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마감했습니다^^
백두대간학교(교장 이철승, 백두대간전문가) 2017년 12월 산행은 제75강으로 15번째 백두대간종주입니다. 12월 16일(토), 송년산행으로 <백두대간 삼도봉권역 대덕산구간>입니다(대덕산구간은 11월 예정이었으나 학교 사정으로 12월 산행으로 변경됐습니다).
백두대간학교는 2016년 9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으며, 참가자 전원이 2016년 9월 <천왕봉구간>, 10월 <벽소령구간>, 11월 <금산구간>, 12월 <만복대구간>, 2017년 1월 <수정봉구간>, 2월 <고남산구간>, 3월 <봉화산구간>, 4월 <중재구간>, 5월 <백운산구간>, 6월 <노고단구간>, 7월 <영취산구간>, 8월 <남덕유산구간>, 9월 <무룡산구간>, 10월 <백암봉구간>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완주했습니다.
[산행지안내]
백두대간종주 12월 산행은 <삼도봉권역 대덕산구간>입니다. 백두대간종주 12월 산행은 무채색의 산하를 찾아갑니다.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켜켜이 쌓여있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습니다. 지난 여름 푸르던 나뭇잎은 간데없습니다. 눈부신 단풍으로 치장하더니 어느새 바싹 마른 갈잎으로 대지에 누워 있습니다. 벌거벗은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한 나무들의 지혜입니다. 대지에 쌓인 나뭇잎들은 이불처럼 뿌리를 덮어 겨울을 나게 합니다. 그 나뭇잎들 썩어서 나무들을 키우는 자양분으로 다시 나무에게 돌아갑니다. 낙엽을 떨구지만 다시 나무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입니다. 자연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겨울잠의 계절입니다.
12월 백두대간 대덕산구간은 하얗게 서리꽃 핀 시린 나무들 사이로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무채색의 백두대간을 걸으며 한겨울의 정취를 만끽하는 산행입니다.
[구간소개]
-산행월일 : 2017년 12월 16일(토)
-산행출발 : 2017년 12월 15일(금) 오후 11시
-산행코스 : 빼재-수정봉-호절골재-덕유삼봉산-소사고개-초점산-대덕산-덕산재
-산행거리 : 약 15km(도상거리)
-소요시간 : 약 8시간 20분
-난 이 도 : 중상(★★☆)
이철승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2월 산행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백두대간 12월 산행은 덕유산권역을 벗어나 삼도봉권역으로 그 첫발을 디딥니다. 예부터 이 지역은 덕유산과 더불어 눈이 많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황해(黃海)의 수증기가 내륙으로 밀려오다 덕유산과 백두대간 마루금에 부딪혀 때론 상고대로 피어나고 때론 눈으로 내립니다.
물이 풍부한 삼도봉권역은 예부터 십승지(十勝地) 중 한 곳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깃들어 살았습니다. 백두대간의 덕유산과 삼도봉 자락에 둘러싸인 무풍은 조선시대의 도로 교통 조건에서 큰 길과 떨어져 있어 지리적 오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큰 하천을 끼고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 지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학자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말하기를, “남사고(南師古)는 무풍을 복지(福地)라 하였다. 골 바깥쪽은 온 산에 밭이 기름져서 넉넉하게 사는 마을이 많으니, 이 점은 속리산 이북의 산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12월 백두대간학교는 십승지이자 눈이 많은 무풍면 대덕산으로 들어갑니다.
12월 백두대간학교 산행의 초입은 빼재 표지석에서 거창군으로 조금 내려서는 곳의 나무계단을 오르며 백구대간으로 들어갑니다. 처음부터 만나게 되는 나무계단은 제법 만만치 않은 오르막입니다. 초반 페이스를 조절하며 계단을 올라서면 마루금은 온통 벌거벗은 참나무들입니다. 나뭇잎을 모두 떨군 처연한 숲속으로 뽀드득 뽀드득 얇게 얼은 눈을 밟으며 수정봉을 향합니다.
나무에 둘러싸인, 조금 널따란 공터가 수정봉입니다. 줄기만 남은 억새들과 잎을 떨군 다래 넝쿨 군락지가 마루금을 따라 계속 이어집니다. 된새미기재를 지나 바위 구간이 나오고 전망바위를 지납니다. 마루금 좌측의 무주 쪽 산새는 완만하고 우측의 거창 쪽 사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호절골재 안부에서 따스한 아침햇살을 맞으며 아침식사를 합니다.
