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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님, 재정 지키려다 중산층이 무너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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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님, 재정 지키려다 중산층이 무너질 수도"

[인터뷰] 전용복 경성대 교수 "지금은 역사적 분기점...전국민 재난금 보편 지급해야"

코로나19 여파를 막기 위해 정부가 발표한 긴급재난지원금 성격을 둔 논란이 거세다. 건강보험료 본인 부담금 합산액 기준 하위 70%에 선별적으로 지급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맞느냐는 게 핵심이다. 사실상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의 '총선 후 선별 지급' 안과 야당을 중심으로 한 일괄 지급 안이 부딪친다. 당정청 논의에서 70% 안에 합의한 더불어민주당마저 총선을 앞두고 전 국민 지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장기화하는 바이러스 사태 대응을 위해 전 국민 호주머니에 정부가 직접 돈을 꽂아 넣는 긴급 대책을 여러 정부가 채택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상당 국가가 이 같은 방식을 채택했다. 한국 정부의 대책이 현재로서는 이들과 결이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 필요성을 강조해 온 전용복 경성대 교수는 한국 정부가 여전히 현 사태를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적자를 감수해 경제를 지탱하자는 이론으로 미국 민주당 일각을 비롯한 여러 세력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대안의 근거로 삼는다.)을 일찌감치 국내에 소개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빚을 져야 경기 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 전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신자유주의 종말의 시작"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대안 체제 마련에 각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6일 전 교수와 인터뷰를 정리했다.

▲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일상이 멈췄다. 사진은 5일 문 닫은 서울 용산 한 면세점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 안일... 일상이 멈췄다"

프레시안 : 정부가 3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자 기준 확정 안을 발표했다. 고액 자산가를 제외한 건보료 본인 부담금 기준 하위 70%가 대상이다. (☞관련기사 :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자 소득 하위 70%로 확정) 선별에 긴 시간이 걸리고,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아무리 일러도 5월은 돼야 지급이 가능해 보인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이가 급증하는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 안을 어떻게 보나?

전용복 : 안일하다. 정부가 현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기존 경기 부양책 마련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느낌이 든다.

정부가 큰 빚을 져야 한다는 의견을 두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달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생의 절박한 목소리를 가슴으로 느끼면서 (...) 우리 모두가 뜨거운 가슴뿐만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필요한 때"라고 했다. 이 상황에서도 재정건전성, 지원 효율성을 따지고 있다.

프레시안 : 가장 큰 문제가 지급 시기가 너무 늦다는 점으로 보인다. 아무리 빨라도 국회 일정을 고려하면 다음 달이나 돼야 지급이 가능하다. 당장 일자리가 끊긴 취약 계층은 막막한 상황이다.

전용복 : 독일 등 다른 선진국의 대응 모습과 큰 차이가 난다. 독일은 모든 내·외국인에게 5000유로(약 673만 원)의 긴급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의회가 재빨리 통과시켜 정책 딜레이를 줄였다.

지금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은 경기부양책이 아니다. 긴급 생계 지원이다. 전염병이 일상을 멈춰버린 이때 당장 사람을 살려야 하는데, 지급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정책 도입 취지가 무엇인지 정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경기 부양책인가, 긴급 지원책인가. 심지어 야당도 전 국민에게 일괄 지급하라고 요구한다. 포퓰리즘 우려도 없다.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다.

▲ 가계에 빚을 지게 하는 건 코로나19 사태를 넘기 위한 근본 대책이 아니다. 정부가 빚을 대신 떠안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정부가 빚내면 모두가 윈-윈"

프레시안 : 재정건전성 훼손 우려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주제로 보인다.

전용복 : 많은 분이 정부 회계를 기업 회계, 가계 살림과 같은 것으로 오해한다.

정부 부채와 민간 부채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민간은 부채 상환 의무를 지니지만, 정부는 상환 독촉에 시달리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특이하게 상환을 성실히 하는 편이다. 한국을 제외하면 레이건 시대 때 미국, 1990년대 말 캐나다와 호주 정도가 빚을 갚아 재정 건전성을 올리는 데 집중한 정부다.

한국의 재정 건전성 지표로 흔히들 국가 부채 비율 40%를 꼽는다. 이론적으로 역사적으로도 아무 근거가 없는 수치다. 고수할 이유가 없다. 하다못해, 재정건전성은 국가 채무 절대액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을 올려서도 개선 가능하다. 재정건전성만 따지느라 정부가 빚을 안 지려하다 경제가 망가지면 오히려 건전성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윈-윈을 생각해야 할 시기에 꼭 국가 재정을 기업 운용하듯 관리하려 한다. 왜 재정 밸런스를 1년 단위로만 보려 하나. 5년 단위, 10년 단위로 맞춰도 된다. 한국 재정 수지가 수년 간 흑자였다면, 몇 년은 적자 좀 봐도 된다. 당장 위급한 시기에 이런 문제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프레시안 : 한국 정부의 대응책을 보면 적자 폭 최소화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전용복 : 대표적인 사례가 41조8000억 원 규모의 금융시장 안정 대책이다. 이 중 2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가 포함돼 있다. 이건 기금이다. 간단히 말해 관련 기업에 갹출해서 자금 풀(펀드)을 만든 다음, 이를 급한 곳에 나눠 쓰자는 거다. 조삼모사다. 신용경색이 오면 결국에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곳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데, 이 상황에서 갹출이 얼마나 효과적이겠나.

