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동을 분석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그 어떤 힘에 자연 주목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연대적 개인주의'의 부상이라 이름 짓고 싶다. 연대적 개인주의란 개인주의에 기반하되 연대(solidarity)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을 말한다. 산업화 시대가 '권위적 공동체주의'로, 민주화 시대가 '자유적 공동체주의'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면, 포스트 민주화 시대인 현재는 연대적 개인주의가 정체성의 새로운 구성 원리가 돼가고 있다.
개인주의의 부상, 신세대와 88만원세대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당시 뜨겁게 달아오른 신세대 논쟁은 문화영역에서 진행된 것이었지만,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무엇이 더 우선시돼야 하는가에 대한 중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었다. 가족·결사체·사회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결과로서의 사회라는 인식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요구한 것이었다. 신세대 담론을 주도하던 이들이 출간한 책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는 이들의 메시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20대를 중심으로 부상된 이러한 개인주의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변화됐다. 그 변화의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와 정보사회의 진전이다. 외환위기가 청년실업의 문제를 안겨줬다면, 정보사회의 진전은 온라인 공론장과 SNS로 대표되는 쌍방향 소통을 활성화시켰다. 전자가 다시 청년세대의 탈정치화 경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면, 후자는 그 반대의 재정치화 성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것은 이런 탈정치화와 재정치화가 공존하는 일견 모순적 경향이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에 기반해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막스 베버가 말한 바 있는 육화된 윤리로서의 에토스(ethos)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욕망의 실현이라는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1990년대 초·중반의 신세대와 외환위기의 충격 및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탈정치화와 재정치화 성향이 공존하는 2000년대의 88만원세대를 모두 관통하는 에토스는 다름 아닌 개인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의 부상에는 현재 30대를 이루는 신세대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486세대가 갖는 공동체주의를 개인주의로 변화시키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88만원세대에게는 개인주의의 지반인 탈물질적 가치(post-materialist value)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어떤 개인이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조금씩 변화하게 되지만, 20대에 형성된 정체성은 하나의 원형(原形)으로서 개인의 생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연대적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20년에 걸쳐 부상한 개인주의의 내면의식이다. 외환위기 이후 개인주의는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효율과 경쟁의 원리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 강제력이 이완되는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공존과 연대의 가치로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 받고 있다. 지구적으로 보더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온 반세계화 운동은 지속가능한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점령(occupy) 시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서 우리 사회의 경우는 2008년 봄과 여름에 진행된 촛불집회의 체험이 더없이 중요하다. 세대든 계급이든 집합적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체험의 공유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공유된 체험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삶과 사회를 선택하고자 하는 '기억의 정치'를 발휘하게 한다. 촛불의 기억은 반값등록금 투쟁에 공감하게 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희망버스의 티켓을 끊게 하며, 시민정치를 앞세운 박원순 후보를 적극 지지하게 한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른바 '2040세대'가 공유하는 개인주의가 지향하려는 가치다. 그 가치가 다름 아닌 연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대는 시민사회의 구성 원리이자 공동체로서의 사회가 가져야할 윤리적 지반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개인은 '시장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개인'이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특징지어지는 시장 속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게 아니라,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되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는 새로운 에토스가 요청되고 있다. 요컨대, 우리 사회는 현재 2040세대가 주도하는 연대적 개인주의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되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는 새로운 에토스가 요청되고 있다. ⓒ프레시안 |
2012년을 향하여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그 사회의 변동에 일종의 결절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제 우리 사회는 총선과 대선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결절점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사회적 폐해들을 생생히 체험해 왔다. 넘치는 비정규직, 절망의 청년실업, 치솟는 전세자금과 사교육비, 불안하기만한 노후, 그리고 위기의 한반도 등의 현실은 시민 다수의, 무엇보다 2040세대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이러한 의제들은 선택을 요구하는 선거라는 정치적 테이블 위에 이미 올라와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 정책의 대안들도 중요하지만, 그 정책 대안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가치와 철학 또한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진보개혁 세력은 복지동맹으로서의 연합정치에 주력해 왔으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성과를 가져 왔다. 이러한 연합정치에서 세력연합과 정책연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치연합이다. 2040세대가 지향하는 연대적 개인주의에 적극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와 비전의 제시는 더 이상 미물 수 없는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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