호절골재를 지나며 마루금은 서서히 고도를 높입니다. 금봉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은 고도를 급격히 높입니다. 거침 숨소리와 하얀 입김이 산하를 뒤덮습니다. 뽀얀 입김과 함께 올라서면 생경한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봉산입니다. 일명 덕유삼봉산입니다.
멀리 덕유산에서 보면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한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산세를 지니고 있어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하는 삼봉산은, 정상의 주봉을 중심으로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 신선봉,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 등으로 이름 붙은 자연산경과 금봉암(金鳳庵)이 어우러져, 소금강을 연상케 합니다. 산 아래 시원한 조망을 보며 조심스레 암릉 구간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걷습니다. 멀리 덕유산의 영봉들이 줄지어 있고 바로 앞에 삼도봉과 대덕산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오두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섭니다. 소사고개로 내려서는 급경사 비탈길이 시작됩니다. 미끄럼에 주의해야 합니다. 로프가 매어진 암릉 구간과 너른 안부를 지납니다. 밭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랭지밭들입니다. 초봄에는 싱싱한 보리의 새싹을 만날 수 있고, 가을에는 상이 통통한 배추들이 밭들의 주인입니다.
12월의 고랭지 밭은 김장을 위해 실려간 배추의 밑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랭지 채소밭의 가장자리로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내려서면 낙엽송 사이를 지나 소사마을입니다. 최근에 만든 생태통로의 터널을 지나면 마을 입구에는 대간 산객들의 쉼터인 탑선슈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 아래 정자에서 잠시 다리쉬임하고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입니다.
기운을 돋우고 다시 백두대간으로 들어갑니다. 초점산으로 이어진 마루금은 개간지를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와 오미자 밭을 지나 표고버섯 재배사를 지납니다. 임도를 따라 조금 오르다 우측 계단으로 올라섭니다. 가파른 오르막의 시작입니다. 한참을 올라서면 시야가 확 트인 개활지를 지나고 능선에 놀라섭니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순탄한 마루금을 약 10분 정도 걸으면 초점산입니다. 바로 삼도봉입니다. 전북 무주군, 경남 거창군, 경북 김천시의 경계입니다. 백두대간학교가 2018년 1월에 걸어야 될 전라도, 경상도 충정도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과는 다릅니다. 작은 돌탑 위에 세워진 표지석이 귀엽습니다.
한켠에는 예의 생경한 표지석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요즈음의 백두대간 표지석들은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표지석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자체와 국립공원 등에서 홍보의 수단으로 크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었던 작고 귀여운 옛날 표지석들이 그립습니다.
초점산을 지나 대덕산으로 이어진 마루금은 부드럽고 완만한 산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른 키를 조금 넘는 관목의 잡목 지대 사이로 들어갑니다. 완만하게 이어진 마루금 사이 작은 안부에서 도시락으로 원기를 채웁니다. 도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초겨울 소풍을 만끽합니다. 식사 후 부드러운 산세를 따라갑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억새들의 춤사위가 보이고 넓은 안부가 펼쳐지면 대덕산입니다.
십승지를 품고 있는 덕이 많은 산입니다.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렸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대덕산 정산에서는 서쪽으로 덕유산의 주능선과 북으로 백수리산, 삼도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마루금이 용틀임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멀리 남쪽 하늘 아래에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아스라합니다. 바람과 구름이 만든 상고대가 전하는 겨울의 풍광을 마음껏 담습니다. 바람이 전하는 백두대간의 발자취를 뒤돌아봅니다. 그리고 이어갈 백두대간을 눈에 담습니다.
대덕산을 조금 내려서면 반가운 샘터를 만나게 됩니다. 얼음골약수터입니다.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물이 샘솟습니다. 탄산과 유황성분의 물맛을 느낄 수 있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집니다. 시원한 약수 한 모금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산행의 피로를 날려버립니다. 약수터를 지난 백두대간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평안한 숲길이 이어집니다. 산책로 같이 안온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언뜻언뜻 도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은 나무계단이 앙증맞은 휴게소가 자리한 덕산재입니다. 덕산재에서 상고대와 쌓인 눈들 사이 무채색의 백두대간과 작별합니다. 버스를 타고 무풍면으로 이동합니다. 함께한 도반들과 정담 나누는 뒤풀이 시간 갖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과 따뜻한 국물 한 모금으로 시린 겨울의 차가움을 날려 보냅니다.
