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과거 중국 혹은 좀 적나라한 표현으로 우리의 "종주국"에 가서 지금의 외교관이나 외교사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충성을 서약하고, 안심시키고, 우호 관계를 재확인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게는 냉전의 시작과 더불어, 특히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국가와 정권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이른바 새로운 "종주국"으로 등장하였다. 미국이 군사원조와 경제원조를 하지 않으면 북한에 흡수되거나, 우리 나름의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가 1950년대에서 시작하여 최대 80년대까지 이어졌고, 그러한 불안의 관성은 더 지속되어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한 이유로 30년을 넘는 기간 동안 당시 집권세력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가서 미국에 잘 보이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워싱턴 DC에 가서 친한인사 확보, 한미동맹 유지 강화 호소, 미국에 대한 감사와 의리 재확인 등과 같은 일을 하였다.
과거 중국과의 관계와 다른 것은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미국 시스템이라는 특징과 교통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직업외교관이나 정치인이 아닌 학자들이 미국에 가서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고, 우호적인 한미관계를 구축하는 막후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워싱턴 DC에서의 친한인맥 형성과 그곳 싱크탱크에서의 친한 여론 조성, 어떤 경우에는 로비에 가까운 일을 하는 임무가 당시 소수 몇 명의 능력 있는 미국 박사 출신 학자들에게 맡겨졌고, 이들은 그 일의 중요성 및 30년을 넘게 다져온 미국 인맥으로 인하여 한국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쌓게 되었다.
이들을 대표하는 곳이 "서울 포럼"이라 불리우는 곳인데 이 포럼에는 그 당시의 학자들을 포함 현재에도 외교장관, 주미대사 등을 역임한 주요국 대사 출신의 외교관, 재벌 인맥, 그리고 미국 박사출신의 일류 대학 교수들이 포진해서 막강한 대미 민간 외교 창구를 구축하고 있다.
사실상 한미관계 및 거기에서 파생한 다른 주요국 민간 외교 창구를 30년 넘게 독점해 온 단체가 바로 서울 포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위 안보보수 세력이 정권을 30년 이상 독점하여 왔고, 임기가 없는 보수 성향의 이들 학자들이 오히려 특정 정권보다도 더 오래 한미관계의 막후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맥이라는 것이 쉽게 구축되는 것이 아니고, 미국인들과 비교적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전문가 집단이 별로 없었던 시기에 자연스럽게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이 커진 것에 대해서는 꼭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의 안보상 한미동맹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 정부의 교체와 정치 경제적 격변에 상관없이 한미관계의 주요 인맥, 정책, 정보 채널을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그 공로를 인정할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서울 포럼이 아무리 막강하다 하더라도 성공적인 모델은 전파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유학한 박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한국에서도 미국을 모방한 싱크탱크와 연구소가 급증하고, 워싱턴 DC로 출장 가는 비용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경제력이 생겨나면서, 또 워싱턴 DC에서 회의하고 올 수 있는 인물‧기관이라는 명성이 한국에서 주는 특권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는 만큼 매년 워싱턴 DC를 방문하고자 하는 수요는 가히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각종 정부 출연 연구소, 대학교수,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의 워싱턴 방문이 거의 연중 내내 이루어지고, 특정 시기에는 한국의 싱크탱크 종사자의 거의 전부가 워싱턴에 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워싱턴을 자주 찾고 있는데, 그 이유는 워싱턴이 중요해서 뿐만이 아니라 모두 "서울 포럼"의 성공모델을 쫓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성공모델은 안보보수 세력의 성공모델이었기 때문에 워싱턴을 자주 찾는 이들의 정치적인 성향도 자연스럽게 그쪽에 가까운 인사가 다수를 점하여 왔다.
한편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이들 방문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워싱턴의 우리 허브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자연스럽게 세금이 들어가는 허브가 구축되고, 그 허브에는 이른바 지한파, 친한파 인사들을 기관장과 주요보직으로 모시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생긴 기관들이 (물론 자체적인 전문 사업도 하지만), 워싱턴 DC의 KEI (Korea Economic Institute),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존스홉킨스 국제관계 대학원 산하 USKI (US-Korea Institute), 부르킹스 연구소 (Brookings Institute)의 한국석좌, 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의 한국석좌 등과 기타 프로그램 들이고, 이들 기관들은 한국 방문인사들을 위한 회의 조직, 한국관련 분석보고서 발간, 언론기고 등의 활동을 주로 한다. 또한 각종 단체나 기타 싱크탱크, 대학 등도 한국 정부나 유관기관에서 연구비 및 예산지원, 기부 등을 통해 친한 인맥 관리 및 한국관련 연구 출간, 회의, 공공외교 등을 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문제는 시대가 변하고, 나라도 변하고, 국가 간의 관계도 변하여 "서울 포럼 모델"의 성공적인 지속 가능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또 그간의 부작용이 계속 쌓여왔다는 점이다. 첫째는 냉전 종식과 한국 국력 신장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이 급격히 개선되었고, 북한이라는 나라는 한미동맹으로 막아야 하는 막강한 위협을 넘어 어떻게든 국제사회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지속적 안보 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관계와 우의를 다지는 대미 우호 사절뿐만 아니라 여러 사안의 전문가들의 방문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다.
