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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6205명에게는 너무 높은 투표소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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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6205명에게는 너무 높은 투표소 문턱

다문화 시대에도 외국인유권자들 정치참여 현실은…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둔 6일, 안산시에는 중국어로 된 선거 현수막이 등장했다. 현수막에는 '여러분의 안전한 생활정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중국어로 적혀 있었다. 외국인 밀집 지역인 안산의 다문화 유권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걸린 중국어 선거 현수막 ⓒ추연호 선거사무소

10만6205명. 6.13 지방선거에 투표권이 있는 외국인 유권자 수다. 2006년부터, 영주체류자격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난 외국인들은 지방선거에 투표할 수 있다. '국민투표'인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지방선거는 '국민'이 아니라 '주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 투표권자들의 투표율은 저조하다. 2010년 지방선거에는 유권자 1만2878명 중 4527명(35.2%)이 투표했고, 2014년 지방선거에는 유권자 4만8428명 중 투표자는 8512명으로 늘어났지만, 투표율은 더 줄어든 17.6%에 그쳤다.

외국인 투표권자, 투표권 있어도 투표하지 못하는 이유

일정 자격 이상의 외국인을 주민으로 인정해서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투표권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인 투표권자들은 입을 모아 투표권에 대한 교육과 안내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18년 동안 거주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최이리나 씨는 "2010년도부터 영주권자였는데, 한국인인 남편 덕분에 외국인 투표권에 대해 얼마 전에 알게 됐다"며 "선거관리위원회나 정부 기관으로부터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한다고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8장을 투표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 몰라서 투표장에 가야 할까 고민이 된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선거 공보물을 받았는데 전부 한국어로 돼 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연합뉴스

한국에서 10년 동안 거주한 인도네시아 국적의 율리산 씨도 "정부는 우리가 투표를 안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 아닐까"라며 "투표하는 방법을 몰라서 투표하러 가기가 머뭇거려진다"고 했다. 그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할 때, 외국인은 지방선거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투표 하는지 방법을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7년 동안 거주한 중국 국적의 나수지 씨도 "인터뷰를 하면서 내게도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중국에서는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한 적이 없기 때문에 투표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라서 배제하는 것 같다"며 "정부 관계자가 투표에 대한 교육을 해 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나 씨는 오히려 기자에게 투표하는 방법을 문의했다. 그는 "투표를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투표는 종이에 하는 것이냐", "투표를 하려면 여권을 가져가야 하는 것이냐" 등을 물어봤다. 투표 의사가 있음에도 방법을 몰라서 투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국인 유권자들은 외국인 등록증을 지참하고 투표소에 방문하면 투표가 가능하다. 외국인 등록증 이외의 다른 신분증은 외국인 등록번호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꼭 외국인 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나머지 투표 방법은 내국인과 동일하다. 자세한 정보는 선관위 홈페이지를 방문하면(http://me2.do/x5gn03Yv) 영어, 중국어, 일어, 베트남어로 된 선거 리플렛을 확인할 수 있다.

유권자로 상정되지 않는 외국인, 정책 배제뿐 아니라 정치표현의 제한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외국인 투표권자들 전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외국인 투표권자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진 않지만, 지역 선관위가 투표 교육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와 중국어로 제작된 투표안내문을 12만여 매를 외국인 투표권자에게 발송하고 있다"며 "외국인 투표권자들이 투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안내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2001년부터 이주노동자 및 다문화 가정의 정착을 도와온 경기글로벌센터 대표 송인선 씨는 "선관위가 선거 홍보물을 제작하긴 하지만 형식적이고 제대로 발송이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며 "제작된 홍보물도 제대로 배포가 안 되어서 구체적인 선거방법을 민간인 봉사자들이 알려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지역 선관위에서 외국인들을 모아놓고 선거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행사에 참여한 외국인들 대부분이 선거권이 없었다"며 "투표권이 있는 외국인들에게 투표방법에 대한 안내 문자나 시뮬레이션을 시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씨는 투표권자인 외국인들을 배제하는 정치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 정치인들은 행사 때 와서 '외국인 티가 팍 나는' 사람들을 골라 사진을 찍고 그걸 선거 홍보물로 사용하는데 정작 그들을 위한 정책은 만들지 않는다"며 "물론 외국인 투표권자가 소수이긴 하지만 그들을 위한 정책도 필요한 다문화 시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는 "외국인 투표권자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거나, 충분히 홍보가 되어있지 않다"며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이주민들을 유권자로 상정하지 않다 보니 이들을 위한 정책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외국인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한 출입국관리법 17조 2항과 3항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외국인의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이 조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모순"이라며 "정치 활동의 범위가 모호해서 자칫하면 노조활동이라든지, 결사라든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출입국관리법 17조는 외국인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며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외국인이 '이 집회에 참여했다가 강제 퇴거당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직한 법은 아니지만 테러방지법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출입국관리법 17조가 유지되는 것은 외국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해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 역시 "정치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출입국관리법 17조를 근거로 강제퇴거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과도하고 부적절하다"며 "이 기준을 한국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면, 외국에 나가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욕하면 강제 퇴거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구성원이 사회 이슈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게 최소한의 민주사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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