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계속 홍보하고 있는 배후에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있다는 보도가 나와서 주목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탄핵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던 줄리아니가 이번에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단축하고자 열망하는 대통령의 개인 과학 조언자를 자임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줄리아니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불러온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가 우크라이나에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뒷조사가 필요하다고 부추겼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말을 믿고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지난해 7월 전화 통화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우크라이나 검찰 조사를 요청했었다.
줄리아니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너 차례 클로로퀸 얘기해...돈 벌 목적 아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줄리아니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유사 약물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하 클로로퀸)이 코로나19를 초기에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효과가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줄리아니는 WP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뒤 상의했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서너 차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약물의 코로나19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프랑스에서 진행된 소규모 연구 결과에 대해 설명해줬다고 밝혔다.
줄리아니는 백악관의 다른 관계자들에게 이를 이야기 한 적은 없으며,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줄리아니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복수의 TF관계자가 확인해줬다.
줄리아니는 "제약회사를 위해 일한 것은 10년 전 화이자(Pfizer)와 퍼듀(Purdue)가 마지막"이라며 "이 일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면서 자신이 클로로퀸과 관련된 회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줄리아니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등 전문가들이 클로로퀸의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반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맹목적으로 시험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과학자들이 그걸 시험해 볼 때쯤엔 이미 1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며 "우리는 살육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WP는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줄리아니의 대화와 관련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클로로퀸 2900만개 비축"...트럼프 측근과 파우치 소장 의견 '충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백악관 코로나19 TF 브리핑에서 "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매우 강력한 신호가 있다"며 "연방정부가 클로로퀸을 약 2900만개 비축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의사가 아니다"고 단서를 달면서도 "잃을 게 뭐가 있냐, 시간이 없다"고 줄리아니가 WP와의 인터뷰에서 펼친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CNN 기자가 파우치 소장에게 클로로퀸의 효과에 대한 의견을 묻자 파우치가 답변할 기회를 가로채기도 했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도 "우리는 논평이 가능할 정도로 명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과는 배치되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은 입장을 밝히기 전인 지난 4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회의에서도 클로로퀸의 효능을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 측근과 파우치 소장과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CNN이 6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이날 클로로퀸의 치료 효과에 대한 해외 자료들을 제시하며 강하게 밀어붙였고, 파우치 소장이 이에 대해 반대하자 나바로 국장이 재차 목소리를 높이며 의견 충돌을 빚었다고 한다. <악시오스>는 이날 충돌에 대해 "코로나19 TF 내에서 있었던 가장 큰 싸움이었다. 이런 대립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 세력들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클로로퀸' 밀어붙이기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메건 래니 로드아일랜드 브라운대 응급의사의 분석을 인용해 클로로퀸이 정신 이상, 심장 질환 등 다수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CNN은 "의학 전문가들은 치료 효과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약물을 홍보하는 데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대통령에게 반복적으로 설명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6일 오후 8시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36만3791명, 사망자 수는 10782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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