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와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로 상징되는 인사 난맥상, 당청 갈등의 고질화, 야권과 불통 등 정치 분야는 예나 지금이나 고질병이다. 안보와 남북관계, 연평도 피격과 오락가락하는 국방개혁, 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바라고 입 벌리는 듯 한 대북관계 모두 하락세다.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등 측근 인사들의 비리도 슬금슬금 터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 정권의 '전공과목'인 경제다. 물가, 금융, 주거, 고용 다 문제다.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이해 여러 언론이 내보내는 기획기사에는 공통적으로 "경제가 문제"라는 활자 제목이 주먹만하게 붙었다.
이같은 여러 분야의 난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능'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여러 악재들을 하나 하나 짚어봐도 중동 발 유가 급등을 제외하고선 '남 탓'을 할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도덕성은 부족하지만 유능하다'는 속언이 이명박 정부 집권의 키나 다름없었는데 이게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냐"면서 "전가의 보도나 다름없었던 '잃어버린 10년'론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4년 차'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 청와대 본관 전경 ⓒ청와대 |
성장이 아니라 고통이 '트리클 다운'되는 사회
지난 24일 저녁, CBS 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선 이명박 정부 3주년을 맡이 해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프레시안>기획위원과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 간 토론을 방송했다.
두 사람은 "정치가 낙제점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입을 모으고 경제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요즘은 다른 정치전문가들도 모두 입에 '경제'를 달고 다닌다.
물가, 전세 현안들은 신문 경제면에서 출발해 사회면을 거쳐 정치면에 '안착'했다.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경제정치학의 백가쟁명이 펼쳐지고 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1~2억 원 대 수도권 전셋집에 사는 월급쟁이들의 고충은 이미 언론에 차고 넘쳤지만 이제는 고통의 '트리클 다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4일 <세계일보>는 학생들이 주로 찾는 대학가 백반집 메뉴판의 제육볶음밥 항목 아래 '시가'라는 단어가 붙어있는 장면을 보도했다. "'시가'라는 단어는 고급 일식집에나 있는 것인 줄 알았다"는 학생들의 한탄도 뒤따랐다. 신학기를 앞둔 대학가에서는 "담합해 가격을 올리는 하숙집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라"는 주장이 터져나온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수도권 부동산 계급표'상에 '노비'로 분류된 기초단체의 구청장은 "상황이 아주 안 좋다"면서 "자영업자들의 타격은 점점 심해지고, 더 큰 문제는 공공근로 예산이 반토막이 났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국면에서 확대됐던 공공근로 등 저소득층 소득보조 정책이 중단되면서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 구청장은 "그래도 우리 동네도 전세값만은 꽤 올랐다"고 덧붙였다.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지만 계층적으로 볼 때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쪽은 저소득층, 노년층, 저학력층이다. 이들은 이제 생계가 아니라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서울과 경기에서 대선과 총선을 압승한 이후 이명박 대통령 직계들 사이에서 나온 "이제 우리는 수도권 정권이다"는 자부심 가득한 호언은 이미 지난 지방선거 이후부터 쑥 들어갔다.
"빚 내서 집 사라"고 '조언'하는 청와대 관계자
최근 상황에 대해 청와대에도 비상등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홍보'를 좋아하기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명박 정부지만 3주년 맞이 특별한 이벤트도 없다. 하지만 외적 상황은 물론이고 이 정권의 현재 실력과 의지를 볼 땐 전망도 밝지 않다.
최근 청와대 한 인사는 식사 자리에서 '전세값 한탄'을 하는 기자에게 "집을 사라. 밖으로 조금 나가면 집값이 싸다"고 '충고'했다. '돈도 없고 외곽으로 나가면 출퇴근하기 어렵다'고 반박하자 이 비서관은 "출퇴근 시간은 감수해야지. 그리고 누가 돈 쌓아놓고 집을 사나? 부담(빚)을 지고 사는 것이지"라면서 "경제파트 쪽에서도 전세 문제는 집값이 오르면 나아진다고 말한다"고 답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현 정권의 속내를 포착할 수 있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청와대 직원들도 많다. 관료 출신들은 복귀를 희망하거나 눈치 보는데 역력하다. 충성도가 높아야 하는 정치권 출신들도 다르지 않다. 중간 허리층 직원들은 3월로 전망되는 공기업·공공기관 인사에 마음이 가 있다.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비서관급 이상 인사들은 "6월에는 나가야 일이 되지 않겠냐"고 말하곤 한다. 한 고위급 인사의 경우에도 "강남 지역 출마를 바라보고 열심히 뛰고 다니더라"는 말이 청와대 밖에서 나올 정도다.
손발이나 다름없던 검찰은 법무부를 치받고, 국정원은 '혹'이 되버렸다 과학비지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현 정부의 지역적 기반인 영남을 직격하고 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여러 행동으로 오히려 이 대통령 지지율을 깎아먹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인 개신교 쪽도 그렇다.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24일 "정부가 이슬람채권법의 입법화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추진한다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 법이 통과되면 정권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YS 후반기 상황이 떠오르는 까닭
여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특정 주자에 힘을 싣거나 박근혜 전 대표와 구태여 각을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심(李心)'이 변수가 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상황이 좀 더 안 좋아지면 여권 주자들이 앞다퉈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조복심(腹心)이나 다름없던 정두언 의원의 동작이 빠른 것일 수 있다. 1996년 말에서 1997년 말의 1년이 그랬다. YS의 '오더'에 의한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로 민심이 이반했을 때 신한국당은 거물급 중 가장 청와대와 거리가 먼 이회창을 대표로 세웠다.
그 때 '여당 혁신'에 앞장섰던 초선들이 바로 이재오, 홍준표, 안상수, 김문수 등이다. 그리고 한보 사태와 IMF가 닥쳤고 여당은 대통령과 사이가 가장 나쁜 사람을 후보로 선출했다. YS는 김대중 비자금 의혹 수사 유보, 이인제 독자 출마 '방조' 등으로 대응했다. 결과는 모두가 다 아는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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