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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정원은 왜 유가려-변호인 만남을 방해했나?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검찰을 통해 처음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최미복 판사)은 가려 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막아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권영철 전 국정원 안보수사국장에 대한 재판을 20일 열었다. '유우성 변호인단 접견권 침해' 논란 관련 국정원 관계자가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 씨 변호인단은 2013년 초 가려 씨에 대한 접견을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국정원이 이를 모두 불허했다며 국정원을 고발했고, 5년 만에 책임자가 법정에 넘겨졌다.

변호인단은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했던 가려 씨가 진술을 번복할 것을 염려해 국정원이 고의적으로 변호인단과의 접촉을 막았다고 줄곧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은 이번에 검찰 공소장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이 작성한 권 씨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내 유우성 사건 수사팀은 '유우성 변호인단이 유가려를 회유, 실체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되므로 유가려와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논의했다. 이후 수사국장이었던 권 씨는 수사팀에 '유가려의 변호인 접견 거부 의사 표명'을 이유로 접견을 불허할 것을 지시했다.

유우성 사건에서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제시한 유일한 증거는 가려 씨의 자백이었다. 그러나 가려 씨의 진술은 국정원 회유와 협박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결국, 접견 방해 또한 국정원의 조직적인 간첩 조작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지금까지 접견 방해 행위의 위법성은 변호인단이 제기한 민사 소송 등을 통해 여러 번 확인됐다. 그러나 접견 방해의 목적, 고의성 등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레시안(서어리)

국정원, 유가려-변호인 만남 어떻게 방해했나

변호인단이 가려 씨를 만나기 위해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2013년 2월이었다. 국정원은 △'유가려는 참고인 신분으로 변호인 접견 대상인인 피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유가려 본인이 변호인과의 만남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접견을 차단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관은 가려 씨에게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고지했고, 가려 씨로부터 "변호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진술서도 받았다. 가려 씨가 변호인 접견권 대상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유가려는 참고인 신분으로 변호인 접견 대상인이 아니'라는 국정원의 설명은 애초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가려 씨가 제출한 변호인 접견 거부 확인서 또한 가려 씨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가려 씨의 본심은 재판에서 드러났다.

2013년 3월 4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보전절차. 당시 유 씨의 변호인 측은 가려 씨에게 "제가 이번에 국정원 가면 저 꼭 만나줘요. 만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가려 씨도 "만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분명히 만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측의 만남은 연거푸 불발됐다. 국정원의 방해 때문이었다.

증거보전절차 다음 날인 2013년 3월 5일 장경욱‧천낙붕‧양승봉 변호사가 합신센터에 찾아가 접견 신청을 했다.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가려 씨를 만날 수 없었다. 국정원 측은 이번엔 변호인이 접견 신청을 한 사실 자체를 가려 씨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다음 날인 6일에도 천낙붕‧장경욱‧김용민‧김남국‧양승봉‧하주희‧이광철‧설창일‧김진형 변호사가 신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국정원은 변호인 접견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은 변호인 접견권을 외면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해까지 하여 수사기관이 해야 할 책무를 책임자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버렸다"며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검찰은 왜 수사국장만 기소했나"

변호인단은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심판의 기회가 늦게나마 열린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권 씨 한 명만 기소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권 씨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닌 조직적 범죄이며, 따라서 다른 관련자들을 추가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정에 불려 나온 권 씨는 지난해 11월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 결과 '내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한 수사국장'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TF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가려 씨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거짓으로 나타나자 합신센터 직원들은 권 씨에게 유 씨에 대한 압수 및 체포영장 신청 보류를 건의했다. 수사국 실무진도 '결정적 물증이 없고, 유가려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고 있어 현 시점에서 강제수사 진행은 무리'라고 반대했다. 권 씨는 이를 무시하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기사 : "국정원 수사국장, 유가려에 무리한 수사 강행 확인")

그러나 적폐청산TF 조사 결과는 국정원 내 여러 가담자 가운데 소수의 책임자만 지목한 점, 증거 조작 문제에만 집중한 점 등으로 축소‧부실 조사 논란을 낳았다.

실제로 국정원 내부 제보자는 유 씨 변호인단 측에 서신을 보내 '이번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에서도 자신들(당시 수사팀 간부들)은 유우성에 대해 수사 착수를 반대했으나 국장이 강권했다고 진술하는 등 아직까지도 나쁜 버릇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다른 관련자들을 규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단독] 국정원, 간첩 조작 수사 방해 "철저히 조사할 것")

변호인단은 이번 기소 또한 적폐청산TF 조사 결과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변호인 측은 "공소장에 나온 '피고인'의 행위 자체가 단독범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권 씨의 윗선과 아래 부하들은 왜 기소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꾼 중앙합동신문센터. ⓒ프레시안(최형락)

유가려 "국정원 압박에 '변호인 거부' 거짓 진술...증인 신청해달라"

이날 재판은 권 씨 측 변호인 변경 문제로 이렇다 할 쟁점 다툼 없이 끝났다. 기소 내용에 대한 권 씨의 입장을 청취할 기회는 다음 공판이 열리는 다음 달 29일로 미뤄졌다.

권 씨의 혐의 시인 여부와 함께 이 재판에서 주목할 점은 사건 핵심 증인인 가려 씨의 증인 채택 여부다.

가려 씨는 20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합신센터 수용 당시 변호인 접견을 못 한 데 대해 "독방에 갇히고 잠도 못 자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수사관들이 저한테 '변호사를 만나게 되면 중국에 있는 아버지에게도 안 좋다', '변호사 만나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뒤에서 돈 많이 썼다. 마음만 먹으면 증거는 다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며 "너무 무서웠고 결국 압박에 못 이겨 그런(변호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증거보전절차 이후 국정원 측에 변호사들과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너무 억울하고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아있다"며 "만일 검사가 저를 증인으로 신청할 경우 꼭 재판에 출석해서 제가 겪은 일들을 사실대로 다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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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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