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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56년만의 재심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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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56년만의 재심청구

56년 전, 성폭행범에 저항하다 혀 절단으로 '상해죄'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당시 72세였던 최말자 씨가 자신이 56년 전 겪은 성폭력 사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부산 한국여성의전화 상담실을 찾았다.

최 씨는 1964년 5월 6일,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게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상해를 입혔다. 최 씨는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 씨는 56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오는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4일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최 씨는 18살이던 1964년 5월,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노모 씨를 마주쳤다. 노 씨는 성폭행을 시도하며 최 씨를 넘어뜨리고 입을 맞추려고 달려들었다. 저항하던 최 씨는 노 씨의 혀를 깨물어 1.5센티미터가량 잘랐다. 최 씨는 이로 인해 중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6개월간 옥살이도 했다. 가해자는 결혼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돈을 달라고 협박했다.

노 씨에게는 최 씨의 아버지 집에 침입해 협박한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최 씨보다 가벼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성폭력 죄는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최 씨가 노 씨에게 상해를 입혔다며 최 씨를 피의자로 규정했다. 검찰은 최 씨가 조사를 받으러 간 첫날 아무런 고지 없이 최 씨를 구속 수사했다. 최 씨는 구치소에 수감된 채 6개월 여간 수사 및 재판을 받게 됐다. 최 씨를 수사하던 검사는 모욕적인 말과 위협적인 행동으로 가해자 노 씨와 결혼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검사는 조사 때마다 "(가해자와) 결혼하면 간단하지 않느냐", "못된 년, 가시나가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다"와 같은 말을 했다. 최 씨는 정당방위였다고 항변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노 씨에게 강간미수를 제외한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며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최 씨에게는 단기 1년에서 장기 3년을 구형했다.

법원에서도 2차 피해가 이어졌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에 따르면 당시 법원은 최 씨에게 "처음부터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느냐"라고 되묻는 등 심각한 2차 가해를 저질렀다. 최 씨가 모두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 장소와 집이 불과 100미터 거리고, 범행 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주변 집에 들릴 수 있었다. 노 씨의 강제 키스가 최 씨로 하여금 반항을 못하도록 꼼짝 못하게 해놓고 한 것은 아니다. 혀를 깨문 최 씨의 행위는 방위의 정도를 지나친 것"이라고 판단했다.

부산지방법원은 최 씨에게 이같은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최 씨는 가족의 냉대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내며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다.

이 사건은 법원 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서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됐다. 정당방위를 다룬 대표적인 판례로 형법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유사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년, 김유진 감독)는 1988년 주부 변모 씨가 한밤중 귀갓길에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자른 사건을 소재로 한다. 최 씨와는 달리 변 씨는 2심과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최 씨는 2018년 미투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용기를 얻어 부산여성의전화와 상담해 56년만인 올해 재심청구를 결심했다. 최 씨는 오는 6일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의 재심 청구 사유 중에는 '증언이나 증거가 허위임이 입증되는 등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성이 발견된 경우'가 있다. 최 씨의 법률지원단은 "피해자가 원래는 불구속 상태로 있다가 검찰 수사 단계에서 갑자기 구속됐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영장도 보지 못했고, 왜 구속됐는지 이유도 몰랐다고 기억하고 있어 그 자체가 불법 수사라고 보고 있다"며 검찰 수사의 위법성을 밝혀내 재심 신청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최근까지도 사법기관은 가해자의 폭력에 대한 피해자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은 현재도 만연한 여성의 방어권에 대한 사법기관의 부족한 인식을 낱낱이 밝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는 데 큰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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