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아줌마'
그녀들은 인터뷰 내내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가씨 자리'. 아가씨 자리에서 일하는 아줌마라. 다른 명칭도 나왔다.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우리는 잡부였어요. 오만 잡일 다 하는."
그녀들의 직업은, 경리다. 명함 한 장이 없다. 명함이 있다 해도 새길 직책이 없다고 했다. 민원인들은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가씨, 남자 바꿔."
남자는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지금 전화를 받는 '여직원 아가씨'는 높은 사람일 수 없다. 꽤 근거 있는 직관이다. 통계가 말해준다. 여성이 정규직일 가능성은 10명 중 3명. 그중에서도 높은 사람, 즉 고위 관리직일 경우는 11% 가능성만을 가진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근속연수가 짧은 것이 여성 노동의 특징이라 했다.
통계청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임금노동자 직업 중 3번째로 많은 수가 경리직이다(6.7%). 전체 여성노동자 수가 872여만 명 정도라 하니, 이 세상에 경리라는 직함을 단 이는 60만 명쯤 되겠다. 세상은 그 60만 명의 일자리를 "연봉 낮고 고졸이나 전문대졸인 어린 여자가 취업하는" 직종으로 본다. 그녀들의 직업을 '단순'하게 본다. 이는 구인 공고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단순 업무 경리 모집' 그러나 막상 사람을 뽑으면 몇 개월 가지 못한다. 최저임금 월급 받고 오만가지 일을 다 해야 하는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이나 버티지. 아가씨들은 있을 이유가 없는 거죠."
'아가씨 자리'에 '아줌마' '여직원'이 있게 된다. 뭐, 세 단어가 그리 다르지도 않다. '별거 아닌' 취급, '낮은 자리'취급을 당해온 단어들이다. 그래서일까. 경리들의 싸움을 세상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경리는 자르면 그냥 잘리는 거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경리, 복직 투쟁
내가 사는 동네에서 경리 두 명이 1년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120여 개 하청업체가 통폐합 외주화되는 과정에서 대거 폐업이 있었다. 업체에 속한 경리들도 대부분 해고됐다. 이 중 30여 개 업체의 경리직원들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싸울 수 없어 포기했다. 그중 2명이 지금껏 복직 투쟁 중이다.
"10년 동안 있으면서 지켜봤어요. 업체 폐업이 되면 남자들만 고용승계 되고. 해고할 때도 제일 먼저 자르는 게 여자, 생산직 아줌마 자리. 경리는 누가 해도 해야 하는 거니까. 폐업 정리도 해야 하고, 일을 시켜야 하니까. 마지막에 내보내는 거죠." (허진남)
이번에도 역시. 그녀들은 끝까지 남아 인수인계까지 다하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우리 눈앞에서 남자직원들이 전환배치가 되고, 직영 가는 사람들 서류 처리를 우리 손으로 다 했어요. 마지막으로 저만 남았을 때 좌절감이 심했거든요. 일자리 잃을까봐 불안에 떠는 건 경리 밖에 없었죠." (김미려)
김미려, 허진남. 이들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차 하청업체 경리노동자다. 이들이 말하는 ‘직영’이란 현대자동차를 가리킨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현대자동차는 1만 명 넘는 비정규직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대가로, 이들을 정규직화 시키라는 대법원 판결을 지난 2014년에 받았다. 10년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싸워온 결과다.
재작년부터 신규채용 방식으로 정규직화가 급물살을 탔다. 어떤 의미로는 잔칫집이었다. 그 가운데 쪽박마저 깨진 이들이 있긴 하지만. 비정규직들은 직영(현대자동차) 정규직이 되어 하청업체를 떠났다. 하청업체들은 ‘불법’이라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공장 밖 사외로 업체 사무실을 옮기는 등 외주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위장폐업도 성행했다. 김미려 씨가 다닌 ‘연보테크’는 ‘(주)연보테크’가 됐고, 허진남 씨가 근무한 ‘창진에프티’은 ‘(주)창진에프티’로 이름만 살짝 바꿨다.
