행동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며 잘못을 인정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또 위안부 피해자들과 "더 섬세하게 공감하지 못한 점"은 성찰한다고 사과했지만, 국회의원 사퇴론은 일축했다.

윤 당선인은 입장문에서 "피해자들에게 현금 지원을 목적으로 모금한 돈은 전달한 적이 없다는 이 할머니의 주장에 대해 이 할머니의 지적과 고견을 깊게 새기는 것과 별개로 이 할머니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론했다.

윤 당선자는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어 세세한 내용을 모두 말씀드릴 순 없다"며 "부족한 점은 검찰 조사와 추가 설명을 통해 한 점 의혹 없이 소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윤 당선자의 기자회견은 제기된 의혹에 대한 성실한 해명보다는 도마뱀 꼬리자르기식으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요식절차로 이용된 측면이 커 보인다. 생활하는 일반 시민들이 딸 유학과 주택구입에 들어가는 돈의 출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돈이 어디서 났을까? 라는 의문에 대해 해명을 뒷받침할 개인계좌 거래내역 등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의혹이 충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제 남은 과제는 검찰과 사법부의 유무죄에 대한 판결을 지켜보는 일과 별도로 거취를 정하지 못한 민주당이 '윤미향 사퇴론'에 다시 나서도록 국민여론을 조성하는 일이고, 또한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위안부 운동방식의 문제점인 증오를 부르는 민족주의 운동노선에 대한 평가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이 윤미향 사퇴를 결정하지 못한 배경

민주당은 부동산 투기의혹 등을 받았던 양정숙 당선자의 제명처리와 비교해 볼 때, 윤미향에 대한 거취를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윤미향 사퇴론에 다시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인들이 사퇴론을 방해하고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략 세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정치적 재판과 사법적 재판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정치적 재판 관행에 대한 비일관된 내로남불적 태도 때문이다. 3권 분립의 공화국에서는 입법부는 사법부의 사법재판과 별도로 정치적 재판을 할 수 있다. 즉, 대통령, 장관, 법관, 국회의원 등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를 하거나 국민여론을 형성하여 부적절한 공직자의 사퇴를 압박한다. 이런 정치적 재판의 목적은사실관계 및 유무죄에 대한 판단과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사법재판과 달리 민의를 배신한 부적절한 공직자를 공직에서 배제하는 '공직박탈'이 목적이다.

그래서 정당과 언론 및 시민사회는 공직에 부적합하다는 정황과 이에 대한 적절한 국민적 공감대만 있으면 정치적 재판으로 공직을 박탈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은 정치적 재판의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관계와 유무죄를 따지는 검찰수사와 사법적 절차없이 '박근혜 퇴진'에 앞장섰던 진보세력들이 윤미향에 대한 태도에서 정치적 재판대신 사법절차를 따지며 지켜보자는 것은 민주화운동이 만들어 낸 정치관행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윤미향 사퇴를 바라는 국민여론이 70%가 넘는 데도 민주당이 이를 외면한 것은 민의보다 당리당략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민주당의 태도는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진영논리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는 당내 586이 시대착오적인 반일 민족주의 운동노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착왜구', '신친일파' 등을 언급하는 언행의 증가는 민주당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지 101주년이 되고, 민주화를 시작한 지 한 세대가 넘어 1인당 GNP가 5만 불을 기대하는 21세기 글로벌 한국의 시기를 여전히 '식민지 일제 강점기'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런 언행들은 작금의 시기를 여전히 독재시대로 보고 반독재운동하는 투사들의 언행이나 1987년에 독재가 끝났는데 지금 반독재운동을 하자는 분들의 언행처럼, 시대착오적이다. 민주공화국 건설과 관련해서 민주화 단계가 어느 정도 됐으니, 이제 다음단계인 공화단계로 나아가는 게 적절하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나 독재시대 적절했던 친일대 반일, 민주대 반민주, 진보대 보수의 대립구도와 같이 선악의 이분법적 패러다임과 위정척사론과 권선징악론에 기대는 차별과 배제의 언행은 세계화, 정보화, 후기산업화, 탈냉전화, 탈물질주의화 등으로 표현되는 21세기 시대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 공화단계에서는 적(enemy)과 동지(friend)라는 시대착오적 패러다임보다는 경쟁자이면서도 협력자라는 라이벌(rival)과 애드버서리(adversary)라는 모순적 존재로 서로를 대하는 언행이 필요하다.

