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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나눔의집 해고당한 日연구원 인터뷰 "터질 것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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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나눔의집 해고당한 日연구원 인터뷰 "터질 것 터졌다"

할머니 방치해 영양실조 사태도..."나눔의집은 일본 사람에게도 소중한 곳" 당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요양·복지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운영에 관한 비리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과거 이곳에서 근무하던 한 일본인이 당시 문제 개선을 요구했으나 이 때문에 해고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006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5년 동안 나눔의집 역사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무라야마 잇페이(村山 一兵) 씨는 21일 <프레시안>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제가 재직하던 당시도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많았다"며 "2011년 재직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이 나눔의집에서 겪는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선요구서를 운영진에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씨는 이후 운영진과 갈등이 커진 끝에 해고됐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8~10명 정도 있던 때다. 당시 무라야마 씨는 연구 활동과 더불어 일본 방문객들에게 역사관을 안내하거나, 할머니들이 피해를 증언하거나 강연할 때 통역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일본 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무라야마 씨가 근무할 당시 나눔의집 시설과 역사관 운영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안신권 소장과 김정숙 사무국장이다. 둘은 현재 나눔의집 관련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거론된다. 무라야마 씨는 "터질 것이 이제 터졌다는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소홀한 돌봄...영양실조 사태도

무라야마 씨가 2011년 작성한 '나눔의집 할머니 인권문제 개선요구' 안을 보면, 당시 무라야마 씨는 크게 △할머니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나눔의집을 운영해야 하고 △할머니의 생활 복지를 충실히 해야 하며 △할머니의 식사와 영양에 관심을 기울이고 △할머니의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운영진에 요구했다.

아울러 무라야마 씨는 △할머니들의 '역사'를 지켜야 하고 △후원금 출납을 투명히 관리할 것도 요구했다.

바꿔 보면, 무라야마 씨 재직 당시 이 같은 일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눔의집의 가장 중요한 사업 목적인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무료양로 및 전문요양 시설화'부터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정황을 엿볼 수 있다.

무라야마 씨는 우선 할머니들이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점이 문제라고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무라야마 씨는 "제가 재직하던 당시 나눔의집에는 영양사도 없었다"며 "고령의 할머니들에게 제공되는 식단이 부실해 할머니들이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외부적으로 "24시간 간호"를 홍보하던 모습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고 무라야마 씨는 지적했다.

무라야마 씨에 따르면 이옥선 할머니는 운영진의 부실한 식단 관리로 인해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정신 및 신체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도 전혀 운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라야마 씨는 "극심한 폭력을 겪은 할머니들을 위한 외상후트라우마치료 프로그램도 없어 안타까웠다"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씨에 따르면 "2010년 봄부터 초겨울까지 행해진 (심리 치료 차원의) 아로마 마사지를 할머니들이 매주 기대"했으나 이는 자원봉사였지, 나눔의집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라야마 씨는 "나눔의집이 2010년 여성부로부터 '정신적 치료 작업' 조성금을 1450만 원 받았으나, 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 씨에 따르면 당시 나눔의집에는 치매 방지 프로그램이나 체력 관리 프로그램 등 이 시설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최소한으로 존재했어야 할 프로그램도 전혀 없었다. 사실상 할머니들이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새 생활관에서는 비 샜다

이처럼 일상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것은 물론,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의 건강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한번은 고 김군자 할머니가 침대에서 떨어져 골반과 허리뼈를 다쳤다.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가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직원을 부르자 안 소장이 할머니에게 '밤에 직원을 부르지 말라'고 지적했다"고 무라야마 씨는 전했다.

시설관리 역시 엉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월 임시 생활관이 지어졌고, 이 해 6월에는 구 생활관이 완전히 철거됐다. 그러나 임시 생활관의 방은 과거 시설보다 작아 할머니들 삶의 질이 더 떨어졌다. "짐이 다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무라야마 씨는 전했다. 개인 소유물 관리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들 유품을 비닐시트로 덮고 방치했다. 고 배봉기 할머니의 유품도 없어지고 할머니들의 그림 작품에 곰팡이가 생기는 일이 허다했다."

새 생활관 공사 과정에도 비리가 있었음을 추정 가능한 대목도 있다.

"새 생활관이 지어진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큰 비가 내리면 엘리베이터 주변에 비가 샜다. 2010년 9월 태풍 때는 엘리베이터와 거실 벽, 김군자 할머니의 방에도 비가 샜다. 2010년 10월 말에는 갑자기 박옥선 할머니 방에 물이 넘쳐 올라왔다. 바닥 온돌 관이 파열해서다. 결함투성이 공사 때문에 할머니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할머니들 활동 막는 등 인권침해도 이뤄져

나눔의집 운영진이 할머니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운영을 주도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무라야마 씨는 지적했다. 당사자 운동의 결과물인 이곳에서 정작 당사자 의견이 무시된 셈이다.

무라야마 씨는 "운영진이 할머니들의 의사보다 정치인과 연예인 등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에만 신경 썼다"며 "나눔의집 행사가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풍을 가거나 생활관 이사를 갈 때도 운영진은 할머니들에게는 무슨 일인지 설명하지 않고 기자들을 부르는 데만 급급했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나눔의집 운영진이 할머니들의 주도적인 활동을 직접 막기도 했다고 무라야마 씨는 지적했다. 할머니들이 수요집회에 참석하려 했으나, 운영진이 '정대협 활동'이라는 이유로 이를 막는 일도 있었다고 무라야마 씨는 전했다.