둘째로는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소위 보수세력 자체가 교체되는 정권교체가 자꾸 발생하자 그동안 쌓아온 한미의 인맥 지도가 과거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권교체로 인하여 북한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상이한 입장을 보이는 정부와 세력이 한국에 등장하게 됨에 따라 한미 간에 우의를 다지고 감사함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중요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셋째로는 그간 성공모델에 대한 과잉투자와 이벤트 성 투자가 커지면서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친한인맥을 형성하기 위하여 미국 기관에 비교적 후한 지원을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세금의 낭비, 방문의 역효과 (설득하러 갔다가 오히려 설득과 설교를 당하고 오는 효과), 워싱턴 DC의 국내정치화 (정부 비판을 워싱턴에서 하거나, 미국의 한국 정부 비판적 인사나 입장을 이용한 언론 플레이 등), 그리고 동일목적의 유사한 방문의 중복과 빈약한 정보공유 시스템과 문화, 심층적 연구나 분석보다는 이벤트성 행사에 치중된 점 등이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최근 논란이 되어 문을 닫게 된 존스 홉킨스 국제관계 대학원의 USKI의 문제도 이러한 부작용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 전문가 학자 양성이나 심층 연구보다는 이벤트성 행사나 한국의 요인들 방문 목적으로 예산이 방만하게 사용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제 다시 정권이 바뀌어 안보보수 세력은 정부의 운전대를 놓게 되었다. 앞으로 북핵 문제나 통상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한미가 반드시 의견의 일치를 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은 1960~80년대와 달리 학자들이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한미관계가 굳건하다는 의지를 보이고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면 되는 시기가 아니라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고, 또 한미 상호간 신뢰를 깨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서로 입장 조정과 조율을 하기 위해 워싱턴 DC를 가야만 하는 시기이다. 방문하는 전문가들은 우의를 다지는 인간관계 능력에 못지않게 전문성과 지략을 요구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호 관계를 재확인하는 이벤트성 회의를 연중 수차례 하기 위해 비싼 세금 들여 미국까지 날아가기 보다는 정말 사전준비와 사후점검이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체계를 만들어 정부 정책을 잘 아는 정예부대들이 민간 외교의 로드맵과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방문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의 많은 세금을 이벤트를 위한 수많은 허브 기관 중복 구축을 하는데 사용하기 보다는 더 많은 미국의 한국 연구자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려운 일 하라고 있는 직업이 전문가이다.
예전 독일 베를린에 방문하여 독일 통일 관련 회의와 기관 방문을 했을 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이 있었다. 독일의 담당자 얘기를 옮기자면 정말 많은분들이 오셔서 "매번 같은 자료를 요청하고, 비슷한 회의를 해서 당황스럽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태까지의 워싱턴 DC가 독일의 베를린과 크게 달랐을지 자신있게 얘기하기 어렵다. 지금의 한미관계는 매우 중차대한 시기를 맞고 있다. 한미 간에 이견을 조율하면서 훌륭한 공조외교를 펼친다면 동북아시아의 판을 바꾸는 대전환을 만들 수도 있다. 전문가들이 미국에서 귀중한 국가의 세금을 쓰면서 관성적인 회의나 협의를 하기에는 역사의 시선이 너무나도 매섭고 엄중하다.
한국에서 전문가나 기관 간에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굳이 중복으로 여러 기관이 자꾸 미국에 안 가도 된다. 국내에서 정보 공유 시스템을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 인맥구축을 하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너나 할 것 없이 몰려가는 것보다는 그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것이 훨씬 세금이 덜 들고 효과적이다. 그리고 현지의 인맥구축과 현안 정보획득에 특화된 직업이 바로 외교관과 정보원이고, 학자는 연구‧분석‧대안 제시에 특화된 직업이다. 학자에게 인맥구축이나 인간관계 능력까지 요구했던 것은 영어 능력자가 부족했던 과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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