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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깨어있는 시민 정신'이 아동 인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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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깨어있는 시민 정신'이 아동 인권에도

[해외입양인, 말걸기] 우리가 사비를 들여 제네바를 다녀온 이유

비행기를 타고 모국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 9월 유엔사무국의 소재지인 스위스 제네바를 다녀왔다. 한국의 아동 인권 상황을 심사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를 참관하고 로비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위해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의 동료인 로스(Ross)와 나는 여러 달 전부터 준비를 했다. 올 가을부터 늦깎이 대학원생이 된 나는 이런 일로 스위스 제네바를 다녀올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우리는 해피빈에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30만 원 가량을 모았다. 몇몇 사람들이 마련해준 약간의 지원을 보태고 우리 주머니를 탈탈 털어 비행기 삯과 체류경비 400여만 원을 가까스로 마련했다.

새벽에 비행기를 타러 나가는 내게 갑자기 울컥하는 슬픔과 함께 가고 싶지 않다는 격렬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40년 전 6개월짜리 영아였던 나는 비행기에 태워져 미국 미네소타로 보내졌다. 비록 영아였지만, 그것은 내 의사와 상관없는 강제이송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7년 전 내가 스스로 돌아와 살기로 선택한 이 땅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여행해야 할 때마다 이 울컥하는 마음은 어김없이 도진다.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싣는 내게,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또 다른 나인 6개월짜리 아기가 심하게 투정을 부린다. 모국을 떠나지 말라고. 나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 우리 후원인 중 한명인 프랑스 요리사 그렉. ⓒ프레시안
싼 비행기편이라 카타르를 경유해야 했고, 우리는 거의 스무 시간 만에 제네바 공항에 내렸다. 그렉(Greg)이 프랑스로부터 건너와서 우릴 반겼다. 그렉은 우리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길거리 요리사이다. 아마도 한국식으로는 포장마차 사장님이다.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이주해온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그렉은 유명한 스페인 음식 중의 하나인 파에야를 만들어 프랑스 남부의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면서 파는 사람이다. 여러 해 전,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되는 아동이 거의 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의 후원자가 되었다. 일주일에 닷새 장사하면 그 중 하루치의 수익을 우리 단체에 기부한다. 이번에는 제네바의 유엔아동인권위원들을 만나 필요한 경우 프랑스어로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왔다. 이번에는 재능기부자인 셈이다.

우리 나이에는 조금 덜 어울리기는 하지만, 유엔사무국에서 멀지 않은 한 소박하고 작은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며칠 동안 회의장인 팔레 윌슨 호텔을 오가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제 58차 회의를 참관했다. 위원회는 협약가입국의 아동권리이행상황을 매 5년 마다 심의하는데, 한국은 몇몇 다른 나라와 함께 올 해 심의 대상국가에 올랐고, 9월 21일 하루 종일 한국의 아동인권상황을 검토했다. 회의실에는 심의위원들이 앞자리에 않고, 한국정부를 대표해서 제네바대표부대사와 함께 법무부,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의 고위 관리들이 마주보고 앉아 답변에 나섰다.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장향숙 상임위원과 함께 방청석에 앉아 회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실제로 우리가 가장 주력했던 일은 유엔아동권리위원들에게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회의장 밖, 특히 화장실 앞에서 거의 모든 위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우리 입장을 피력했다. 우리가 화장실 앞에서 그들을 만나기로 한 것은 정말 주효했는데, 위원들이 다른 곳은 몰라도 화장실만은 반드시 다녀오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앞이 그토록 결정적인 자리가 될 줄이야!

화장실 앞에서 벌인 로비활동의 네 가지 요점

우리가 그들에게 했던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일이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계 입양인이라는 점, 지금은 출생국인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사회의 입양제도의 개혁을 위한 시민단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는 점,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단체가 앞장을 서고 몇몇 단체와 연대해서 한국의 입양특례법 개정운동을 벌였고 결국 지난 6월 국회통과라는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는 점들에 대해서 말했다. 위원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입양특례법이 귀환입양인들이 주도해서 개정된 사실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 주었다.

둘째로 우리는 입양특례법의 개정을 통해서 한국이 조약 가입 당시 비준을 유보했던 유엔아동권리협약 21조 a항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한국이 이 조항의 유보를 철회할 수 있게 되었으니, 21조 a항의 유보를 철회하도록 유엔이 한국정부에 대해서 강력하게 권고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피력했다. 21조 a항의 핵심은 '입양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하여 권위 있는 당국에 의해서 결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인데, 그 동안 한국은 사설입양기관들의 자의에 의해서 입양이 결정되도록 해온 나라였다. 그러나 지난 6월에 개정된 법은 입양이 가정법원의 허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했다는 점에서 21조 a항을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셋째로 우리는 한국에서의 국내입양과 해외입양 아동의 90%가 미혼모의 아동인 점과, 한국에서는 생모의 결혼 여부에 따라 아동이 누리는 권리가 다름을 말해주었다. 아동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아동이 생모와 결별을 겪고 입양으로 내어 몰리는 일은 아동 인권의 현저한 훼손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입양활성화 정책을 통해서가 아닌 친생가족보호정책의 강화를 통해서 아동의 생명권과 성장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넷째로 우리는 비록 우리가 금년 6월 입양특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비밀친생자 입양이라고 하는 불법적 입양관행이 만연한 상태이므로, 사실상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주는 인권보호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아동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해주었고, 바로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의원이나 조산소에 의한 아동의 출생등록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부모의 임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의 출생신고제의 허점을 입양가족들이 불법적으로 오남용하여, 입양아동을 자신들의 친생자로 등록하고 마는 일은 결국 아동이 자신의 존재의 진실에 관하여 알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반인륜적인 일이라는 점을 피력했다.

