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월말 꾸려진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를 해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5일(현지시간) "백악관 관계자들은 앞으로 몇 주 안에 코로나19 TF를 해체할 것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다른 기구가 이 역할을 대체할지 확실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더 구체적으로 "전몰장병 추도일(5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올해는 25일)을 전후로 TF가 단계적으로 축소될 것"이라며 "그러나 앞으로도 몇 달 동안 TF의 핵심 의료 전문가들이 대통령에게 매일 조언하고 언론을 통해 계속 자문하도록 할 것"이라고 백악관 관계자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파우치 소장 등 TF 멤버들, 트럼프의 과도한 낙관론에 제동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낙관적인 전망을 고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3일부터 여러 차례 미국 내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정보기관의 보고를 무시했다. 그는 2월 26일 있었던 첫 번째 백악관 TF 브리핑에서 코로나19를 '독감'과 비교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매우 매우 준비가 돼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항상 '경제' 문제를 앞세워 감염병의 위험을 축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어느 정도 제어해준 것이 바로 백악관 코로나TF의 역할이었다. 특히 파우치 앤서니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AID) 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TF 브리핑에서 틀린 발언을 하면 대통령 면전에서 바로 잡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때문에 일부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파우치 소장이 "힐러리 클린턴이 심은 인물"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파우치 소장을 해고하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트럼프 "살균제 주사" 발언 이후 TF 회의 지지부진
아슬아슬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과학자들의 견제와 통제는 어느 정도 유효했다. NYT는 "TF의 조언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무시되기도 했지만 백악관이 팬데믹에 대응한 것 중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덩달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TF 일일 브리핑을 감염병 확산 위험 때문에 전면 중단된 선거유세 대체용으로 활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해 기자들과 잦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런 TF의 역할을 망가뜨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다. 특히 지난 4월 23일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치료하기 위해 "살균제를 인체에 주사하자"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했고 엄청난 후폭풍이 일었다. 이 일을 계기로 매일 열리던 TF 브리핑이 그주 주말 동안 취소됐다. 브리핑에는 매일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정작 TF 회의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려졌고, 대통령 참석 여부와 무관하게 매일 열리던 TF 회의도 탄력을 잃었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TF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토요 세션'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트럼프 "중국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발원" vs. 파우치 "과학적 증거 없다"
"살균제 주사" 발언에 대한 비판에 대해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면서 특유의 뻔뻔함으로 대응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 책임론'에 다시 불을 붙이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나는 증거를 봤다"며 관련 사안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여러분은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3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거대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우치 소장은 4일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박쥐에게 있는 바이러스나 지금 나와 있는 것들의 진화를 살펴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위적으로 또는 고의적으로 조작될 수 없었다는 쪽으로 강하게 기운다"고 밝혔다. 그는 과학자들이 외부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한 뒤 연구소에 가지고 들어왔다가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역시 야생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파우치 소장의 입장은 세계보건기구(WHO), 영미권 첩보동맹 등의 입장과 동일하다. CNN은 5일 영미권 첩보동맹 기구인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는 코로나19가 중국의 연구소가 아니라 시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WHO 마크 라이언 긴급대응팀장은 미국 측 주장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아직 제공받지 못했다며 현재로서는 코로나19가 자연적으로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최근 프랑스의 조사 결과, 중국 우한에서 발병 사실이 처음 보고된 것보다 빠른 시기에 이미 파리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가 나오기도 했다. 파리 인근 병원의 응급실 책임자인 의사 이브 코엔은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반응을 보였던 환자 24명의 샘플을 재검사한 결과 지난해 12월27일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가 있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가 지난 4일 보도했다.
미국민의 42% "트럼프 코로나 발언 해롭다"
이런 가운데 "살균제 주사" 발언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대응과 전반적인 국정운영 지지도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폴리티코>는 5일 "다수의 응답자들이 코로나19 치료와 대응에 트럼프 대통령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해롭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몬머스 대학이 '살균제 발언' 이후 조사를 실시해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가 "입증되지 않은 약물을 홍보하는 것을 포함한 코로나19 치료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 해롭다"고 답했다. 33%만이 "대통령의 언급이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고, 23%는 "특별히 해롭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는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큰 편차를 보였다. 공화당 지지자의 68%는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72%는 "해롭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반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 역시 당파적 분열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 조사에 비해 이번 조사에서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43%,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51%로 조사됐다. 지난 달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는 44%, 부정 평가는 49%로 나타났다.
5일 오후 현재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120만명, 사망자는 7만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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