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지나친 개입으로 일반인들의 비판을 받던 보수적 기독교 세력은 목사님들이 예배 시간에도 '투표 독려'를 하고 나섰다. 투표 당일, 지난 6월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서울의 강남 3구는 '오세훈 지키기'에 나서 엄청난 결집력을 보여줬지만, 예상대로 주민투표함 뚜껑은 끝내 열리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묻히게 됐다.
한나라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을 던지면서 민주당이 승기를 잡은 듯 했다. 하지만 야당의 기쁨은 잠시, 바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태가 터지면서 진보개혁세력은 '도덕성' 논란에 빠졌다. 수사 시작 의도와 무관하게 수사 진행 과정에서 충분히 '정치적'인 검찰을 동원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기쁨도 채 일주일이 가지 못했다. 내달 26일로 예정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출마를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철수 돌풍'이 불었고, 대중의 관심을 잡아 끌었다. 닷새간 정국을 강타한 '안철수 돌풍'은 지난 6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안 원장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서울시장 보선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어졌지만, 지지율이 크게 앞서던 안 원장이 박 상임이사에게 통 크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면서 안 원장은 일약 대선 주자급으로 부상했다. 이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나온 몇몇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린 셈이다. 불과 2주일 남짓한 짧은 시간에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치 얘기의 중심은 '안철수 돌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일 추석을 앞두고 서울 모처에서 가진 '30대 정치와 놀다' 세 번째 방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획을 처음 보는 독자들을 위해 첫번째 방담의 머릿말의 일부를 되풀이해 보도록 하자.
이 기획은 일반화된 세대론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대 구분은 '공통의 경험'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30대들의 정치인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30대의 일상은 노동, 부동산, 교육, 의료 등 정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숱한 문제로 점철돼 있다. 40대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에 비해 더 젊고 혈기왕성하다는 점에서, 30대의 불만 표출은 더 빠르고 직설적이다. 30대 생활인들이 정치를 향해 던지는 '언어폭탄'이 소통 부재를 이야기하는 정치권에 작은 파열음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발생한 미네르바 사건, 쥐벽서 사건 등 크고 작은 '말할 자유에 대한 탄압' 사건을 감안해 수다에 참석한 패널들은 다 가명을 쓰기를 원했다. 이에 발맞춰 기자들도 이 수다 만큼은 이름을 가린다. 또 거론되는 정치인들의 직함은 대화의 흐름상 생략한다.
이번 방담에는 한명의 남성 패널이 새로 참가하게 됐다. 세시간 여에 걸쳐 진행된 방담을 두 번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패널 소개 공효진 : 나이 서른 둘. '베프'를 '절친'으로 바로 잡을(국어를 사랑합시다!) 정도로 교육자로서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고등학교 미술 교사(안타깝게도 비정규직이다). 이태권 : 나이 서른 여섯. 직원이 20여 명인 중소기업 사장. 아이가 둘인데, 뭐가 더 욕심이 나는지 올해 11월 셋째를 출산한다고. 첫 애를 초등학교 보낼 때 엄청 고민했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공교육에 불신이 크다. 임재범 : 나이 서른 아홉. 열살(아들), 일곱살(딸), 생후 6개월(딸), 자녀 셋을 둔 유부남. 현재 공공기관에 근무하고 인천에 살고 있음. 과거 극좌적 정치 성향을 가졌으나 최근 들어 점점 직장 동료들을 따라 우경화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듬. 지성 : 올해 서른 셋, 남자. 생후 120일 된 '따끈따끈한' 아들이 있는 직장인이다. 어머니가 권사인 개신교 집안이라 어릴 때부터 대형교회에 다녔으나 고민 끝에 현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함. 하지원 : 나이 서른 하나. 프레시안 기자의 취재망에 걸려든 길거리 캐스팅의 주인공. 영화 연출가. 처음에는 엄청난 열정으로 시작했으나 영화판의 '저임금 노동착취' 시스템에 질렸다고. 조연으로 프레시안 기자 1(서른 아홉. 아들 하나를 둔 유부녀), 프레시안 기자 2(서른 셋. 싱글남), 프레시안 기자 3(서른 하나, 싱글녀)가 참석했으나 '프레시안'으로 일괄 표기함. |
25.7%는 오세훈 지지? 보수의 세를 지키기 위한 표!
프레시안 : 지난 8월 24일에 있었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하셨나요?