"2010년 국치100년 수요집회 때 다른 일본인 인턴이 한 할머니께 '오늘 수요집회에 일본인이 많이 온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김(정숙) 사무장이 화를 내면서 '할머니들에게 수요집회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눔의집 운영진이 일본 정치인과 할머니들의 화해를 위한 만남을 가로막는 일도 있었다.

"과거 일본 민주당 의원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눔의집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안 소장이 직접 나서서 '역사 문제 해결이 안 되어 할머니들이 안 만나고 싶어 하신다'고 전했다. 거짓말이다. 정작 할머니들은 '직접 왔는데 왜 만나지 못하느냐',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무라야마 씨가 2011년 작성한 '나눔의집 할머니 인권문제 개선요구서.' 이 문서에서 무라야마 씨가 요구한 내용들은 대부분 묵살돼 지금에 이르렀다. ⓒ프레시안(조성은)

할머니들을 위한 후원금, 정작 할머니들에게 쓰이지 않아

여러 언론에서 제기된 불투명한 후원금 회계 처리 문제 역시 무라야마 씨는 지적했다. 거액의 후원금이 들어왔지만, 할머니들 생필품과 병원비를 모두 할머니들 개인 돈으로 지출했다고 무라야마 씨는 전했다.

이 같은 내용은 앞서 김대월 씨 등 나눔의집 직원들의 폭로에도 등장한다. 김 씨 등에 따르면 나눔의집은 할머니들의 생필품이나 병원비는 물론, 장례식 비용까지 가족들에게 부담하게 했다. 후원금을 유용하고 후원물품을 빼돌리는 일도 빈번했다. 김 씨 등은 나눔의집 운영진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서를 위조한 정황까지 제시한 상태다.

이에 관해 무라야마 씨는 "나눔의집은 회계보고를 하지 않는다"며 회계 처리 문제가 극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 씨는 관련 사례로 "일본의 위안부 역사관 후원회가 1998년부터 매년 연간 약 100만 엔(약 1300만 원)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지만, 나눔의집이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공개된 바 없다"고 밝혔다.

역사 연구 활동 역시 뒷전이었다고 무라야마 씨는 비판했다. 그는 "당시 제가 근무했던 역사관에 인력이 부족해 연구원 충원을 건의했"으나 "운영진은 (역사관 관리에) 관심이 없어보였고 충원 요구는 묵살됐다"고 밝혔다.

대신 돌아온 것은 "너는 상하관계를 모른다" "내 지시에 무조건 따라라" "본인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고압적 태도였다.

반면 "당시 이사장 송월주 스님과 원장 원행 스님 등 1년에 몇 번 오지도 않았던 운영진의 월급은 역사관 쪽에서 매달 지불했다"고 무라야마 씨는 주장했다.

결국 '업무지시'를 미이행했다는 이유로 무라야마 씨는 2010년 12월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시 무라야마 씨 측이 관련 노동기관 등에 부당해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 이듬해 3월 말 해고 처리됐다. 무라야마 씨가 '개선요구안'을 작성한 게 이 때 즈음인 2011년 1월 3일이다.

무라야마 씨는 "해고 후에는 퇴직금이 제대로 지불되지 않아서 내용증명을 두 번이나 보냈다"며 "관련 단체 분들이 함께 항의해주신 덕분에 겨우 수 개월이 지나서야 퇴직금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실업급여는 끝내 받지 못했다고 무라야마 씨는 덧붙였다.

광주시 지도점검결과 재무·회계 '부적절'

무라야마 씨 등 내부고발자들의 증언은 이미 서서히 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경기 광주시가 김 씨 등의 고발에 따라 지난달 2일부터 3일까지 나눔의집을 지도점검한 결과, 재무·회계관리에서 대부분 '부적정' 판정을 받았다.

광주시는 우선 "나눔의집 시설과 법인(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의 이름이 같고 시설이 구분이 되지 않는 등 시설 운영이 상당히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나눔의집 시설에 후원금품이 상당하나 이에 대한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법인과 시설의 이름이 같아 후원자들이 후원할 때 혼동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씨 등 나눔의집 직원 7명은 보도자료를 통해 "나눔의집 시설은 법인(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이 채용한 두 명의 운영진(안신권 소장, 김정숙 사무국장)에 의해 20여 년 동안 독점적으로 이루어져왔다"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내세워 막대한 후원금을 모집하고 있지만 이 후원금은 시설이 아닌 법인에 귀속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현재 나눔의집 법인은 후원금으로 60억 원이 넘는 부동산과 70억 원이 넘는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 등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한 돈은 대한불교조계종의 노인요양사업에 쓰이게 될 것"이라고 폭로했다.

무라야마 씨는 "나눔의집은 한국 사람은 물론 일본 사람에게도 전쟁 가해 역사, 식민지 가해 역사, 그리고 여성 성폭력 문제를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곳"이라며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이 잘 이루어지는지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프레시안>은 무라야마 씨 주장의 추가 사실 확인을 위해 나눔의집 측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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