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
2018년 늦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려 한반도는 새 역사를 쓴다. 주역인 남·북·미 세 정상은 회담의 성공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전격 회동하여 불편했던 관계를 해소했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전략적 노선의 변화를 공개 천명했다. 북한은 이 회의를 통해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북부 핵 실험장을 폐기할 것을 결정했으며,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으로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를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매우 좋은 소식으로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를 평양에 보내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했다.
한편 남북 간에는 의전·경호·보도 등 실무사항을 순조롭게 타결하고 두 정상의 만남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기로 합의했다. 정상 간의 직통전화도 연결되었다. 여기에 더해 국방부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가히 파격의 연속으로서 예정된 회담들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전격 참여하면서 시작된 한반도 해빙 움직임은 그때까지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전쟁 분위기를 급반전시켰으며, 70년 가까이 그토록 머뭇거리고 주저해왔던 한반도 평화의 근본문제 논의를 처음으로 가시권에 들게 했다.
역사의 큰 맥락에서 보더라도 이번 정상회담들은 분명히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출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이 길은 사실 30년 전 '7.7선언'에서 천명된 이정표를 따르게 될 것이다. 기상천외한 발상이 만든 길은 아니다.
'7.7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평화통일의 길은 상호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서로 교류 협력하며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주변 4대국에게 남북한 교차승인을 제안한 바 있다.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공존하면서 평화적으로 통일을 추구하자는 '7.7선언'은 북한 핵 문제라는 암초 때문에 상당 기간 우여곡절을 겪었고 반쪽만의 미완성 상태로 있지만 북한이 핵 폐기 의지를 확실히 해준다면 30년이 지난 지금도 매우 유용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2018년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은 1988년 '7.7선언'에서 제시되었던 해묵은 일정표를 30년 만에 다시 꺼내보게 한다.
'7.7선언' 30년, 평화통일을 향한 일정표와 우여곡절의 원인
30년 전 그때도 이 땅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국제적 탈냉전의 흐름에 당혹한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당시 서울올림픽은 우리 외교안보 및 대북정책에 커다란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제적 탈냉전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북방정책 구상을 밝혔고, 7월에는 한반도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7.7선언'의 요지는 대북한 문호개방과 주변 4국의 남북한 교차승인 제안이다. 당시 서울올림픽은 국제 냉전질서가 해소되는 역사적 전환기에 동서 진영 간 화해를 선도하고 한·중, 한·소 수교 등 우리와 적대하던 공산 국가들과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교차승인은 반쪽만 우선 실현되었다.
또한 '7.7선언'을 기초로 역대 정부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북한과는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선언에 합의하여 비록 실천과정에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한반도 평화와 평화통일의 이정표를 마련했다고 평가되었다.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을 막고 냉전을 종식하려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면서 교류협력으로 적대관계를 점차 해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그것은 세계사의 흐름에 부합하는 순리였다.
그러나 북한은 탈냉전의 국제질서 흐름 자체를 불안해하고 자체적인 핵무기 개발이라는 모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1994년과 2003년 그리고 2008년 이후 반복된 한반도 핵위기로 인한 우여곡절은 '7.7선언'의 이행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고, 북한 핵시설에 대한 폭격(surgical strike)이나 제재와 압박을 병행한 대북 무시 전략(strategic neglect) 등 평화를 위협하는 대안이 모색되기도 했다.
'7.7선언'의 길을 벗어나 우여곡절을 겪은 시간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완성하도록 시간을 벌어주었고, 핵무장을 달성했다는 북한도 핵무기를 가지고는 장래가 없다는 것이 오랜 시행착오 끝에 분명해졌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길은 삼궤병행(三軌竝行)
모든 것을 테이블에 올려놓았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론, 선대 유훈이라는 명분으로 비핵화 협상에 돌아오기로 결단한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 그리고 한반도 냉전질서의 해소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해 온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이 2018년 한반도 평화의 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4.27 남북정상회담의 3대 의제로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 진전을 들고 있으며 타당하게 설정되었다. 현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두 과제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어느 것 하나 앞세우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삼궤병행(三軌竝行)이다.
비핵화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게(CVID)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근본 조치와 병행하여야 한반도 평화정착 논의와 궤를 같이 하게 될 것이다. 이는 '7.7선언'에서 미완성으로 끝난 4대국 교차승인의 일환으로 북·미, 북·일 수교과정과 연계될 수 있다.
과거의 '제네바 합의'나 '9.19공동성명'등 비핵화 합의의 결정적 결함 중 하나는 비핵화를 검증하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합의이행 과정에서 근본적 관계개선 조치를 장래의 문제로 미루어 두고 사실상 무시했다는 점이다.
한편 우리 입장에서는 항구적 평화정착이 분단 고착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7.7선언'과 이에 힘입어 마련된 남북기본합의서의 한반도 당사자 해결원칙은 지난 30년간 핵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이제 북한 비핵화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고도의 국제문제가 되어버렸고 자칫 통일문제마저 당사자 해결원칙보다는 국제사회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할 소지가 커졌다.
따라서 평화논의는 남북관계 진전 등 통일논의와 긴밀히 연계되어야 한다. 이는 '7.7선언'의 구상을 구체화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진입과정 논의와 결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간 단계인 남북연합은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로 접근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은 비핵화, 평화정착,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삼궤병행전략에 입각하여 30년 전'7.7선언'의 완성을 지향하는 데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고히 유지시키고 북한의 핵무기는 물론 관련 핵시설과 물질 모두를 완전한 국제 감시 하에 두는 일과, 냉전질서의 근본적 해소를 위해 북한과 미·일과의 수교과정을 시작하여 '7.7선언'이 제시한 남북한 교차승인을 완성하는 일과, 남북정상회담 등 당국회담을 정례화하여 남북연합의 기초를 놓는 일 등이 조속히 가시화되길 바란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 시작되는 한반도 평화의 논의가 탈냉전의 세계적 흐름을 완성시키고 새로운 세계 평화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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