지성 : 투표하고 싶었어요. 투표를 지금까지 안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안해야 할 상황이니까 안했죠.
프레시안 : 주변에는 투표하신 분이 좀 있나요?
지성 : 어우, 주변에는 엄청 많이 했죠. 저희 어머니, 식구들, 한나라당 지지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요.
프레시안 : 투표하신 분들은 다...
지성 : 100% 한나라당이죠.
프레시안 : 주변 분들이 투표 하러 가시기 전에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이를테면 오세훈 시장 사퇴는 안 된다거나, 나라 재정이 문제라거나.
지성 : 오세훈에 대해 투표한다거나 그러진 않죠. 보수 쪽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세를 위해 투표한 거 잖아요. 오세훈은 투표율(25.7%)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다 아니라고 생각하죠.
제가 서울지역 A 교회 출신이거든요. 굉장히 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른바 '대형 교회'죠. 교회 분들이 많이 (투표장에) 가고 그랬어요. 저희 어머니가 거기 권사님이세요. 저도 A교회를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다녔어요. 제가 교회 다닐 때 친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명문대 교육학과 나왔고 석사과정에 있는 친구예요. 괜찮은 친구인데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친구예요. 역시 A교회의 독실한 신도고요. 그 친구가 투표날 아침 7시 반인가? 제가 출근하고 있는데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더라고요. 그런데 받는 사람이 저 포함 37명이예요. 내용이 '내가 투표장에 왔는데 사람이 없었을 줄 알았는데 삼삼오오 많은 사람이 나왔다'는 것이에요. 딱 보니 자기가 쓴 글은 아닌 거죠. 카카오톡으로 이만큼이나 긴 (분량이 많은) 메시지를 보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정치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친구 사이인데 그런 얘기하기도 좀 그렇고. 개인적 친분관계를 중요시했죠(웃음). 그런데 그 문자를 받고 보니, '보수 표가 집결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레시안 : 이번 주민투표에서 개신교의 행태가 도마에 많이 올랐죠. 모 대형교회 목사는 설교에서 '투표하면 구원 받는다'는 했다고 하고.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한 시점이 일요일 오후 11시였어요. 교회 설교가 끝날 시간이죠. 타이밍을 잘 잡았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정치 목사들의 커밍 아웃, 도대체 왜?
▲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장로 대통령' 때문은 아니겠지만 현 정부 들어 일부 기독교의 지나친 정치 개입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이번 주민투표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 대표적이다. ⓒ뉴시스 |
하지원 : 이번에 투표 독려 문자를 많이 받았잖아요.
프레시안 : 네, 저도 받았어요.
하지원 : 하도 많이 와서 친구들끼리, '다 받아보는데 나만 안 받으면 억울하지 않냐'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인증샷 찍어서 돌리기도 하고.
임재범 : 누구로부터 문자가 와요? 일반인이요?
공효진 : 저는 그냥 '1004'로 왔어요.
지성 : 발신이 누구인지 모르고요?
하지원 : 네, 다른 친구 하나는 '나는 부산 사는데 문자가 온다'고 하기도 했어요.
공효진 : 투표 끝나는 시간에 '한 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구의원 OOO 배상, 이렇게 문자가 오기도 했죠.
프레시안 : 특히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투표 독려가 좀 도를 지나치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죠. 선거법 문제도 있는데다, 종교가 현실정치의 '플레이어'로 적극 나서는 상황이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왜 그런 걸까요?
하지원 : 교회 목사님들이 선거 때마다 어떤 지역에 가서 부흥회를 하러 다니고 그러는 것도 많이 봤어요. 정치 목사들이죠.
이태권 : 그런 행태들은 (정치 목사들의) 커밍아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좋은 거 같은데요. 앞으로도 좀 더 그래줬으면 좋겠어요. (웃음) 오히려 거룩한 성직자인 것처럼 하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홀딱' 벗고 나오는 거잖아요. 자기 인증이죠. 그러니까 (시민사회 일각에서) '종교세' 얘기가 나오고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공감대도 받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목사들이 세금은 안내면서 돈을 함부로 쓰니까.
프레시안 : 세금을 안낸다는 것이 곧 '남의 세금을 함께 쓰는' 행위니까.
