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비겁한 자여, 그대 이름은 방관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비겁한 자여, 그대 이름은 방관자"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1> 눈물과 분노를 넘어서기

참여사회연구소가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독자들과 만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2005년 광주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도가니'는 광란의 도가니와 같은 양심불량한 권력사회의 치부를 드러내 주었다. 장애인 인권 문제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기득권층에 의해 자행된 우리 사회의 부정의와 부조리 현상을 깨닫게 하였으며,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모두의 배려가 너무나 빈약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다. 이는 정의를 바라는 강렬한 욕구와 함께 사회적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차별과 배제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결과적으로 동조해 온 우리 모두의 미안한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반영하였다.

비록 영화 속 주인공은 눈물과 분노를 삼키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우리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감지할 수 있었다. 눈물과 분노 속에 열광이 있고 미안함이 서려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폭발하고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대한 열광으로부터,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나는 꼼수다(나꼼수)>라는 인터넷 오디오방송의 자기노출에서, 그리고 순식간에 나타나 '우리나라 정치사회에 엄청난 변화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철수 현상'을 접하면서 말이다.

▲ 안철수 서울대 교수.ⓒ뉴시스

<무한도전>은 이름에 걸맞는 도전정신과 참신성, 판매 수익을 매년 소외계층에게 기부하는 배려정신을 잘 엮어 보여줌으로써 팍팍한 양극화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나꼼수>는 딱딱한 시사토론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쉽고 솔직한 이야기로 시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의사, 프로그래머, CEO, 교수 등에서 모두 성공한 모습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자가 갖는 권위적 모습과는 다른 수평적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탈권위주의 리더십의 본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열광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변화를 열망하는 시대정신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부정의를 정의로, 권위에서 탈권위로, 불통에서 소통으로, 가식에서 진정으로, 방관에서 참여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시대정신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돈이 최고가 아니며, 진정한 행복은 이기적인 탐욕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오직 결과의 효율성만 강조하고 과정의 부정과 부패, 반칙에 둔감함으로써 결국 기득권자에게 유리하게 된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강한 반발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서 사적 탐욕이 아닌 공공성을 바탕으로 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기대가 분출되고 있다. 그저 '잘 살아보세'라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 온 결과가 승자독식의 정글사회가 된 데 대한 공분과 함께, 배려와 호혜의 공동체 정신의 상실에 대한 후회가 다시금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이다. 이루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끊임없이 그려보고 또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변화는 변화를 이루겠다는 꿈을 가진 자의 도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은 도전의 진정한 주체는 바로 나라는 시민 의식에서 출발하며 시민이 전면에 나서서 사회를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가능하다. 그러한 시민 의식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시민정치라 부를 수 있다. 직업 정치꾼에만 맡겨서는 변화를 이룰 수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풀뿌리 지역에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에 의한 시민정치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시민이 지역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시민정치는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부정의와 부조리에 의한 기득권의 철옹성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득권의 철옹성 문제는 끼리끼리 사고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에서 비롯된다. 집단사고는 정치의 본질상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강한 응집력으로 뭉쳐진 '우리가 남이가?'하는 폐쇄적인 집단사고는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게 하며, 주변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며, 정당하게 비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리하여 상식과 원칙을 예사로 무시하며, 자기 생각만 옳은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편가르기를 당연시한다. 여기에는 통합이 있을 수 없으며, 소통은 발붙이지 못한다. 심지어는 남의 생각은 모두 옳지 않은 것으로 여겨 억압과 탄압을 수시로 하게 된다.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은 이러한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야만적인 집단사고의 문제를 파헤치며, 정글사회의 눈물과 분노를 넘어서 이제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누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 붓으로 행동하고자 한다. 붓의 힘을 통해 풀뿌리 공동체를 지향하는 시민정치의 장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 때로는 옹차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한숨으로, 때로는 호탕한 웃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부디 사랑과 조언과 정겨운 채찍을 기대하면서, 다시금 1960년 4월 혁명 때 부르짖던 한 시인의 절규를 똑똑히 기억하고자 한다.

"비겁한 자여, 그대 이름은 방관자니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