현대자동차 낙하산을 타고 온 사장도 여전하고, 하는 업무도 동일한데, 뭐가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변한 것이 있었다. 사장은 10년차 경리를 쓸 마음이 없었다.
"업체 새로 가면 신입이 되어야 한다고. 취업규칙 다시 써야 하고. 네 연봉 못 맞춰준다."
그녀들은 해고자가 됐다. 10년차 경리 두 명은 2017년 여름, 해고 싸움을 시작했다. 반팔 옷 하나를 만들어 입고 다녔다. 뒷면에 쓰인 문구는 이랬다.
'경리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정화조 청소 대행업체 경리, 노조가입 투쟁
올해, 데자뷔처럼 비슷한 문구를 접했다.
'경리도 노동자다'
이번에는 부산이었다. 찾아갔을 때, 그녀들은 울산 경리들의 사정을 바로 이해했다.
"10년차면 얼마나 일을 능숙하게 잘 하겠어요. 그렇지만 사장 마음대로는 안 되니까. 예전에는 네네 하던 애들이, 느그가 이제 나이 좀 들었다고. 여자 낮게 보는 거죠."
찰떡같은 이해는 비슷한 처지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부산 동래구청 앞에서 농성 중이다. 동래구청 정화조 청소 대행업체인 ‘동래․동명정화’ 노동조합은 한 달 전 파업에 들어갔다. 자신들 표현으로, ‘똥 푸는’ 일을 멈췄다. 일을 멈춘 것은 11명의 남성 현장기사(정화조 청소 노동자)만이 아니다. 3명의 사무직원, 경리노동자들도 동참했다.
수화기와 컴퓨터 마우스를 내려놓고 파업에 참가했다고 해야 하나. 이들은 경리 일에 더해, 민원 접수(콜센터) 업무를 같이 해왔다. 정화조 청소 신청을 받고, 그에 따라 현장기사와 차량을 배치하는 일. 3명 중 가장 오래 일한 이가 근무 햇수로 6년이다. 만 4년 꽉 채워 일했다. 그렇지만 여긴 사람 오래 못 버티는 곳이라고 손사래 친다. 수화기 넘어 욕설과 고성은 특이한 일도 아니다.
"일한 지 한 달 됐을 때, 민원인이 찾아왔더라고요. 전화를 먼저 끊었다고. 찾아와서 행패 아닌 행패를 부리고. 그만둘까 생각을 했어요."
2년차 예경리 씨의 사연. 그만두지 못했다. '애 키우는 입장에서" 막내 어린이집하고 가까운 직장을 선택했다. 6시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만둘 수 없는 이유였다.
“저는 경력이 2번 단절되고. 첫째 낳고 5년 쉬고 나왔다가, 막둥이를 낳고 또 쉬다 나와서. 돈 10, 20만 원 더 버는 것보다 그게(양육 조건) 더 중요한 거죠.”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 한다. 자녀에게 묶인 몸. 3명의 '여직원'들은 그것을 두고 "약점을 쥐고 평생을 살아간다"고 했다. 약점은 최저임금으로 돌아왔다.
"최저임금이 오르잖아요. 그럼 월급도 그에 맞춰 올라요. 최저임금만큼. 그럼 또 최저임금. 다음해 올라봤자 최저임금. 또 최저임금." (윤가진)
경리 월급, 올라봤자 빤하다. 그런데 그마저 오르지 않는다. 작년, 회사는 연봉협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라고 미룬 것이 1년이 됐다. 가끔 정산하러 업체에 들리는 사장은 돈 이야기만 꺼내면 바쁘다며 말을 막았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월 5만 원 인상 “거지처럼 매달렸다” 그런 기분에 비참했다. 사장은 임금인상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건 그만두라는 표시와도 같았다.
"6년 쯤 되니까 그 월급 주기도 싫고 너 나가려면 나가라, 하는 거잖아요."(김윤미)
자신들은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터질 듯 울려대는 전화 받기 바쁜데, 사장은 공공연히 경리 3명도 많다고 하고 다녔다. 물론 현장기사 11명도 많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러워서 그만둘까 했다. "여자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여기 아니어도 최저임금 받는 건 어디든 똑같았다.