이태권 : 그렇죠.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성역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진 것 같아요. 성역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차피 (지금 사회에서) 종교는 세속(의 영역)인데. 참여하는 교인들을 통해 목사님들이 뭔가 다른 것을 노리는 게 있겠죠. 그런 (일부) 목사들은 교계가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그 방향이나 이런 것은 신경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원 : 이전 국회에 비해 기독교인 국회의원이 늘어났고, 장로 출신 정치인들이 늘어났대요. 그걸 '부흥'이라고 하면서 (일부 개신교도들이) 좋아하고 있죠.
지성 : 저도 기독교 신자였는데 지금은 교회 안 다녀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어머니가 권사님이고, 집안사람들이 다 교회에 다니는데...저는 북한 주민이 이해가 가는 게, 김일성-김정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이해해요. 기독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그런 것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10년 걸렸어요.
이태권 : 하나님을 부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는) 목사님을 부정하면 안 되는 식으로 된 것 같아요.
지성 : 저는 '불가지론'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의 경험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인데, 최근 <종교전쟁>(장회익, 신재식, 김윤성 저)이라는 책을 보고 알았어요. 종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계기가 됐죠.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는 게 '기복 신앙(복 받기 위해 기도하는 방식)' 때문이었는데, 기도 해서 아들 좋은 대학 가고, 이러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식인 거죠. 그런 식으로 (제가) 믿음을 가졌던 것 같은데 좀 달라졌어요. 어머니도 물론 굉장히 합리적인 분이예요. 그런데 (교회 일은) '가타부타 하지 말고 그냥 해라'고 하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MB정부 들어와서 기독교인에 대해 실망이 컸죠.
이태권 : 영화 '밀양'이 생각나네요. (일동 웃음)
지성 :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까, 기독교 신앙이 그게 아니었어요. 예수님은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고, 무상급식도 어떻게 보면 기독교적인 거죠. 그런데 목사님들이 앞장서 주민투표로 무상급식을 반대하자고 하니...
이태권 : 실제로 신자들은 종교에 대해 존재론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목사님들은 일반 신자님들이 느끼는 고뇌보다도 훨씬 저 밑에 있는 것을 가지고 막 싸우니까...그런 것들이 일종의 (퇴출돼야 할 정치 목사들의 자발적) 커밍아웃이라고 느끼는 거죠.
프레시안 : MB정부 들어서 신자로서 기성 개신교의 모습에 실망을 했다고 말했는데, 왜 그런 걸까요? 기자들이 느끼기에도 이명박 정부 들어 종교갈등이 사회갈등으로 크게 부각됐거든요. '장로 대통령'이라서 그런가(웃음).
이태권 : YS도 장로 대통령인데,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
하지원 : 한나라당 자체가 기독교 당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어요. 대형 교회들이 한번에 MB를 지지하는 것을 보니까 놀랍기도 했고. 제가 아르바이트로 그런 목사님 중 한분의 설교를 (방송용으로) 편집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하면서 이 분들은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정말 심한 말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제가 많이 편집했지만(웃음).
임재범 : 종교 얘기는 너무 멀리 나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프레시안으로 쳐들어올 수도 있어요. (일동 웃음)
이태권 : '커밍아웃'했다고 말했는데, 이른바 (교회의) 마케팅이 강해진 것이라고도 봐요. 예전에는 점잖게 해도 사람들이 모였는데, 매년 천주교, 불교 신자 비율이 늘어났어요. (통계청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불교 인구는 1031만 명에서 1072만 명으로 41만 명이 증가했고, 개신교는 876만 명에서 861만 명으로 감소했다. 불교에서 개신교로 바꾼 사람보다 개신교에서 불교로 바꾼 사람이 증가했다. 편집자) 말씀하셨던 복음주의가 전후 세대, 특히 80년대 이후 세대에 잘 안 먹히는 거죠. 그러니까 그 (목사) 분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더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거고. 현실적인 (정치적) 힘을 행사해서라도 개신교의 위상을 지키려는 노력이 이런 어이없는 '커밍아웃'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현실정치 쪽으로 많이 들어가려고 하는 거죠.
임재범 : 기독교가 줄고 있어요? 굉장히 충격적이네요. 저는 어릴 때 교회 안 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어요. 성경학교도 많고. 그런데도 줄고 있다는 건가요?
이태권 : 목사님들 말씀에 무조건 '아멘'하시던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바뀌게 되면 (기존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는) 굉장히 암담한 거죠.