다시금 강조하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대책은 정부가 직접 적자를 지는 것뿐이다. 정부가 개인에게 이 돈을 푼다면 모두가 윈-윈한다. 당장 개인 호주머니에 유동성이 생긴다. 이를 소비하면 기업이 산다. 기업이 살면 금융시장도 산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민간 경제가 버틸 체력을 가지면 정부도 나중에 이를 세금으로 걷어 살 수 있다. 모두가 이익을 보는 길을 놔두고 왜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 하는지 모르겠다.

▲ 3월 한 달 5대 은행 개인신용대출이 2조 원 넘게 늘어나, 113조1194억 원을 기록했다.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

중산층 이상도 타격

프레시안 : 미래통합당이 50만 원 일괄 지급 안을 냈다. 앞서 정의당은 전 국민에게 100만 원씩 일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괄 지급 안이 최선이라고 보나?

전용복 : 그렇다. 굳이 차등을 둔다손 쳐도, 시민 사회가 일찌감치 제안한 '선 일괄 지급, 후 차등 징수' 등의 대안이 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의 <프레시안> 기고 보기) 일단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돈을 뿌려야 한다. 기술적 고민은 다음 문제다.

프레시안 : 일괄 지급 안을 두고 당장 '정부가 빚을 내 부유층에게까지 돈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부유층은 저축 성향이 강해 유동성만 더 키운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용복 : 다 줘야 하는 이유 첫째는, 그래야 신속히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건 신속함이다.

둘째는 사각 지대 방지를 위함이다. 선별 지급의 특성상 실제 도움이 필요한 데도 기준 때문에 지급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셋째로, 실제 중산층 이상도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 달 국내 5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잔액이 전 달에 비해 2조 원 넘게 늘어났다. 폭발적 급상승세다.

신용대출은 일정 수준의 신용도가 있어야만 받을 수 있다. 신용대출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중산층 이상의 대출 수요가 커졌다는 의미다. 극소수를 제외한 우리 사회 대부분 가계가 코로나19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장 한 푼이 급한 상황이다.

▲ 전용복 경성대 교수. ⓒ인터뷰이 제공

"역사적 분기점... 새 체제 논의 이미 시작"

프레시안 :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한 적극적 지출을 장기간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론적 근거로 MMT 이론을 제시해 신자유주의의 허구성을 비판해 왔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통화량을 적극적으로 늘리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해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대규모 지출은 달러화와 같이 힘 있는 화폐를 가진 나라에서나 시행 가능하다는 논리다.

전용복 : 현 상황에서 한국 정부만 통화량을 늘리지 않는다. 전 세계가 동시에 통화량을 늘리는 데, 원화가치 하락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더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따질 필요가 있다. 그간 통화량이 늘어나면 수요 폭증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화폐수량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교리다.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난 바 없는 현상이다.

지금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인가. 현재 한국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약 70%(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 70.7% (잠정치)) 수준까지 하락했다. 비싼 돈 들여서 설비를 사 놓고도 놀리는 설비가 많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려면 수요가 공급보다 급격히 증가해야만 한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풍족히 지급하더라도,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공장이 곧바로 가동해 그 수요를 충분히 맞출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마스크 상황이 대표적이다. 수요가 급증하자, 생산량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수요를 따라 붙었다.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이 늘어나면 그만큼 고용도 늘어나게 된다.

프레시안 :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가 정부 역할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간 최소 정부를 추구했단 신자유주의 시절과 전혀 다른 입장이다. 새로운 체제가 나올 계기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전용복 : 지금은 '역사적 분기점'이다.

과거 무상급식 논란을 생각하면 된다. 당시 무상급식 찬성론자는 "빨갱이"라고 욕먹었다.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 밥을 줘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관련 논란은 없다. 사회가 생각하는 복지서비스 눈높이가 확 올라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 어려울 때 돕는 데 있다. 그간에는 이런 생각이 상식이 아니었으나, 이제 누구도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이번에 재난소득이 보편적으로 한 번 전 국민에게 지급된다면, 이후에는 관련 논의가 더 새로운 차원에서 일어날 것이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든 하지 않든(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논의의 진전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분명한 역사적 분기점을 우리가 지나고 있다.

지금은 대 위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회다. 현 상황을 잘 넘긴다면 이전과 완전히 다른 논의의 장이 열릴 것이다. 2008년에도 인류는 그런 기회를 가졌지만,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책임이 컸던 금융기업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고 상황을 넘겼다. 지금 그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진 다음에는, 지원 받은 기업에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해고를 함부로 하지 않도록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지우자는 목소리가 다른 곳도 아닌 국제통화기금(IMF) 일각에서도 나왔다.

한국에서도 정의당 등에서 구체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긴급 논의가 장기적으로는 다음 체제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미 신자유주의 체제에 균열이 크게 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변화를 각국 정부가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지금 당장 이 변화를 염두에 두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변화하는 미래에 걸맞은) 판을 만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현 위기가 사회 혁신, 사회 진보의 계기를 마련할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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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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