경리, 노동조합 가입하다
현장기사들이 노조 가입을 권유했으나, 처음에는 망설였다.
"민원인들에게 들을 욕부터 해서, 돈이 문제가 아니라 파업하고 돌아와 밀린 일 하려면, 전화 받는 족족 욕을 바리바리 할 건데 그걸 다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그리고 사장 얼굴은 어떻게 보지. 그런데 제가 빨간 조끼를 입고, 마이크 잡고 사장 욕을 하고 있더라고요. 사장님아, 구청 계장님아, 근로감독관님아, 이러면서." (예경리)
그럴만 하다. 사장은 경리들의 노조 가입이 꽤나 못마땅한 듯 보였다. 경리가 무슨 노동조합이냐. 경리직 포함한 노조와는 교섭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사장(김옥상 씨)은 법원에 ‘조합원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경리직은 관리직이라 노조 가입할 수 없음을 판정해달라 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회사는 소송의 청구취지를 변경했다. 단체협약 적용범위를 확인해 달라는, 그러니까 경리노동자가 단체협약 적용 대상인가 하는 내용으로 소송의 성격을 변경한 것이다.)
경리 노동자들이 올려달라고 한 월급은 5만 원, 1년이면 60만 원이다. 이 돈 못 준다며 연봉협상을 1년 가까이 미루던 사장이 덜컥 몇 백 만원 변호사 수임료를 들여 소송을 한다. 화도 안 난다. 이해조차 안 됐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제일 낮은 노동자였는데 왜 노동조합조차 안 된다는 건지." (김윤미)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왜 가입이 안 되는지. 왜 ‘노동자조차’ 아니어야 하는지. 의아해한 것은 부산만이 아니다. 울산 현대자동차 경리들도 그랬다. 현대자동차 하면 ‘강성노조’가 있다고들 생각한다. 울산공장만 해도 3만 명 규모의 노동조합이다. 그리고 10년 넘게 싸워 일정 정규직화라는 성과를 올린 비정규직 노동조합도 있다. 울산 출신 김미려 씨와 허진남 씨도 노동조합을 가까이서 봐 왔다. 그러나 자신들과는 무관한 존재였다.
"우리도 (노동자로) 뭘 할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우리끼리 이야기해요. 무지한 게 죄라고. 너무 밀폐된 곳에서 우리 둘 밖에 없었거든요. 단절돼 있었거든요."
사장과 둘이 작은 사무실에 갇혀 일했다. 사장이 하기 귀찮은 일, 불편한 일까지도 이들 몫으로 돌아왔다. 실컷 시켜먹고, 그걸 근거로 사장들은 경리가 “항상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노조법 제2조)”라 말한다. 그래서 노동조합 가입 못한다고 했다.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또한 같은 말을 했다.
"지부 실장님이 노조에 가입이 안 되는 사례를 알려주시더라고요. 인사, 노무, 회계 담당자. 그래서 이야기를 했죠. 우리가 경리니까 급여를 계산하긴 한다. 그런데 급여도 우리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동차 직영에서 시급부터 수당까지 다 정해줘요. 소수점 두 자리까지.'
낙하산과 다를 바 없는, 현대자동차 퇴직 인사들이 하청업체 사장을 거친다. 근무 10년 동안 사장만 두어 번 바뀌었다. 사장노릇 5년쯤 하다보면 현대자동차에서 다른 사장을 내려 보낸다. 임시직인 업체사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없다.
"인사는 바지사장도 못하는 게 인사다. 노무관리도 자동차 직영에서 해요. 사장 마음대로 한 개도 못해요. 그런데 우리가 무슨 관리자냐.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고 다니면서 어렵게 노조(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하게 됐죠."
관리자라면서, 10년을 일하고도 업체 1년차 남성노동자와 같은 월급을 받았다. 족벌경영을 실천하는 업체는 온갖 자리에 친인척을 채워 넣고 월급을 매년 인상했다. 그 월급을 그녀들이 입금했다. 정작 자신들의 임금은 동결이었다.
