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했다가는 자기편 총칼을 맞아야 하는 '전쟁'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잊을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 보도가 되지만 누구도 선뜻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다. 일단 상당히 기술적인 부분이 있다. 사법개혁과 관련된 대개의 쟁점들은 무엇이 문제되는지가 비교적 단순해서 한쪽 편을 들 수 있는데 수사권 조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더욱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것이 그야말로 폭발성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곧잘 군대에 비유될 정도로 상하관계가 분명한 우리 검찰과 경찰 조직에서 평검사나 일선 경찰서의 수사과장이 조직 수뇌부를 향해 거침없이 "사퇴하시오."라고 외칠 수 있는 문제는 이것밖에 없다.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 상대에게 밀리면 다른 무엇보다도 내부의 반발에서 견뎌내기 어렵다. 청와대나 총리실이 중재에 나설 때도 양 기관의 지휘부가 버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양보를 하고 돌아갔다가는 바로 자기편의 총칼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형사사법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쉽게 의견을 내지 못 한다. 하물며 일반 시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대충의 감조차 갖기 어렵다. 언론의 논조를 보더라도 양시론 혹은 양비론적으로 "협력해서 잘 좀 해보라."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짧게 보더라도 참여정부와 이 정부 하에서 10년 가까이 논의가 있었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라고 해서 현재의 첨예한 대립을 풀어낼 묘수가 있을 리 없다.
이 글을 쓰는 세 가지 이유
▲ 현직 경찰간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캡춰 |
둘째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상당한 정도로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경찰 측에서 내세우는 주된 논거 중 하나가 '견제'의 논리다. 최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달라지기는 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법에서는 검사를 수사의 주재자로 명시하고 경찰은 수사의 보조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경찰은, 경찰에게도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해서 검찰과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이러한 논리는 상당한 정도로 호응을 받았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경찰에 각각 '독자적인 수사권'을 줘서 서로 견제하게 만든다는 논리에 찬성하지 않지만(내 주장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양측 다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서 우리 수사기관의 해묵은 숙제인 정치적 중립성을 높일 수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한데, 현재의 수사권 조정 논의가 초점이 좀 빗나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논쟁은 '수사권'에 관한 논의라기보다는 '수사지휘권'에 관한 논의라고 해야 한다. 즉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수사권 자체를 누가 갖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논의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두 기관 다 수사를 하고 있고 그 권한을 '조정'할 의사는 양측 모두 없기 때문이다.
'내사'가 도대체 무엇인가?
얼마 전 문제가 되었던 '내사'의 범위에 관한 논란을 보자. 내사란 아직 수사가 시작되기 전 단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 확인되면 범인을 찾고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새벽에 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이 길에 쓰러져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아직은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인지, 혹은 심장마비 등으로 자연사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범죄로 인해 죽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조사를 해야 한다. 이 단계의 조사, 즉 아직 범죄가 발생했는지 확실하지 않은 단계에서의 조사를 내사라고 한다. 월급 외에 특별한 수입이 없는 공무원이 갑자기 거액의 부동산을 구입하고 호화 생활을 해서 뇌물을 받았다는 풍문이 돌 때 그 주변을 조사해보는 것도 내사에 해당한다.
경찰과 검찰은 어디까지를 내사로 보고 어디서부터 수사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힘겨루기를 했다. 내사에 대해서는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개정된 형사소송법에는 경찰이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내사'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당연히 경찰은 지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내사의 범위를 넓게 보려고 했고, 검찰은 내사의 범위를 축소하려고 했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수사기관에서 범죄사건으로 '입건'을 하면 그때부터 공식적으로 수사가 시작된다. 매우 거칠게 말하자면, 경찰은 이러한 입건이 이루어진 후에만 지휘를 받겠다는 입장이었고 검찰은 입건을 하지 않더라도 참고인을 불러서 조사하는 등 실질적으로 수사라고 볼 수 있으면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전체적으로 보면, 수사를(혹은 내사를)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이 하는 수사(혹은 내사)에 관하여 어디까지 검찰이 지휘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수사권 조정'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수사지휘권 조정'에 관한 논의이다. 나는 바로 여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을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어려운 문제로 만드는 함정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수사지휘권'을 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답을 말하라면, 검찰과 경찰 어느 편의 손도 들어줄 수 없이 둘 다 틀렸기 때문이다.
경찰이 검찰 수사지휘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있다.하지만...
현재의 논의 프레임 안에서 경찰의 숙원은 검찰의 통제를(수사지휘권을) 벗어나는 것이다. 얼마 전 경찰청장이 "(청렴도 평가에서 경찰이 검찰에 앞섰다는 얘기를 하면서) 지난해 수사권 조정 때 검찰이 경찰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는데, 누가 누구를 통제한다 말인가. 우리가 왜 검찰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가, 이제는 경찰이 검찰을 통제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이 바로 그러한 주장이다. 미안하지만, 이런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온 이유는 경찰이 검찰보다 덜 청렴했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 경찰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한다는 논리가 폭넓게 받아들여졌을 때가 있었지만, 그런 주장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를(통제를) 받는 이유는 인권보호를 위해서이다.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즉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검찰이 법원보다 덜 청렴하거나 검사들이 판사보다 자질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직접 피의자와 맞부딪쳐서 수사를 하는 기관은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이 경찰과 마찬가지로 직접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검사는 사실상 경찰과 똑같이 직접 수사를 하는 때에도 독자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폐해는 전국민이 공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지휘권도 갖고 동시에 직접 수사도 하는 기관에 대해서 권한 남용의 위험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수사권 조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회에는 수사권 조정 문제의 핵심 쟁점, 현재의 논의 상황, 그리고 그 해법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히려고 한다. 이 글은 논문이 아니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세세한 쟁점을 모두 나열하지도 않을 것이다. 제목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해법'이라고 했지만 이런 짧은 글 하나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매우 거칠더라도 문제의 기본적인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함께 답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이니만큼 많은 비판과 반론이 있기를 기대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