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월) 서울대학교 이사회는 총장추천위원회가 올린 세 명의 후보자 중에 강대희(의대) 교수를 최종 후보자로 확정했다. 이제 교육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강 교수를 제27대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하는 절차만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총장 선출과정 역시 서울대의 내일을 위해, 그리고 한국 대학 전체의 장래를 위해 고민해야 할 숙제들을 남겼다.
이번 총장 선거는 서울대가 국립대학법인으로 바뀐 후 두 번째 치르는 선거였다. 4년 전인 지난 2014년의 총장 선출과정이 안고 있던 숱한 문제는 선출 결과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2016년 말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이 아니었다면 이번의 총장 선출과정도 달라지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서울대에도 어김없이 큰 영향을 미친 덕분에 4년 전보다 비교적 개선된 총장 선출규정이 새로 만들어졌고,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도 미미한 비중일망정 투표권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어느 대학이든 대학 구성원들은 총장 직선제를 가장 민주적인 제도로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서울대의 경우는 단순 직선제를 최선의 제도로 보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이 있다. 340여명의 공대 교수진과 500명이 넘는 의대 교수진을 합치면 전체 교수의 40%를 넘나들기 때문에 단순 직선제는 공대와 의대에서 나온 후보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 따라서 총장 선출이 직선제적 요소를 포함하되 간선제인 정책평가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더 합리적인 면이 있다. 교수의 경우에 국한하여 말하자면, 각 단과대학별 교수 현원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교수들이 무작위 추첨으로 정책평가위원으로 뽑혀 총장 후보들을 평가하되, 교수 숫자가 수십 명에 불과한 단과대학도 최소한 일정 숫자의 평가위원을 확보하게 해주고 가장 큰 단과대학들의 평가위원 규모는 정해진 비율의 숫자보다 훨씬 적게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구성된 정책평가단을 통한 간선제 방식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교정하는 효과를 가지지 못했다. 최종적인 선거 결과를 볼 때 결국 1위 후보가 의대, 2, 3위 후보가 모두 공대에서 나왔듯이, 간선제가 가질 수밖에 없는 취약점만 또다시 심각하게 불거졌다.
간선제의 취약점은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의 구성과 역할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총추위는 무엇보다도 엄정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에 국한하는 것이 타당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4년 전 규정의 관성이 남아 있는 탓이었는지 정책평가단 평가가 75%, 총추위의 평가가 25%의 점수를 배정받는 규정이 통과되었다. 30명에 불과한 총추위가 1/4에 해당하는 점수를 손에 쥔다면, 각 후보와 그 선거 캠프는 개별 총추위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조직적 활동을 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간선제의 한계와 위험을 최악으로 몰고 가는 꼴이며, 결코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 절차라고 할 수 없다.
각 단과대학에서 뽑거나 추천하여 보낸 총추위원이 자신이 속한 단과대학 교수들을 제대로 대표할 길도 없었다. 개별 총추위원이 해당 단과대학에서 신망 있는 교수라고 한들 10명에 달하는 총장 출마자 중에 누구를 어떤 이유로 선택할지를 통제할 방법이 애초에 없었다. 한마디로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총추위가 10명의 총장후보 대상자 중에 5명의 총장예비후보자를 압축해서 뽑았을 때, 여기서 탈락한 출마자들은 그 선정기준의 객관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연히 총추위의 선거관리위원회로서의 역할 또한 허술했다. 한 가지 작은 예만 들어보자. 5명의 예비후보자 중에서 3명의 후보자를 순위를 정해 이사회에 올리는 과정에서, 총추위는 예비후보자들이 각각 정책평가단과 총추위 평가에서 얻은 점수 및 최종 합산 점수라는 세 가지 수치만을 발표했다. 그러나 교수, 직원, 학생이 각각 다른 비중과 방식으로 참가하는 선거이니만큼 당연히 교수, 직원, 학생별로 얻은 정책평가 점수 또한 발표하는 것이 온당했다. 공개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선거에 참여한 학생들은 최종적으로 1위를 한 후보와 꼴찌인 5위를 한 후보를 전혀 달리 판단했다. 즉, 학생 투표의 결과만 보면 5위가 1위였으며 1위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또 종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몰표를 던져온 직원들의 동향이 은폐되는 결과를 방치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선거 결과의 투명한 공개는 더 나은 다음 선거를 위한 논의에 필수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번 총장 선출과정은 4년 전의 비민주적 선거방식을 제대로 혁신할 수 없었던 관성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 단호하게 말하자면, 서울대 교수들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출 수 있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 동맹'을 구축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허점이 많은 선거 규정의 틀 안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이익 동맹'을 축으로 선거를 치렀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익 동맹'의 충동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선거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관계에 매몰된 실상은 교직원 월급을 매년 5%씩 4년간 복리로 총 22%를 올리겠다는 실현이 불가능한 공약에서 뚜렷하게 감지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서울대 교수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총장 선출 규정이나 엄정한 선거 관리가 아니다. 대학의 주역인 교수가 책임져야 마땅한 대학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의 실종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이며 진정으로 뼈아픈 일인 것이다. 5인의 예비후보자가 입을 모아 서울대 법인 체제의 개선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장 선출과정을 통해 교수 사회가 학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2010년 12월 이명박 정권의 집권 여당은 국회에서 다음 해 예산안과 함께 서울대 법인화 법을 느닷없이 날치기 통과시켰다. 1년 후에 법이 정식 발효되면서 시작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역사는 불과 7년에 불과하지만 남부끄러운 혼란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 어쩌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이 가장 크게 망가뜨린 기관 중의 하나가 한국에서 제일 훌륭하다는 서울대학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그저 수구정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문제는 바로 서울대 교수들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아픈 약점의 하나는 학생들도 참여하는 총장 선거에서 비정규직교수들이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물론 다른 대학들에 비해 서울대는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교수의 비중이 낮으며, 그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된다한들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불가능하다. 그러나 평생을 공부만 한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낮은 급여와 불안정한 고용 조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교수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학내 상황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아예 무시하는 대학 운영은 그 어떤 변명도 통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정규직교수에 대한 차별은 장기적으로 정규직교수의 권위와 권리 또한 함부로 짓밟기 쉽게 만든다. 거꾸로 말해, 서울대가 비정규직교수의 목소리를 이번 총장 선거에 반영했다면 다른 대학들이 따라올 모범적 노력으로서 대학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곧 임명될 새 총장이 깊은 성찰 위에서 학교 안팎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빌 따름이다.
본 칼럼은 민교협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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