"처음에는 노동자도 아니고, 사측도 아니고, 개똥 아무것도 아니었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녀들은 싸우며 스스로 노동자가 됐다. 온전히 그녀들만을 위한 해고투쟁 집회가 열리고, 그 자리에서 김미려 씨는 외쳤다.
"여러분은 업체가 폐업할 때마다 경리들만 해고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녀들은 회사도, 노동조합도 생각지 못했던 ‘노동자’였다. 10년을 존재했으나 그림자 노동을 했다. 남성 위주 대기업 생산공장에서, 매번 갈리는 바지사장 아래서, ‘아가씨 자리’였던 경리 직군. 그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서야, 우리는 경리가 노동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하늘 아래 커피만 타는 경리는 없다
그리고 여기, 부산 '동래동명정화'에는 사장이 부정하는 그 '노동자성'이 노동조합 안에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사장은 경리들의 노조가입을 핑계 삼아 교섭을 회피한다. 파업이 길어진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경리 직군을 배제하고 교섭에 임할 생각이 없다.
부산 경리들의 근무 사정도 비슷했다. 사장은 불편하고 피곤한 일을 경리에게 맡겼다. 특히 노동조합이 있기에, 현장기사들을 대면하는 것을 꺼렸다. ‘진짜’ 관리직들은 경리를 방패막 삼았다. 배차에 관해 억지 지시가 윗선에서 내려오면 이를 현장기사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그녀들이었다. 현장기사들의 볼멘소리를, 민원인들의 불만을 듣는 것은 결국 이들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바람막 없이 중간에 낀 외로운 존재라 생각했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사장이 길길이 날뛰는 이유를 모르는 바도 아니다.
"일 시켜먹기 어렵게 됐으니까요. 현장기사님들하고 떨어트려 놓고 싶으니까. 찔리는 게 많거든요."
예전 그녀들은 얼마나 부리기 좋았는가. 구두로 약속한 것보다 적은 연봉 금액이 적힌 근로계약서를 입사 한 달 만에 내밀었다. 그래도 그만두지 못했다. 취업규칙이 있는 줄도 몰랐다. 취업규칙보다 형편없는 근로계약서에 사인했다.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해 근태를 감시해도 대놓고 불만 못했다. "애기 엄마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잖아요" 부리는 대로 성실히 일했다.
사장은 월에 두어 번 매출 확인 겸 사무실에 들렀다. 사장이 가진 여러 사업체를 대신 관리한다는 모 전무가 왔다갔다 했고, 현장관리 하라고 앉혀놓은 모 차장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쳇바퀴 돌듯 분주한 것은 사장에게 "커피나 타는 취급" 받는 경리 직원들뿐이었다. 외부업체들과 회의를 할 때면 사장은 직함도 없는 경리직원과 동행했다. "자기들은 아는 게 없으니까, 여직원을 데려가요. 자기들이 나설 때는 돈 문제죠"
청 사업(정화조 청소)을 대행하는 업체다. 몇 년 하고 프리미엄 붙여 업체를 파는 것이 관례라 했다. 지금 사장도 업체를 맡은 지 4년째다. 자기 사업이라는 생각이 없다. 투자를 하겠다는 욕구도 없다. 이런 대행사업을 몇 군데 가지고 있다는 사장에게 <동래․동명정화>를 비롯한 업체들은, 그저 수금처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은 보지 않고 계산기만 두드리는 거죠. 몰라도 회사는 돌아가니까. 매출이 얼마인지 그것만 신경 쓰는 거죠.” (김윤미)
몰라도 회사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경리들이다.
현대자동차 1차 하청업체도 비슷하다. 바지사장들이 거쳐 갔다.
"사장은 사람 귀하다는 생각 안 해요. 잠시 벌어먹고 나가면 끝날 인연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뭘 하질 않아. 심지어 그 전 사장은 10년 넘은 직원 얼굴도 몰랐어요." (허진남)
악덕업주처럼 그려진 하청업체 사장들의 횡포와 포악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잠시 머물려 이윤만 챙겨가는, 인력 장사 파견업체, 그리고 대행업체들. 그럴수록 계산기 앞에 두고 '부리는' 사람은 하찮게 여긴다.