프레시안 : 우리나라 기독교 현실을 보면서 일부 보수 기독교인의 경우 정권을 빼앗겼던데 대한 공포가 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우리나라 기독교의 뿌리를 미군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기독교 신자 다수가) 이북에서 내려왔거든요. '공산주의자'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던 거죠. 이 분들이 남한에 내려와 살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 보수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니 불안해지고, 그러다보니 과격해진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할 것 같아요.
프레시안 : 종교 얘기는 여기까지 하죠. 종교 얘기하면 하실 말씀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공효진 : 결국 문제는 '위기의식'이라는 것 같아요. 지금 한나라당, 보수 세력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조선일보> 시론(최보식 선임기자의 8월 5일자 칼럼 '좌파세력에 배울 점')을 봤는데 너무 웃겼던 게, 왜 우리 우파는 진보세력처럼 누구 하나 총대를 메고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크레인에 올라가는 사람도 없고, 또 우리는 돈을 내야 집회에 참여하고 (어버이연합 등) 나이 드신 분들만 열심히 일하냐. 진보 세력을 봐라. ('희망버스'를 예로 들면서) 자기 돈과 시간을 내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더라.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이 느끼는 무기력감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원 : 보수는 좌파, 우파를 선악의 개념으로 나누는 것 같아요. 민주당도 좌파 정부는 아닌데, '좌파'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쌓아올린 기반을) 침해당한다고 느끼는 거죠.
이태권 : (민주당은) 좌파가 아니라 '자파(自派)'죠. (웃음)
'안철수 돌풍'을 바라보는 보수-진보, 다 '안습'이야
▲ '안철수 돌풍'은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 계속될까? ⓒ프레시안(자료사진_ |
임재범 : 한나라당은 안철수도 좌파라고 하던데.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화제를 지난 5일간 '뜨거운 화두'였던 안철수로 돌려보죠. 쉬운 질문부터 갑시다. 안철수 좋아하시는 분?
지성 : 안철수 안 좋아하시는 분 계세요?
프레시안 :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웃음)
지성 : 보수적인 분들도 안철수는 다 좋아하긴 하던데...그런데 좀 다르긴 하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제 친구가 강남 사람이 많아요. 제가 안철수랑 박근혜랑 (대선에서 나온다면) 누구 찍을 거냐고 물어봤어요. 다들 '안철수 좋다'고 하던 친구들이었거든요. 그런데 고민을 하더라고요.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보수 쪽은 진보 쪽보다는 '차선'이라도 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거죠. 박근혜는 왠지 마음에는 안 들어. 그런데 이른바 '좌파' 정권이 재집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 (그 친구가) 안철수를 안 뽑고 '박근혜를 찍어야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안철수를 좌파라고 누구도 얘기 안했죠. 한나라당이 좌파라고 했지. 좌파 우파 개념도 정리를 해야 해요.
임재범 : 우리편 아니면 좌파?
이태권 : 안철수는 제가 보기에는 빌게이츠 같은 느낌이고. 딱 그 정도죠.
임재범 : 그런데 (정치인으로 포함시켜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가 박근혜를 이긴 것도 있잖아요.
프레시안 : 이른바 '중간층'이 안철수를 '발견'한 거죠. 안철수의 '스펙'도 굉장한 것 같아요. 의학박사에 의대 학과장, 벤처 기업 만들고 외국에 유학 가서 경영학 공부도 하고 지금은 서울대 교수고.
임재범 : 사람들이 그런 것, 구체적으로 잘 모를걸요?
프레시안 : 만약 선거에 나와서 명함으로 그런 이력을 찍어서 돌린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 같기도 해요. 손학규의 경우 옥스퍼드 출신에 교수라는 이력 분당에서 일부 통했으니까.
이태권 : 그게 이른바 '융합'이죠. MBA도 하고, 사업도 하고, 의사도 하고...저는 놀랐던 게 자칭 '진보'라고 하는 분들이 안철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을 넘어서, '기존의 정치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위터 같은 데 보면 안철수가 저쪽(보수) 편이냐, 우리 편이냐 하는 논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반한나라당' 입장을 밝힌 인터뷰 기사가 나오니까 '봐라, 이제 우리 편이다'라면서 지지하는 거죠. 별로 좋게 안 보였어요. 어떤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는 어떤 틀에다가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 보였거든요.
