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드루킹 사건'의 파워블로거 드루킹 김 모씨 재판이 시작되면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추천 조작이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것인지 사법적 판단은 재판부로 넘어갔다.
이제 차분히 고민해야 할 것은 공론장으로서의 온라인과 포털사이트, 유권자의 말할 자유, 그리고 여론 정치다. 이번 사건 직후, 각계는 원인을 진단하고 방지 대책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네이버는 같은 기사에 달 수 있는 댓글 수를 제한하는 등 댓글 조작 방지 대책을 발표했고,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매크로 프로그램 이용 금지, 포털사이트의 뉴스 공급 방식의 전환, 인터넷 댓글 실명제 부활 등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법안까지 이른바 '드루킹 방지법'이라 부르며 법 개정안을 다수 발의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고 있고 여기에,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모임 규제를 검토하겠다며 중앙선관위까지 가세했다.
제도 개선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에 맞는 해법이어야 한다. 댓글 폐지나 인터넷 실명제를 부활시키는 개정안, 광범위하게 허용된 온라인 선거운동을 규제하겠다는 중앙선관위 계획은 표현의 자유, 특히 선거 시기 유권자의 말할 자유를 억압한다는 측면에서 위험하다.
댓글 조작 사건을 계기로 댓글 기능을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만을 없애는 대증요법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부활하자는 의견도 근본적으로 이와 유사하다.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며 201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한 제도다. 다시 과거로 후퇴하여, 인터넷에 글 하나 올리기 위해 의무적으로 신원을 확인 받아야 한다면? 번거로워서 글을 아예 안 쓰거나 자기검열에 빠져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거나. 뿐만 아니라 실명제로 축적된 내 개인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유출될 지도 장담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는 인터넷 실명제는 부활시켜야 할 제도가 아니라, 선거운동기간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공직선거법 상 실명제까지 모두 삭제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에서의 지지 또는 반대 활동 단속을 검토해보겠다는 중앙선관위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다수의 유권자가 모이면 불법 댓글이 달리고 유언비어가 확산되어 선거가 혼탁해질 수 있으니 규제가 필요하다는 선관위식 접근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와 정치참여를 제약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유권자는 죄가 없다. 선거가 다가오면 정당과 후보는 자신들이 홍보하고 싶은 것만 부각시키고, 민감한 이슈나 정당 간 입장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쟁점은 일부러 감춘다. 후보 선택에 필요한 정보들이 후보와 유권자, 유권자와 유권자 사이에서 쌍방향으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후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현실에서 유권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적극적인 유권자는 1인 시위나 손피켓, 인쇄물을 이용해 의견을 개진하고 특정 후보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후보 이름이 적혀있다는 이유로 불법행위가 되고 벌금 받는 게 우리나라 선거법이라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유권자 입장에서는 애매하고도 위험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걷지 않으면서 '가장 안전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정치참여가 포털사이트 기사에 댓글을 남기는 일이고 온라인에서 내가 좋아하는 후보를 당신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이것마저 드루킹 사건 이후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면? 여론 조작 시도는 방지할 수 있겠지만 유권자의 말할 자유는 사라지고 선거는 정당과 후보에 대한 토론 없는 '조용한 선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매크로 프로그램이 변종되고 진화된 형태로 법망을 피해 다음 선거에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드루킹 사건 이후 주어진 과제는 간단치 않다.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 사회가 여론을 확증편향적으로 '소비'하는 행태의 문제를 살펴보고, 우리 정치가 여론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뤄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여론은 중요한 바로미터이고 정치는 여론을 잘 살펴야 하지만, 정치가 다양한 이해집단을 만나 갈등을 조율하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보다 여론을 관리하는 일에만 몰입하는 것은 문제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 정치는 새로운 매체와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더 많은 규제를 원하게 될 뿐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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