“직원들은 몇 년 쓰고 버리는 소모품인데, 그중에서도 여직원들은 가장 버리기 좋은 소모품인 거예요.” (김윤미)
소모품들의 미래
사장에게는 소모품이라도, '소모품'들에게 이곳은 삶터 일터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서민 인생에 거의 모든 것인 직장. 서로 사정을 아는 '여직원'들끼리 기대어 그걸 위로삼아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다 파업까지 오게 됐다.
부산 동래동명정화, 파업이 한 달 째에 접어들자 서로의 삶을 걱정한다. 특히 경리노동자들은 미안한 마음이 크다. 회사는 경리직원들 문제를 앞세워 교섭을 미루고 있다. 이미 작년에 동래구청은 정화조 청소비용을 15% 인상했다. 노무비가 포함된 금액이니, 현장기사들의 임금인상은 당연한 절차다. 그럼에도 1년 넘게 회사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교섭을 미뤄왔다. 이번에도 핑계가 필요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걱정은 된다. 파업은 무임금의 시간. "세상 더럽다 하는 일로 벌어 모은" 현장기사들의 돈이 혹시나 모래알처럼 사라질까봐 걱정한다. "내 코가 석자니 돌아선들 누가 욕을 하겠어요" 여성 경리직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현장기사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조합은 경리노동자들의 노조 가입과 단체협약 적용 문제를 최우선으로 걸었다.
정년이 3개월 남은 현장기사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노동하는 현장에는 모두 똑같다. 네가 여자고 내가 남자고 그런 거 없다. 너랑 나랑 다 똑같은 노동자고. 그런 차등이 있을 필요가 없다. 노동하는 현장에는 노동자만 있는 거지."
퇴직의 마지막 계절을 농성으로 보내고 있다. 어쩌면 당장의 월급이 아니라 퇴직금마저 위협받을지 모르는, 나이든 노동자가 괜찮다고 한다. 노동현장에는 차이가 없고, 노동자만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사회는 차이를 필요로 한다. 차이가 위계를 만들고, 그 위계에 따라 부림을 달리 하고, 그것이 더 손쉽게 부리는 기술이 된다. 사장이 현장기사와 경리직이 붙어 있는 걸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여자와 남자가 있고, 여자노동자와 남자노동자가 있다. 그들 사이에는 36%라는 임금격차가 있고, 72%의 채용 시 성차별도 있다. 그 차별이 누군가를 이롭게 한다.
오늘 이 싸움을 이겨도, 미래는 밝지 않다. 정화조 청소노동자들은 어느덧 나이가 들어 정년을 기다린다. 회사는 정규직 직원이 나간 자리에 새 직원을 뽑지 않는다. 계약직, 일용직 알바를 사용한다. 한 달짜리, 삼개월짜리 노동이 어떨지 빤하다. 노동조합이 있을 때하고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82년 김지영의 또래라 할 수 있는 그녀들,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임금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낮아진다. 82년생이 받는 평균 임금이 219만 원이라면 70년생은 188만 원, 58년생은 144만 원. 현재 사무직인 김지영은 10년 뒤에 매장판매직이 되고, 20년 뒤에 청소미화원이 된다고 한다. 그게 여성노동자의 운명이라 했다.
신자유주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잔혹도 하다. 수레바퀴의 가속을 저지하는 방법을 애써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늙은 노동자가 말한 "너랑 나랑 다 똑같은 노동자"일 수도 있겠다. 당장의 차별과 불안을 없애는 일. 사실 노동조합이 흔히 외치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은 공허하다. 그러나 차이를 두어 일하는 사람을 쪼개고 나누려는, 결국은 버려지는 속도만 다른 소모품으로 만들려는 기업에 대응하는 길에 무엇이 따로 있을까. 나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 소모품이 아니라 노동자로 살려고 애쓰는 일.
법의 편리와 기업의 필요에 의해 나뉘고 빼앗긴 노동자성을 되찾는 그녀들의 싸움을 응원한다.
"설사 승리 못 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뭐든 다 해봤어요. 저는 제가 기특해요. 잘 했어. 기특해.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김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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