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북미 정상 회담이 잘 마무리됐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중단되고, 북한 미사일 시험장이 폐쇄된다고 한다. "조만간 실제로 종전 선언이 있을 것"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잔인한 독재자', '막말과 기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각각 따라붙던 이런 꼬리표 역시 빛이 바랬다. 여러 겹으로 놀랍다.
한국 보수 언론이 묘사했던 김정은 위원장, 미국 주류 언론이 소개한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 중계됐다. 이들 언론은 그간 어떤 안경을 쓰고 두 사람을 봤던 걸까.
항전과 적응, 결국 현실 인식 문제였다
안경이 운명을 정한다. 전쟁과 평화 역시 마찬가지. 1637년 초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던 조선 조정 여론은 둘로 갈라졌다. 김상헌의 척화론과 최명길의 주화론.
소설이나 영화에선 흔히 명분과 실리의 갈등으로 묘사한다. 위험한 프레임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명분이 공허하다는 건, 그냥 당연하다. 김상헌과 최명길 모두 당대의 현실 정치인이었다. 각자 추구하는 원칙이 달랐을 뿐이다. 그걸 명분과 실리의 대립으로 묘사하면, 왜곡이다. 공허한 명분을 버리는 것과 원칙 포기는 다른 차원인데, 그걸 헷갈리게 한다. 원칙보다 이익이 앞선다는 이명박 식 논리에 동원되기 십상이다.
진짜 갈등은 현실 인식의 차이에서 벌어졌다. 똑같은 현실을 다르게 읽었으므로, 따라야 할 원칙 역시 엇갈렸다.
눈앞에 밀려온 칸의 군대, 임박한 '만주족 천하'가 김상헌과 최명길에겐 각각 다르게 비쳤다.
성리학자 김상헌의 눈으로 본 '만주족 천하'는 문명의 파괴다.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배우지 않은 자가 천하의 중심에 서면 안 된다. 그게 성리학의 메시지다.
'만주족 천하'는 요즘으로 치면 이슬람 국가(IS) 같은 세력이 갑자기 힘을 얻더니 미국 패권을 대체하려 드는 것쯤 된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 실제로 벌어진다면, 누구나 근대 문명의 붕괴를 떠올릴 게다. 과학 또는 기독교의 영향 속에서 자란 주류 엘리트라면 더 그렇다.
'그런 세상에서 사느니, 최후까지 저항하다 죽는 게 낫다.'
반면, 최명길은 당대로선 드물게 양명학을 깊이 공부했다. 양명학은 못 배운 이들도 자기 마음을 잘 닦으면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농민이나 상인도 선비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異業而同道(이업이동도).)
이런 안경을 쓰고 '만주족 천하'를 보면, 김상헌과 입장이 달라진다. '만주족 천하', 즉 교양이 부족한 이들이 패권을 쥔 현실이 꼭 못 견딜 일은 아니다. 장사꾼이 선비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양명학의 가르침을 떠올리면, 만주족 전사가 중화제국 천자의 길을 걷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김상헌의 눈으로 보면, 그런 세상은 짐승 소굴이다. 그러므로 싸우다 죽자고 했다. 반면 최명길의 눈으로 보면, 지금과 다른 세상일 뿐이다. 힘들지만 적응해야 할 새로운 질서였다. 김상헌에겐 항전이, 최명길에겐 적응이 원칙이었다.
요컨대 김상헌과 최명길의 차이는 과격함이나 온건함, 명분과 실리가 아니었다. 각각 다른 안경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코미디 같은 <중앙> 칼럼, 그들에겐 논리적이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 지켜야 할 원칙이 달라진다.
지난해 4월에 게재됐으나, 지금도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화제가 되는 <중앙일보> 칼럼 "한 달 후 대한민국"이 좋은 예다. 이런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폭격하려 한다.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은 아예 말이 안 통한다. 그나마 트럼프와 소통이 가능한 한국 정치인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다.'
지금 보면 코미디다. 모조리 현실과 반대다. 오늘, 홍준표 대표는 차라리 반미에 가깝다.
그저 웃어넘길 수는 없다. '김정은 체제는 절대악이며, 트럼프는 전쟁을 원한다'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논리적으로 매끄러운 결론이다. 그리고 이런 안경을 쓴 이들은 지금도 많다.
