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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의 남성성, 존재하지 않는 '허기'를 쫓는 좀비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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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의 남성성, 존재하지 않는 '허기'를 쫓는 좀비와 같아"

텔레그램 성착취 공대위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기자회견

"소라넷에서부터 텔레그램까지, 사이버성폭력의 패턴과 이동경로에서 보이는 이들의 남성성은 ‘좀비’에 가깝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좀비의 배고픔처럼 그들이 ‘성욕’이라고 오해하는 허기도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성을 잃은 반 죽음 상태의 남성성입니다" 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26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본래 토론회로 기획됐으나 코로나19로 야외 기자회견으로 변경됐다.

"존재하지 않는 ‘허기’를 쫓는 좀비와 같아"

신성연이 활동가는 텔레그램 박사방의 '관전자' 26만 명을 '좀비'라고 표현했다. 그가 말하는 '좀비 남성성'은 살아있는, 존재하는 남성성이 아니다.

그는 '좀비 남성성'을 "한 번도 쟁취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이룰 수 없는 미지의 남성성을 실현하는 장"이라며 "스스로 실천되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대상화를 통해서만 구현된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일상을 포르노로 만드는 불법촬영물이나 지인능욕, 합성사진 제작 및 유포 등의 사이버성폭력은 이런 대상화의 일환이다.

신성 활동가는 "'지인능욕'은 온라인 성착취 네트워크의 본질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며 "성착취의 핵심 기저는 성욕이 아닌 '능욕'"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박사방의 '복종' 키워드도 마찬가지다"라며 "이러한 가학성은 ‘지배하는 남성’을 바라는 집단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런 'n번방'의 서열은 '누가 얼마나 더 여성을 능욕하느냐'로 결정됐다. 참가자들은 누군가가 전해주는 '딸감'을 수동적으로 받아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능욕에 가담했다. 더 포악한 이미지를 올리는 자, 더 비인간적인 언어를 쓰는 자가 주목을 받고 나면 이와 상응하거나 더욱 거센 폭력이 등장한다. 사이버성폭력은 이런 식으로 폭발했다.

신성 활동가는 "어떤 목적을 가진 집단이 시스템을 갖추어 특정 집단 괴롭히기를 반복할 때 어울리는 이름은 '조직범죄'"라며 "텔레그램 성착취 네트워크는 조직범죄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장내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예안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참가자들은 '26만 성착취 공범 제대로 처벌하라', '텔레그램 성착취 근본적으로 해결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프레시안(최형락)

"조주빈은 악마가 아닌 평범한 인간"

그는 "성착취 네트워크를 끝장내려면 조주빈이 악마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조 씨가 어떻게 피해자를 협박해 '노예'로 만들었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피해 여성의 촬영물을 주위에 유포하겠다는 협박은 여성들에게 큰 압박이 된다"며 "법원에서 성폭력으로 판결한 사건의 피해자조차 '문란한 여자'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피해자 낙인찍기'가 이들 집단의 협박에 조력하는 공모자"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도, 성격도, 외모도, 친구도, 가족도, 취미도 궁금하지 않다"며 "오로지 검찰과 법원과 사회가 그를 어떻게 벌할 것이냐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주빈 이전의 수많은 가해자들을 너그러이 방면해온 검찰과 법원은 성착취 네트워크를 유지시킨 강력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대형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조치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피해자 보호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공동변호인단을 통해 성착취 피해를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며 "디지털 기반 성착취에 강력 대응할 수 있는 법 제·개정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법무부는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이 법무부의 '텔레그램 n번 방 성착취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꾸린 '디지털 성범죄 대응 TF'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TF는 진재선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을 총괄팀장으로 △수사지원팀 △법·제도개선팀 △정책·실무연구팀 △대외협력팀 등 5개 팀으로 구성된다. 법무부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엄정 대응하도록 하는 한편,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판 '조주빈'은 35년 형 선고

박예안 변호사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n번방'과 유사한 온라인 성착취 범죄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성착취 범죄(sex extortion, sextortion)'이라는 새로운 법적 개념을 도입해 온라인 성착취 범죄자를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형법으로 온라인 성착취 범죄의 대표적 유형인 비동의 유포를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아동·청소년 이용 성착취물을 제작할 경우 초범이라 할지라도 최소형량 15년에서 최대 30년까지 선고한다. 단순 소지 및 시청 목적 접근만 해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이 부과된다. 성인 피해자의 경우 연방법에서 직접 처벌하는 조항은 없지만 26개 주와 워싱턴 D.C.에서는 주 법률로써 온라인 성착취 범죄를 중범죄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박사방 사건'과 유사한 '마크 P 반웰 판결'이 있었다. 피고 마크 반웰은 대부분이 미성년자였던 43명의 피해자를 온라인을 통해 고수익 모델 일을 미끼로 유인했다. 피해자에게 모델 포즈라는 명목으로 성적인 노출 사진을 요구하고 피해자가 사진을 보내면 이에 대한 유포를 빌미로 점차 수위 높은 성적인 사진을 요구했다. 반웰은 연방법원으로부터 35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n번 방'의 파생방 중 하나인 '고담방'을 운영한 '와치맨' 전모 씨는 과거 음란물 유포로 집행유예형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집행유예기간 중 '고담방'을 개설해 운영했다. 검찰은 현재 그에게 3년 6개월을 구형했다. 박사의 후계를 노린 16세 '태평양'은 지난달 구속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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