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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받아쓰기보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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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받아쓰기보다 시!

[아빠의 평등 육아 일기] ② 시험이 없는 학교

윤슬이가 1학년 2학기까지 마쳤다. 읽기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1학기 때는 한글을 무척 어려워했다. 7월부터 읽기 치료를 하고 나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2학기 시작할 때는 받침이 없는 글자는 나름 읽을 수 있게 됐고, 지금은 받침 있는 글자도 제법 읽는다. 마을 산책을 갈 때 간판에 보이는 글자를 곧잘 읽는다. 물론 또래 평균에 비하면 읽기 실력이 부족하고, 글을 쓰는 것을 아직 어려워한다. 그래도 천천히 자기 속도로 글을 익히고 있다.

윤슬이가 한글을 배우는 데 언어치료 선생님과 하는 한글 수업, 마음치료 선생님과 하는 마음 수업도 큰 역할을 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분은 윤슬이 담임 선생님이다. 아내는 지난 봄 2학기가 되면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할 거라며 무척이나 걱정을 했다. 윤슬이 담임 선생님은 1학년 내내 받아쓰기를 하지 않았다. 한글은 비교적 쉬운 글이고, 아이들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 다른데 점수를 매기는 받아쓰기는 오히려 한글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대신 1학년 내내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읽기 수업을 했고, 시를 쓰면서 글쓰기 수업을 했다. 주말 숙제는 선생님이 추천한 시를 읽고 그 소감을 그림으로 그리는 거였다. 박연철 동화작가의 그림책 4권을 윤슬이 반 아이들 모두가 읽고 그림 그리기, 소감나누기 등 활동을 했다. 심지어 작가를 직접 교실로 초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 박윤슬 작, 봉숭아씨 ⓒ박진현
두 학기를 마치고 나니 아이들이 직접 쓴 시집 3권, 아이들이 고른 시로 묶은 시집 1권이 생겼다. 아이들이 쓴 시를 읽다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윤슬이가 쓴 시도 시모음집에 실렸다. 시 제목은 '봉숭아씨'.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톡톡
빠져 나와요.

봉숭아는 우리가 어렸을 때 남녀 가리지 않고 한번쯤 해봤듯이 손톱을 예쁘게 물들이는데 쓰인다. 윤슬이도 어린이집 다니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봉숭아로 예쁘게 손톱을 물들인 적이 있다. 나는 봉숭아 씨와 열매를 본 적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비바람이 불지 않아도 열매가 자라 씨가 터져 나간다"라고 되어 있다.

윤슬이 친구 민서는 '철봉'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철봉에 매달리면
새가 될 줄 알았는데

나도 새처럼 날고 싶어
철봉에 매달린다

나는 새가 안되어도 철봉을 좋아한다.

윤송이는 '달님'이란 시를 썼다.

귤을 먹으면서
달님께 소원을 빌다가

달님이 귤을
먹고 싶다고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소원을
못 빌었다.

귤을 먹다가
생각을 잊어 버렸다.

유한이가 쓴 시를 읽었을 때 마음이 짠했다. 내가 윤슬이보다도 어렸을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소원빌기

우리 할머니
하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보름달에게

유한이는 보름달에게 하늘나라에 먼저 간 할머니가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윤송이처럼 귤을 먹다가 소원 비는 걸 까먹지 않았다. 간절한 소원이었기 때문이겠지.

2학기 때 추석이 있어서 그런지 달님과 관련된 시가 많았다. 한 아이는 '달님'이란 제목으로 시를 썼다.

달님!

저는 추석 명절을 못 지냈어요.
고향도 못가고
공부만 하고
학교 가고 싶어요.
어떡해야 되나요?
힘들고
고향가고 싶고
추석 지내고 싶다.

▲ 윤슬이 반 학생들의 시를 모은 시집 3권. ⓒ박진현

어느 날 윤슬이랑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그 엄마는 아내한테 "아이가 학교 다니는 걸 지겨워하지 않냐?"고 물었다. 윤슬이 친구 엄마는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열심히 시켰다. 2학기에는 받아쓰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받아쓰기를 하면 100점을 맞을 수 있도록 공부를 시켰다. 그런데 선생님은 2학기가 되어서도 받아쓰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아이는 언제 받아쓰기를 하나 기다렸지만, 겨울방학이 되었다.

아이는 어느새 시험을 치고 점수를 매기는 건만 공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시로 쓰고, 책을 읽은 소감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닌지. 아내한테 윤슬이 반 몇몇 엄마들이 학교에 대해서 이런저런 불만을 얘기한다고 들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공부를 안 시킨다는 것이다.

예전에 'SBS 스페셜'에서 80대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것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들이 쓴 시는, 비록 맞춤법이 틀린 경우가 많았지만, 삶이 오롯이 들어 있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시에 처음에는 웃었지만, 나중에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지만, 시로 쓰니 참 아름다웠고 마음이 짠했다.

삶이 시가 되게 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시인에게, 유명한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이 받아쓰기 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할 줄 아는게 난 더 큰 공부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되고 나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다. 이에 따라 많은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청년들이 이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시험을 쳐서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거나,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다. 그 책의 부제는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다. 저자는 사회학 강사인데 2008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KTX 여성 비정규직노동자의 문제를 다뤘는데, 학생들이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는데,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안되잖아요"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썼다.

이 책에 따르면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시험으로 우위를 나누고 그것으로 인생의 성공을 나누는 논리를 내면화했다. 비정규직은 공부를 못해서 정규직이 되지 못한 것이고,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좋은 일자리는 적고, 높은 청년 실업율로 고통 받는 당사자들이 그 고통을 주는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가서 "차별에 찬성"하게끔 우리 아이들을 키웠다. 비정규직이 줄어들면 청년들이 가장 큰 수혜를 받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공립학교 교사 존 테일러 개토가 쓴 <수상한 학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편차를 인정하면서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태도로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마다 다 다른데 시험 점수 하나로 모든 것을 나누는 학교와 사회가 잘못됐고, 수상한 것이 아닐까.

나는 윤슬이와 은유가 윤동주의 시처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을 할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면 좋겠다. 청년이 되어서도 시를 읽고, 시를 쓸 줄 알면 좋겠다. 자기 삶이 시가 되게 하고, 모든 이의 삶 또한 그렇다는 걸 알고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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