프레시안 : 그렇죠. 다만 '서울시장 재보선'이라는 기존의 정치 제도적 '틀'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추는 쪽으로 간 것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태권 : 안철수 캠프. 캠프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쪽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서 서울시장 출마 준비를 했다고 보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비판했잖아요. '행정과 정치를 어떻게 분리하느냐', '뭔가 바꾸려면 국회부터 들어가라.' 그런데 바꾸려고 하는 대상 자체가, 안철수랑 김종인 같은 기존 정치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예 다른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그 쪽(안철수)의 전략이 맞는 것 같아요. 서울시장은 외교, 안보, 국방에서 제외가 되고 거시 경제에서 제외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행정의 관점에서) 시장이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죠.
저도 예전에 IT 기업에서 근무를 했는데, 386세대가 IT기업을 일구는 전략과 전술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작은 성공과 작은 혁신들을 눈덩이처럼 키워나가는 전략이에요. 이것을 (기존 정치권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국회에 들어가서 바꾼다? 그것은 결국 정부부처 관료들과의 싸움일 뿐이죠. 뭔가 정책을 추진해도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못하잖아요. 제가 하려는 얘기는 여전히 기존 정치 프레임에 갇혀서 바꾸려고 하는 대상도 기존 정치 프레임에서 본다는 거예요. 안철수 주변에 윤여준, 박경철 등 전혀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을 보고도 '아, 이런 형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프레시안 : 언론들이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것을 보고 '대권을 노린다'고 봤는데, 그런 '정치 틀'로 설명을 하는 그런 것도 굉장히 잘못 보고 있는 것이겠네요?
이태권 : 제가 보기에는, 그런 로드맵을 그린 것 같아요. 지자체 중에서도 서울시는 굉장히 의미가 크니까 여기에서 혁신의 증거를 보여주고 경험을 쌓아서 국가를 경영하는 방향으로 잡은 것 같긴 해요. 그런데 그것을 (기성 정치권이나 언론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안철수의 양보, 선의일까? 꼼수일까?
프레시안 : 안철수가 대선에 나갈까요?
이태권 : 그것은 모르죠. 자기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대선을 염두하고 양보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마인드'가 아닌 건데, 질문 던지는 사람은 그런 '마인드'로 질문한 것 같고.
프레시안 : 보는 눈이, 이태권 씨가 역시 '사업가'라 '정치꾼'의 시각과는 확실히 다르군요. (웃음)
지성 : 기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박원순이 여론조사 5% 나왔는데 50% 나온 안철수가 양보를 했다고 나오니까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 같은 데서 '이것은 정치적 쇼고, 정치적 시나리오다'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그 쪽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으니까. '꼼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죠. 항상 '꼼수' 속에서 생각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안철수가 진짜 선의인가요? 꼼수가 있었을까요?
프레시안 : '꼼수'라기에는 좀 헐거운 면이 있죠.
지성 : 저는 안철수가 정치를 할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윤여준이 뒤에 있고, 서울시장 무소속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하고, 다음날 바로 박원순과 단일화를 해버리고. 그래서 한편으로 이게 일종의 '꼼수'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 거죠.
프레시안 : 대부분의 언론이 우왕좌왕 했던 것 같아요. '큰 기획'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헐거운 모양새가 많았죠. 오세훈의 시장직 사퇴 약속 기자회견으로 시작돼 약 보름 동안 벌어진 일인데, 기획을 하기에는 좀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이태권 : 저는 안철수가 서울시장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 더 큰 쪽으로 나가려는 시나리오 같은 것은 있었다고 봐요. 정치나 시정이 '플랫폼'이 되고 시민들이 직접 '플레이어'가 되는 것을 꿈꿔서 나온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박원순에게 양보한 것이 안타까워요.
프레시안 : 박원순도 자신이 '정치 신인'으로 나가는 것인데, 뭔가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이태권 : 제가 보는 관점인데요, 박원순이 지금까지 한 사업들을 보면, 일단 '펀딩'을 잘하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출범시키는 것, 여기까지는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후에 거기에서 손을 떼고 다른 것을 또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는 거죠. 진보적이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권력자나, 돈이 많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뛰어나거든요. 물론 젊은 사람들과 소통도 뛰어나고요.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아름다운 가게든, 참여연대든 (박원순이 하는 사업이) 모두 바람을 타서 처음에 잘 안착이 됐지만, 그 이후에는? 그냥 유지만 되는 것 같아요. 박원순은 '출발'을 잘해요. 그런데 유지, 확장하는 게 중요한데, 그것은 아직 입증된 게 없는 것 같아요.
임재범 : 일종의 창업 전문가인가요?