셋째는 당내 586 운동권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작용 때문이다. 이른바, 586 운동권들의 자기 식구 챙기기와 감싸주기가 작동하고 있다. 이런 네트워크가 작동한 단적인 예는 5월 27일 우상호 의원의 언행이다. 그는 "이용수 할머니가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윤미향이 먼저 국회의원이 되니 화가 나서 이러신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화났다고 윤미향을 사퇴시킬 수는 없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용수)할머니의 분노를 유발한 동기는 '네가(윤미향) 나를 정치 못하게 하더니 네가 하느냐'인데 이건 해결이 안 된다"며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면 좋지 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분은 특이하게 이걸 배신의 프레임으로 정했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윤미향의 회계부정과 직권남용 의혹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의 내부고발을 국회의원이 못된 시기심 때문에 그런 것으로 덮으려는 시도는 너무 예의 없고 야비하며 비인도적이다.

누가 과연 2012년 공천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배제하고, 2020년 공천에서 윤미향을 올렸을까? 왜 이용수는 국회의원이 못 되고, 윤미향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비례대표가 언제부터 운동권 출신들의 나눠먹기 통로가 되었을까?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전유물로 사용되었을까? 비례대표 당선자의 이력과 진영논리적 태도 등 여러 정황들을 볼 때, 586 운동권 출신들의 인적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치참여에 대한 이용수의 고뇌

이용수 할머니는 우상호 의원의 속된 말 처럼, 이용수 본인이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윤미향이 먼저 국회의원이 되어서 화를 내고 윤미향과 정의연을 고발한 것일까? 아닌 듯하다. 이용수 할머니 역시 국회의원이 되지 못한 서운한 감정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 사태를 드러내는 한 계기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윤미향 보다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 제도정치권 참여에 대한 생각을 먼저 진지하게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용수의 제도정치권 참여와 관련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의 전체적인 이력과 다양한 발언 속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노선에 대한 태도를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윤미향 사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에 나가는 것이 당연한 데, 이용수 할머니가 왜 30년 동지인 윤미향의 정치권 참여를 돕기는커녕 '배신'으로 보는가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것은 결국 이용수의 정치참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윤미향과 다른 이용수의 운동노선과 정치노선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윤미향과 정대협 노선에 대한 이용수의 비판은 10년 전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위안부 피해자 인권단체인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ARE)’ 김현정 대표 명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이용수 할머니가 미국에 올 때마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저희에게 털어놓은 지가 벌써 10년이 다 돼간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그 전문에는 "(이용수는) 위안부 운동이 정파적으로, 조직이기주의로 가는 것을 눈치 채고 정대협과 나눔의 집에도 소속되는 걸 거부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을 펼쳐왔다"며 "그랬기 때문에 미국에서 눈부신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2015년경 윤미향과 다른 이용수의 생각은 보다 차별화된 운동노선의 정립으로 나아갔다. 2015년 4월 25일 워싱턴포스트는 4월 26일부터 공식일정이 시작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신이 겪었던 ‘성노예’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러 온 이용수의 삶과 노선을 소개했다.

거기에서 이용수는 "나는 그들(일본정부)에게 결코 위안을 주고 싶지 않다"며 "그들은 나를 강제로 끌어갔고 행복하게 살고 결혼하고 가족을 가질 권리를 모두 빼앗아버렸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용수와 워싱턴 정신대책위원회의 이정실 회장은 <워싱턴포스트>에 "우리는 일본을 모욕하거나 공격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위안부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뜻을 밝혔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인정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하라는 것"이라며 "그러면 우리도 이 모임을 해체하고 앞으로 전진해나갈 것"이라고 표명했다. 이런 언급들은 이용수 노선의 목표와 방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지난 10년간의 이력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위안부 운동노선과 제도정치권 참여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선상에서 2012년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이용수의 모습과 윤미향 당선인의 정치권 진출과 관련해서 "(윤 당선인이) 30년이나 한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하루아침에 배신하고, 사리사욕을 차려 국회에 가는 것 아닌가"라며 "하루 아침에 팽개치고 자기 마음대로 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국회의원을 시키느냐. 이 나라는 법도 없느냐, 윤 당선인은 죄(죗값)를 받아야 한다"고 반응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컷뉴스>가 5월 27일 공개한 2012년 3월 8일 이뤄진 윤 당선인과 이용수의 통화 녹취록은 이용수가 2012년 당시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는지 그리고 윤미향과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당시 이용수는 민주통합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다"며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용수에게 윤 당선인은 "국회의원을 안 해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또 '(이용수의) 총선 출마를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이 싫어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윤 당선인의 반대에 대해 이용수는 "다른 할머니들이 뭐하는 데(무엇 때문에) 기분 나빠 하느냐. 나는 그런 것 때문에 할 것 안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죽어야 한다"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용수는 자신의 출마 의지를 꺾으려는 윤 당선인에 대해 "국회의원이 되면 월급은 다 좋은 일에 할(쓸) 것"이라며 "(네가) 걱정되면 '할머니 건강이 걱정된다'고만 하면 된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이용수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열렸던 2012년 3월 14일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출마의 변으로 "국회에 나가 당당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과 아시아의 여성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민주통합당은 2012년 3월 20일 40번까지 순번을 발표했지만, 이 할머니는 순번 안에 들지 못했다.

