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담판'이라는 6.12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담긴 합의 조항들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세계 최강의 미국의 현직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합의한 내용이라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는 전문가들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후속조치들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주류언론들은 '비핵화'와 관련한 합의 내용 자체가 기대와 다르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에 집중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직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강조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검증가능한'이라는 표현을 공동성명에 담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하고, 미국의 핵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중단하는 것을 포함한 의미로 사용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가 그대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영미 주류 언론들은 이를 김정은 위원장이 유리한 협상을 이끈 근거로 해석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용어에 논란 집중
이런 회의적인 평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싱가포르 현지에서 가진 단독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으로 다양하게 분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회의적인 시선들을 신속한 후속조치들로 불식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언급하면서, 그 대신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빠르게" 비핵화 조치를 시작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런 자신감은 공동성명에 CVID를 명시하는 것은 북한의 반발로 포기했지만, 북한도 실질적인 CVID 절차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전문가에 따르면 비핵화는 4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어느 단계를 지나기만 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인식을 보여준다. 북한이 미국이 기대하는 후속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도 지속될 것이라고 트럼프가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동맹국 방어에 중요하며,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던 트럼프 정부가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라면서 "한국에게 충격을 줄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뉴욕타임스>는 "이번 공동성명은 과거와 비해 그리 진전된 것이 아니며, 비핵화 일정이나 검증 절차 등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면서 "트럼프가 과거 북한이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거의 유사한 비핵화 약속들을 김정은이 이행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장담한 것도 놀랄만 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동의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절차를 매우 신속하게 시작할 것"이라고 비껴갔다. 이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생각하고 볼 사람도 많다"고 말한 것처럼, 북미정상회담이 실질적인 CVID로 이어질 것인지도 '열린 결말의 드라마"로 지켜보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의 고위급 관료을 내세워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정상회담의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후속 협상들을 열 것이라는 합의가 공동성명에 적시된 것도 이런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분단된 한반도에 영구적이며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고 합의한 공동성명 조항도, 한국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공식적인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위한 회담을 의미한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노골적인 불신을 감추지 않아온 CNN은 아예 "아무것도 양보할 필요가 없었던 김정은의 위대한 정상회담"이라고 꼬집었다.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만 보면 4.27 판문점 선언과 다를 게 없는 비핵화 합의로 김정은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많은 것을 얻은 회담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도 "김정은이 트럼프를 노련하게 압도했다"면서 "그는 트럼프보다 영리한 협상가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는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도 제거하라는 요구로 쓴다는 사실을 트럼프는 무시하기로 한 것"이라면서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으면 엄중한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트럼프는 말했지만, 제재의 실효성은 중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트럼프가 미국에 돌아가서 자신이 한 약속 일부를 철회할 가능성이 상당하고, 북한이 실질적인 양보를 하게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김정은이 더 영리한 협상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에게 번영의 길을 약속했지만, 김정은이 그 대가로 비핵화에 응할 것인지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체제 안전 보장'을,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를 서로 던졌다. 협상은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고받기' 협상 규칙을 유독 북한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영미 주류 언론의 시각이다. 이란 핵 협정이나 G7합의문을 걷어차는 등 번번이 외교 무대에서 돌출 행동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에 대한 반감과 함께, 북한을 '기묘한 나라' 쯤으로 취급하는 관성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올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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