이태권 : 정말 출발에 있어서는 능력이 좋은 분이라는 거죠.
프레시안 : 본인이 '똑같은 것을 10년 이상 한 것은 결혼생활 밖에 없다'는 말도 했었죠. 본인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게 변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보면 바로 그 일로 옮겨가는 그런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시장 임기가 4년이죠.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도 등을 보면 대부분 4~7년 정도 하셨다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서울시정이 짧은 걸 감안하면, 오히려 그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박원순에 관한 얘기는 있다 할 거니까, 다시 안철수 얘기로 돌아와보죠.
안철수, '아름다운 양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쿨'하다!
▲ 지난 6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가진 뒤 서로 포옹하는 박원순(왼쪽)과 안철수. ⓒ프레시안(김하영) |
공효진 : 안철수 씨는, 그 분의 강연 같은 것을 재밌게 봤었어요. 굉장히 TV에도 많이 나왔어요.
이태권 : 저는 강연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좀 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렇지 않나요?
공효진 : 아니예요. 나름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아요. 박경철, 김제동과 같이 나오면 어우러져서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고, 에너지를 젊은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그런 열정을 느껴졌어요.
그런데 서울시정을 잘 할지, 저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안철수가 나온다고 했을 때도 저는 '지켜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언론 등을 통해서 보면) 굉장히 솔직하고 신중하고 자신감 있게 얘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어요. 모르겠어요. 그 분이 시장이나 그런 선거에 나오면 어떨지..저는 이 모임에 오면 뭔가 '점쟁이'가 돼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웃음) 제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런 것을 좀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하지원 : 제가 보는 안철수는, 자기가 잘할 수 있는데 양보하는 그런 캐릭터는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신중하게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떤가를 (이번 단일화 과정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지켜봤던 것 같았어요. 뭘 '양보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약간 '영악하다'고 할까.
임재범 : 저는 그것을 보면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스스로 반성도 좀 하고 그랬어요.
일동 : 오~ 어떤 반성을?
임재범 : 굉장히 속도가 빨리 진행되는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의 발언을 비교적 꼼꼼하게 봤는데, 저는 '꼼수'가 뭐가 있지 않겠냐고 하면서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거든요. 제가 정치공학적인 사람은 아닌데, 정치권이 하도 뒤에서 뭐가 이뤄지고 하는 게 많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저 뒤에 뭐가 있나?'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 거죠. 그런데 그게 느껴졌어요. '내가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단일화 뉴스를 보고 처음에 믿기지 않아서 '이게 뭐지?' 한참 생각했어요. 그런데 20분 동안 만났다는데, 그냥 그대로인 것 같더라고요. 아무것도 없어. 대통령 선거 나가기 위한 거다. 이런 것은 전혀 아닌 것 같아요.
프레시안 : 그냥 양보를 한 거다?
임재범 : 양보는 모르겠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 같지는 않다. 어쨌든 굉장히 쿨하다. 이런 생각이었죠. '당신 하고 싶어? 나는 할지 말지 고민하는데, 정말 하고 싶어? 그러면 해. 나는 학교로 돌아갈게' 이런 거잖아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죠. 어떤 사람이 저한테 '어떻게 봤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그 사람이 '정말 잘난 놈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구나. 잘난 놈들 저들끼리 쇼 한다'고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프레시안 : 좀 전에 공효진 씨가 강연을 재미있게 봤다고 했는데, 안철수라는 사람이 정치인이나 언론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대중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종의 '스타성'이라고 할까. 대중 강연도 오래해 왔고, 내가 어떻게 얘기해야 대중이 호응해주는 지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태권 : 우리나라에도 벤처 기업가로 나섰던 386들이 있었잖아요. 미국에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이 있는데, 그들의 특성이 하기 싫은 일은 안하고,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제가 보기에 이번 서울시장 보선은 자기가 유도한 상황이 아니고, 오세훈에 의해 비롯된 것인데, 여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고민을 한 거죠. 그런데 박원순의 의지가 이번에 확고하니까 '내가 원해서 조성된 상황도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으로 (양보를) 한 것 같아요.