8년 전 이용수에게 '국회에 가지 않아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던 윤 당선인은 지난 3월 민주당의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7번을 받았다. 윤 당선인은 이용수의 국회의원 출마를 만류했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정황은 기억나질 않는다"며 "아마 할머니가 진짜로 국회의원을 하고자 한다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별 중요치 않게 받아들이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국회의원 진출과 관련해서 "이용수 할머니께 연락드렸다. 시민당 비례 후보로 나가게 됐다고 하니 ‘잘했다. 가서 우리 문제 풀어야지. 같이 하자’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용수의 입장과는 다르다. 윤 당선인은 당연히 이용수 등 할머니들과 상의하여 동의를 받거나 동의를 받지 못할 땐 멈추는 게 상식적이었을 것이다. 이용수는 기자회견문으로 밝혔듯이, "30년을 함께 하고도 의리 없이 하루아침에 배신했다. 배신당한 게 너무 분했다, 사리사욕을 채워서 마음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나갔다, 출마와 관련해 얘기도 없었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무엇을 더 용서하느냐"고 울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공동취재단

이용수의 정치노선은 증오가 아닌 교류와 미래세대 교육

그렇다면, 이용수가 지난 10년 전부터 고민했던 윤미향과 정대협의 문제점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노선은 무엇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이것은 그의 기자회견문 내용에서 잘 드러난다. 우선 조직의 의사결정과정과 운영과 관련해서 다음 내용은 운동의 주체인 피해 할머니들을 단체 활동가들이 얼마나 소외시켜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이 단체가 피해자 개별 중심이 아닌 활동가와 조직 중심으로 이뤄졌고, 이것이 문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용수는 윤 당선인을 두고 "만가지를 속이고 이용하고…제가 말은 다 못한다"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사람(되놈·중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 챙긴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왜 모금하는지 몰랐다", "배가 고픈데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해도 '돈 없다'고 답했다"는 이용수의 언급은 기부금 모금에서부터 그 분배에 이르기까지, 단체의 조직운영이 피해할머니들의 개별 인권과 복지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조직운영이 근본적으로 피해할머니가 아니라 활동가와 조직지도부 중심으로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이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용수의 정치노선은 무엇일까? 이것 역시 기자회견문 중 윤미향과 정대협 운동노선에 대한 비판적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이용수는 "학생들이 (수요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귀한 돈과 시간을 쓰지만, 집회는 증오와 상처만 가르친다"면서 "이제부터는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친하게 지내면서 대화를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1차 기자회견)고 했다. 그래서 "데모 방식을 바꿔야 한다"(2차 기자회견)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특히, 이용수는 2차 기자회견문 내용에서 자신의 위안부 해결을 위한 현실인식에 따른 진단과 더불어 정치노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저는 지난번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말씀을 감히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정대협 등이) 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를 국·내외로 끌고 다니며 모금의 대상으로 활용했다"고 비판하면서 "데모(시위) 방식을 바꾸고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제대로 된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이용수는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 3가지 원칙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역량 준비, 투명성과 개방성에 기반한 운영 체계 마련 등 6가지의 문제 해결 방향을 제시했다.

민족주의를 넘어 아시아 시민연대로

이용수는 왜 30년 동지인 윤미향을 사리사욕을 추구한 배신자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분노하는 것일까? 어쩌다가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둘 간의 운동노선과 정치노선의 차이로 보는 게 적절하다.