'may(아마도)'와 'must(반드시)'

화장실 앞 길목을 지키고 서서 만나는 유엔아동권리위원들에게 이와 같은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는 동시에 우리는 회의장을 지키면서 유엔아동권리위원들의 질의와 한국대표단의 답변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일에도 온 힘을 기울였다. 아동의 출생등록제와 관련해서 한 번은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유엔아동권리위원 중의 한 사람이, 한국의 출생등록제가 입양아동은 물론이고 다문화 가정의 아동의 출생 사실을 법적으로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 아이들이 등록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인가를 질문했을 때였다. 한국 정부를 대표한 관리는 'may'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대답을 했다. 아마도 해야 할 거라고 하는 것이었고, 이 답변을 듣고 있던 유엔아동권리위원들과 방청석에 앉은 모든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은 이는 단연코 'may'로 답할 일이 아니라 'must', 즉 마땅히 시행해야 할 일임을 환기시켰다. 아동 인권에 대한 한국정부 고위관리의 안이한 태도 혹은 인권감수성의 결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온전치 못한 나로서도 분노와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마음을 추슬러야 했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한국 정부의 관리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사는 이들인 바, 이 땅 아동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육성하고 견인하는 일에 관한 책임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이 제네바까지 날아왔고, 당연히 국민이 낸 세금으로 상당한 수준의 호텔에 머물면서 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처럼 우리가 간신히 비행기삯 마련하고, 젊지 않은 나이에 가난한 학생들처럼 유스호스텔에 머물면서, 한국 땅의 아동들이 더 따뜻하고 더 보호를 받는 가운데 성장할 수 있도록 담보하는 그런 한국 사회의 미래의 재구성을 꿈꾸는 우리들이, 한국 정부의 관리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들의 가슴 속에 자국 땅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열정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저들에게서 그것이 아무리 외교적인 어법이라고 하더라도, 'may'라고 하는 모호하고도 약속이 담기지 않은, 그래서 사실상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는 발언이 터져 나오리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좀 가혹한 말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종종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었다.


▲ 지난 9월 21일 제네바에서 유엔아동인원위원회 특별서기 Aseil AL‐SHEHAIL 에게 한국 입양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는 해외입양인모임(TRACK) 제인 정 트렌카 대표와 회원 로스 오크 ⓒ프레시안

닷새 동안의 짧은 제네바 유엔사무국의 틀 안에서 진행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제 58차 회의' 참관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지난 10월 7일 해당 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보낸 '유엔아동권리 이행사항 심사 결론문'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피력했던 대부분의 내용들이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제네바의 유엔사무국에서 아동권리위원회를 담당하는 변호사는, 한국정부를 향한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올 해의 권고문이 이전의 어떤 권고문보다 잘 된 권고문이라는 말을 해줬다. 권고문에는 한국 정부가 입양특례법을 개정한 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고, 그 동안 유보하고 있던 유엔아동권리협약 21조 a항을 조속히 철회해야함을 권고하고 있었으며, 사회적 편견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에게 교육과 직업의 기회 제공을 통해서 자녀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사회적 도움이 제공되어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었고, 나아가 우리가 주장한바, 한국 정부가 아동출생등록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이 '심사 결론문'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났고 이제 돌아와서 살고 있는 나라가 유엔의 권고와 견인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 모국이 아동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정책이 뛰어난 나라가 되어 다른 나라들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소원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아동인권을 위해 깨어 있는 시민의 등장을 기대하며

나는 7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김해에서 얼마동안 살았다. 그곳에 있는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내가 비록 한국 정치의 세밀한 사정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의 솔직 담백한 면모로 인해 내 마음에 존경을 불러일으킨 노무현 대통령이 나시고 묻힌 곳이다. 그 분의 묘비에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나는 노대통령의 이 말씀을 이 땅의 아동인권에 관련해서 '아동인권의 최후의 보루 역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동인권의 기본 중의 기본은 아동이 태어난 친생가족의 품에서 돌봄을 받고 성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지난 60년간 이 땅에 태어난 아동 거의 20만 명을 해외로 입양 보냈고, 통계에 잡히는 국내 입양 역시 거의 10만에 육박하고 있다. 30만 명의 아동이 친생부모의 품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또 지금 국내외를 막론하고 입양의 이름으로 친생부모의 품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의 90%가 미혼모에게서 난 아이들이다. 뭐라고 둘러대도 입양은 결국 친생가족과의 결별의 아픔을 안고 시작되는 일이다. 아동인권의 훼손에 기초해서 베푸는 복지에 다름 아니다. 사실 이는 형용모순이다.

모국으로 돌아와서 이 땅 모든 아동이 친생부모의 품에서 자라기를 바라고, 사비를 들여 제네바를 다녀온 우리 해외입양인들의 심사를 헤아리고, 우리와 연대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등장을 기대해도 될까? 그들과 더불어 조직된 힘으로 이 땅 아동인권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해피빈을 통해 우리의 사정을 접하고 우리를 후원해준 이름 모르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나는 그분들이야말로 깨어있는 시민들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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