프레시안 :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안철수가 2007년 문국현이 대선 출마를 하면서 들고 나왔던 것들, 그런 가치들과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문국현의 부상과 몰락의 과정에 빗대 점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원 : 저는 문국현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어차피 제가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크게 관심을 안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안철수)이 가지고 나오는 게 이를테면 '탈정치적'인 인물들이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하는 건데, 그것 자체도 정치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행정과 정치를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시정을 하는데 행정을 잘 펼친다고 해도 서울시의회와 함께 하는 것도 많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 정치 혐오 분위기가 많은데, 그런 측면에서 '나는 탈정치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결국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안철수가 나오든 박원순이 나오든 저는 제가 지지하지 않지만, 박원순에게 의미가 있다면 '체제 안에 있는 시민운동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시민운동 안에서 여러 성과도 거뒀고,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정원 사찰 파동 등) 탄압도 있었죠. (박원순의 그런 이력들이) 서울시정과 결합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살짝 있어요.
이태권 : 탈정치를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탈여의도 정치', '탈정치공학적 정치'와 진정하고 본질적인 의미의 정치를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안철수도 사람들이 '탈정치'라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거든요.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뭉뚱그려서 '탈정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수구'들도 공격할 수 있는 부분이 될 것 같아요.
하지원 : '탈여의도 정치'라고 말을 해도 그것을 과연 그들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죠. 노무현의 경우 국민을 보고 간다고 말했지만 그 때문에 마찰이 많았고, 희생된 부분도 있었고, 그 분이 하려고 한 것을 못한 것도 있었죠. 그런 것들을 '탈여의도 정치'와 같은 이미지만 가지고 뚫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은 의심이 가죠.
프레시안 : 안철수나 박원순이 정당에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하지원 :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박원순이 민주당 쪽으로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잖아요. 입당을 한다고 해도 '가는구나' 하고 말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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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안철수는 '야권통합후보로 나오면 무조건 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박원순의 경우는 '한명숙도 지지율이 만만치 않은데, 야권통합후보가 될 수 있느냐'는 얘기도 나오거든요. 어떻게 보나요?
임재범 : 또 예상해야 하나요? 점쟁이 돼야 하나요?(웃음)
프레시안 : 죄송합니다.
임재범 : 아, 요즘은 너무 확확 바뀌기 때문에...이 방담이 기사로 나오기 전에 또 뭔가 바뀔 수도 있어요. (웃음) 제가 어제 밤에 잠이 안와서 있는데, 트위터를 보니까, 모 언론사에서 여론조사가 올라오더라고요. 안철수가 박근혜를 조금 앞섰다고. 이 문제는 박원순이나 안철수, 정당 입당, 이런 문제가 아니라 '내년 대선 때까지 정치가 크게 요동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은 박근혜를 이길 자가 없다. 이게 공식화가 됐었죠. 자기 혼자 30% 넘고 나머지는 10% 이하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안철수라는 사람이, 그것도 출마 선언도 안하고 검토만 한 사람이 갑자기 박근혜를 눌렀어? 그래서 안철수가 대단하다는 것 보다는 박근혜가 위태해질 수도 있구나. 이런 것을 봤어요. 내년 대선 정말 볼만 하겠다. 후보가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대세론은 없다. 정계 개편까지 가능하겠다. 이런 생각까지도 들고요.
프레시안 : 정치부 기자로서는 내년 대선까지 엄청 정신없을 거라는 가슴 아픈 얘기네요. (웃음)
임재범 : 굉장히 요동칠 것 같다는 느낌이고, 저는 그 느낌이 좋아요.
안철수-박원순의 경쟁력은? 비전과 시대정신!
프레시안 : 사실 안철수라는 사람 이름이 대선 여론조사에 오르지 않았었나. 그렇지 않죠. 심심치 않게 여론조사에 등장했는데 전부 미미한 수준이었거든요. 그런데 정치에 대한 생각이 있다는 게 확인된 순간 확 불타오른 거죠. 누구도 이제는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태권 : 왜 파괴력이 있느냐. 안철수는 콘텐츠가 있는 거예요. 박근혜는 4년 동안 만든 게 복지국가 건설,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생각해왔던 꿈이라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서 만들고 있죠. 그런데 안철수나 박원순도 스토리텔링이 있고, 그것이 시대정신과 좀 더 맞는 것 같아요. 대중강연 같은 것도 많이 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것이 맞물려서 상승효과가 한 번에 일어난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은 정치를 통해 뭘 하고 싶다고 하는, 그런 비전이 있다는 거예요. 보통 정치인들은 '내가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하고 콘텐츠를 사후적으로 만들죠. 그런데 (안철수, 박원순은) 다른 거죠. 그 점이 기성 정치권에 파괴적일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내가 이것을 해서 뭘 이뤄내겠다고 하는 사람이 DJ 이후로 없었다고 봅니다. DJ 이전에도 없었고.