이용수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의 대결전으로 보는 윤미향과 정의연의 주류노선인 반일 민족주의와 반일 국가주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개별 피해자들의 인권과 시민권 회복을 기초로 초국가적이고 탈국가적인 아시아 시민들의 연대로 문제해결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증오하는 한일전의 대립구도하에서는 일본=가해국=악행, 한국=피해국=선행 구도가 성립되고, 이런 구도가 되면, 일본 내 진보적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입지를 줄이면서 한국 내 다양한 개별의견의 표출을 어렵게 하고 억압되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용수가 윤미향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배경에는 30년 정대협과 정의연의 운동이 반일 민족주의운동에서는 성공하였으나 그로 인해서 개별 피해할머니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개별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시민권보장 그리고 한일 시민사회간의 교류와 협력에는 상대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용수는 2차 기자회견문에서도 밝혔듯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의 해법으로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조속히 같이 머리를 맞댈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용수는 두 번의 배신을 당했다. 한번은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무능한 조국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다른 한번은 윤미향과 정의연의 반일 민족주의운동 노선에 배신을 당했다. 배신감에 울부짖는 이용수의 절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의 언급대로, 국가와 정치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권을 빼앗겨서 보편적 인권보장을 주장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질 권리'(right to have rights)를 주장할 수 없는 무국적자의 헐벗은 생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국가를 빼앗긴 조선 위정자들의 무능으로 인해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연약한 생명들은 전쟁국가 군대의 도구로 끌려가 끔찍하고, 헐벗은 상처뿐인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런 헐벗은 생명들은 겨우 해방되어 상처뿐인 몸을 추스르기 위해 정대협/정의연에 소속되었지만 거기에서도 치유를 위한 시민권의 회복과 인간다움을 온전하게 보장받기는커녕 운동의 이념으로 반일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운동권 조직의 도구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많은 의사결정에서 소외되는 상처를 입었다. 이용수의 절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스런 처지에 공감하지 못하고 소통능력이 부족한 반일 민족주의 운동권이 저지르고 있는 '악의 평범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위안부 해법에 대한 이용수의 새로운 노선 제안은 한나 아렌트의 입장에서 보면, 단일한 반일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운동권 조직중심의 '작업(work)'에서 벗어나서 피해 할머니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드러나는 가운데 한일 시민들이 서로 교류와 협력하는 시민연대의 공론장을 펼치면서 화해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행위(action)’로 이해된다.

윤미향은 나눔소식지(98/3) <해결운동의 과정과 전망>에서 "죄를 인정하지 않는 동정금을 받는다면, 피해자는 일본의 정치가들과 우익들이 그 동안 내뱉었듯이 '자원해서 나간 공창'이 되는 것이요, 일본은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윤미향의 이런 주장은 '반일 민족주의'로 무장한 운동조직논리를 위해 여성을 순결과 정조의 대상으로 보는 ‘가부장주의적 여성관’의 전형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대협(정의연)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피해자의 개별적 ‘인권보호’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NL(민족해방)파와 가부장적인 여성주의운동가들이 결합한 성향이 강하다. 윤미향 비례대표 포스터 슬로건이 "21대 총선은 한일전이다"인 것처럼, 그는 이웃나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반일 민족주의를 선동전략을 사용하여 한일 시민사회의 교류와 협력보다는 반일감정을 이용해왔던 게 사실이다. 과연 위안부 해법의 바람직한 상은 무엇일까? 반일 민족주의일까? 아니면 피해자의 인권과 시민권 회복일까?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시민적 연민, 우정, 연대'를 보여준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뜨거운 포옹처럼, 한일양국과 아시아 시민들은 아래로부터 시민사회의 연대와 연민을 통해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을 넘어 안중근 의사가 말한 '동양평화론'처럼 공동번영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족주의와 공화주의 애국심의 차이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한 마디로 "애국심은 자기 국민에 대한 사랑을 우선시하는 것이고, 민족주의 또는 국수주의는 다른 나라 국민에 대한 증오를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공화주의 애국심은 정치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권리’인 시민권과 인권보장을 주는 국가의 소속감에 따른 애정과 사랑이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국가 내부의 결집을 위해 권리를 갖지 못한 피해자들의 시민권 보장과 인권보호 보다는 외부를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증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선한다.

토착왜구라는 표현은 반일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일본의 혐한감정을 불러오는 차별의 언어이다. 21세기 세계화, 탈냉전, 정보화 등 교류와 협력의 시대에서는 "친일대 반일", "친북대 반북"을 넘어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가 아닌 '민주공화주의'를 기초로 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처럼 한중일이 연대하는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로 갈 필요가 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은 공직자가 된 윤미향이 과거 정의연 시절 불투명하게 회계를 관리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영리적이며 비정파적이어야 할 NGO와 시민단체들이 공직자가 된 윤미향의 허물과 위선을 비판하지 않고 두둔하는 행태는 커다란 오점이다. 제도정치권의 부패와 타락을 막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인 풀뿌리 시민결사체가 민주주의의 타락을 막는 제도정치의 파수꾼인데, 이 파수꾼이 투명하지 않고 부패한다면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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