북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 11일, <조선일보> 기사가 비웃음을 샀다. "입 닫은 北매체들…주민들, 어디서 회담하는지도 몰라"라는 기사였다. 그러나 같은 날 북한 <노동신문>엔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행 기사가 1면에 실렸다. 늘 똑같은 안경을 끼고 북한을 봤던 탓이다. 안경도 때가 되면 바꿔야 한다.
12일 오전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첫 악수를 나눈 직후, TV조선은 이런 자막을 내보냈다.
"日언론 '트럼프-김정은 13초 악수…트럼프-아베는 19초'"
악수 시간 6초 차이에 대단한 의미가 있을 리 없다. 회담 결과 역시 자막의 뉘앙스와 달랐다. 역시 그들의 안경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가까워질 수 없다는 고정관념. 그 안경을 바꾸지 않는 한, 오보는 계속된다.
미국 언론의 안경을 그대로 쓸 필요는 없다
앞서 김상헌의 척화론과 최명길의 주화론을 소개했다. 크게 보면 최명길이 옳았다. 만주족 천하가 됐다고 해서, 문명이 무너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만주족이 세운 청 제국 역시 유학을 장려했고, 공정한 시험으로 관료를 등용했다. 조선 역시 국체와 전통을 보존했다. 우린 이런 역사를 알고 있으므로, 종종 김상헌을 조롱한다.
하지만 1637년 남한산성 안에선 최명길이 소수파였다. 당대의 상식은 김상헌에 가까웠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만주족 군대는 조선인을 대거 납치해서 노예로 부렸다. 훗날 베이징에 입성한 그들은 현지인들에게 변발을 강요했고, 거부하면 목을 벴다. 철사에 꿰어 끌려간 조선인 노예들에겐, 김상헌이 옳았다. 그들에겐 문명이 무너진 세상이었다. 조국에선 왕실이 이어지고, 선비들이 계속 시를 짓는다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변화는 늘 양면적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어도, 김정은 체제는 앞으로도 한참동안 우리 상식과 동떨어져 있을 게다. 북한에서 핍박받는 이들에겐,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 활동이 남의 나라 일로 여겨질 게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계속 막말을 뱉을 게다. 미국 주류 언론은 그때마다 조롱할 게다.
성리학자 김상헌의 안경이 그들에겐 더 편하다. 장사꾼과 선비의 길은 다르고, 오랑캐 전사의 길과 중화 천자의 길이 따로 있다는 관념. 야만에 눈 감은 평화보다 전쟁이 낫다는 생각.
천자가 앉는 자리는 높은 계단 위에 있고, 환관과 후궁이 구름처럼 감싸야 한다. 그런데 트위터로 막말하는 제국의 천자?
김상헌의 안경을 쓰고 보면, 영원히 우스꽝스럽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한국 보수 진영 역시 같은 안경을 고집한다. 안보 위기가 우리에게 '결기'가 없는 탓이고, 트럼프는 여전히 '쇼'를 한다고 본다. 낯선 국제 질서를, 문명이 파괴된 짐승 소굴쯤으로 여겼던 김상헌의 인식과 닮은 꼴이다.
"북핵을 막지 못하는 것, 타고 다닐 비행기 한 대 없는 빈곤 집단의 우두머리가 미국 대통령과 대등한 듯 쇼를 할 수 있는 것, 한국민의 생사가 걸린 회담장에 태극기가 없는 것 모두는 결국 한국민에게 '결기'가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북핵 개발 초기에 미국이 폭격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우리 국민이 결기 있게 나섰다면 전쟁 없이 북핵 문제는 끝날 수 있었다.
(…) 구조적으로 북핵을 막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그래도 '혹시' 하는 희망을 가졌던 것은 트럼프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워낙 좌충우돌, 예측 불허여서 김정은이 마침내 '임자를 만났다'는 생각도 했다. 전방위 대북 제재로 숨통을 조이고 마치 바로 때릴 듯이 북한을 압박하니 김정은이 손을 들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리얼리티 쇼였던 모양이다. '미국'과 '미국인' '백인' '돈'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동맹'과 '안보', '핵 비확산', 'CVID' 등은 쇼 흥행보다 중요할 수 없었다." (6월 13일자 [양상훈 칼럼] "대한민국 농락 리얼리티 쇼")
하지만 이런 안경을 우리가 그대로 쓸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눈에 맞는 안경이 다르기 마련이다.
이 땅의 역사를 계속 써나갈 우리는 조금 더 멀리 보는 안경이 필요하다. 굳이 빗대자면, 최명길의 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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