프레시안 : 그러니까 '이명박이 망친 것을 되돌려 놓겠다'는 식은 비전으로 볼 수 없다는 거죠?
이태권 : 그렇죠. 제가 보기에는 정동영이 지금 비전을 뒤늦게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대선 때는 비전 이런 것 없이 '앵커 이미지'만 갖고 나갔다가 데인 거죠.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비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문재인의 경우도 '권력의지가 없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문제는 '비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 같아요. 박원순이나 안철수가 무서운 게, 이 사람들은 비전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것은 일종의 '도구'죠. 그래서 이번의 경우처럼 '도구' 같은 것은 일단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지성 : 안철수의 비전은 뭐죠?
이태권 : 재벌 위주의 경제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얘기를 하죠.
지성 : 문국현의 경우도 중소기업 강화를 말하고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해왔잖아요.
이태권 : 저는 문국현이랑은 다르다고 봐요. 문국현은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장 출신이에요. 그런데 안철수는 정말 새로 일궈낸 것이거든요. 예를 들면 문국현은 중소기업청이나 신용보증기금에서 하는 보증보험증권 같은 것 한 번도 끊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월급쟁이 사장과 안철수 같은 CEO는 차이가 있죠.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서도 훨씬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바꾸고 싶은 게 분명 있을 것이라는 말이죠. 청춘콘서트를 오래 하면서 자신이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만났을 거라고 봐요. 그러면서 자신의 비전이 영글었겠죠. 박경철도 역할을 했을 거고, 윤여준도 나름대로 역할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공효진 : 대기업, 재벌 비판, 이런 게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겠죠. 그러나 아무리 박원순이든 안철수든 '경영'을 해온 노하우를 가지고 사업을 만들어내도, 결국에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 이걸 요구받을 수 있다는 거죠. 서울시장이라고 해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표명을 요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서울에서 노동 문제, 기업 문제 등이 나올 수 있고, 그것만이 아니라 많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안철수라는 사람이 어떤 쪽에 어떻게 설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안철수를) 잘 모르겠어요. 본인이 많이 고민하고, 또 가진 자이고, 공부도 많이 했고, 한마디로 유복하게 살아온 사람이어서 열려 있는 모습인 것 같은데, 다른 사안에 대한 것들은 알 수 없는 거죠.
이태권 : 콘텐츠라는 것, 대북정책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정답은 별로 없잖아요. (서울시장을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콘텐츠'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되요.
지성 : 서울시장은 그렇지만 대통령이 되려면 가지고 있어야죠.
이태권 : 그렇죠. 그래서 (안철수는) 대북정책 등에 대한 콘텐츠가 마련이 안 되면 (대선에는) 안 나갈 것 같아요. 대북정책, 이런 것들은 답이 없지 않나요?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변수가 많지 않고, 대북정책이라는 것은 (북측의 행위에 대한) '대응 방안' 위주잖아요. 정치인이 어떤 역사 인식을 가지고 사회를 이끌고 나간다는 것은 이제는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인은 어떤 의견을 수렴해서 그것을 입장화 시키고 또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이런 것을 잘하는 게 '정치'가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토건 개발 위주의 서울시정, 안철수-박원순이 한다면?
하지원 :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서울시장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기업과 결탁된 재개발을 안 할까요. 오세훈은 한강 르네상스에 돈을 쏟아 부어서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컸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들도 많죠. 서울에서도 철거민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그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을 것인가. 뭔가 분명 개발을 할텐데, 그들이 그런 (부작용들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알고 싶은데, 알 기회도 없고, 얘기도 안 해왔죠.
프레시안 : 안철수 시장을 생각한다면, 가장 궁금했던 게 서울시공무원과 건설족, 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새로운 개발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이전부터 진행돼온 사업들이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 불공정한 관행들, 어떤 비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만약 시장이 되면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들이 사실 쉽지 않은 거죠. 서울시이니까 더 중요한 문제기도 하고요.
이태권 : 잘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콘텐츠가 없는 사람보다는 잘하지 않을까. (웃음)
프레시안 : 그런 '생태계'들은 여의도 정치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고, 또 불거지지 않게 적당히 잘 막고, 그런 식으로 잘 컨트롤하죠. 안철수와 여의도 정치인을 비교하자면 그런 차원도 있을 것 같아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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