12월 백두대간학교는 하얗게 핀 상고대 사이를 걷습니다. 흰 눈으로 살짝 덮힌 초겨울은 생명이 다하는 계절처럼 다가오지만 새로운 생명을 준비를 하는 계절입니다. 도반들과 함께 상고대 핀 시린 산하를 걷습니다. 쌓인 눈 아래 숨겨진 새로운 성장을 찾아 백두대간의 시린 속살을 찾아갑니다.
함께 걷는 백두대간학교는 도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입니다. 혼자 걸으면 나만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산행계획]
여유 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와 동행하며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공인 등산가이드이신 이철승 교장선생님과 전문가이드 선생님이 선두와 후미에서 함께 하며 평안하고 안전한 산행을 진행합니다.
<버스운행>
출발 10분전에 도착하여 <백두대간학교> 버스에 탑승하세요. 버스 앞에 <백두대간학교>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김종선 기사님 전화번호는 010-3350-1055입니다.
12월 15일(금) 오후 11시
23:00 덕수궁 대한문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역 2번출구)
23:30 사당역 공영주차장앞 출발(지하철 2,4호선 1번출구)
23:40 양재역 서초구청 폭포앞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출구)
23:55 경부고속도로 죽전(하행) 버스승차장
12월 16일(토)
00:05 경부고속도로 신갈(하행) 버스승차장
<산행일정>
04:50 빼재 도착/산행 준비 & 스트레칭
05:00 빼재 출발
05:30 수정봉
05:50 된새미기재
06:30 호절골재 – 안부에서 아침식사
07:30 덕유삼봉산
08:00 오두재 갈림길
09:00 소사고개
10:30 초점산 – 점심식사
12:00 대덕산
13:20 덕산재 - 산행 마감/스트레칭/버스 이동
14:50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금강산가든 – 해물탕과 막걸리로 늦은 식사 겸 뒤풀이
16:00 무풍면 출발
19:00 서울 도착(예정)
*상기 시간 일정은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산행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재킷, 우모복(다운재킷), 우의, 스틱, 물통,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버프, 스패츠, 아이젠, 아침-도시락, 점심-도시락 등
<참가 신청 안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반드시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백두대간학교'를 찾으시면 기사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와 해외캠프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2018년 1월 백두대간종주 16구간 산행 안내]
-산 행 지 : 백두대간 삼도봉권역 삼도봉구간
-산행일시 : 2018년 1월 20일(토) - 무박 산행
-출발일시 : 2018년 1월 19일(금) 오후 11시
-산행코스 : 덕산재-부항령-백수리산-삼도봉-삼마골재-물한리
-산행거리 : 약 19.5km
-소요시간 : 약 10시간
-난 이 도 : 상하(★★☆)
*상기 일정은 현지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산행자료]
[빼재] 920m. 빼재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에 적힌 빼재의 유래.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조일전쟁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라고 했다고 한다. 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군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둔 곳이라 하여 뼈재라고 한다.
그리고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수령(秀嶺)’ 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수정봉] 1030m. 아무런 표식이 없어 구분이 잘 안 되고 편안한 등산로를 이어가다 우측으로 휘돌아 나가게 되어 있다. 정상엔 잡목들로 전망이 가려져 있다.
[된새미기재] 수정봉에서 20분 남짓한 거리에 봉산리에서 올라오는 소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북쪽의 전북 무주는 지대가 높고 남쪽의 경남 거창은 지대가 훨씬 낮은 것이 확연하게 관찰된다. ‘큰(된) 새목 고개’이다. 된새목이재>된새모기재>된새미기재로 변화했다.
[호절골재] 삼봉산과 1090봉 사이의 움푹 들어간 허리목이다. 삼거리에서 금봉암으로 넘어가는 작은 길이 교차한다. 남동쪽으로 45°에 가까운 경사면이고, 북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인데,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여러 개의 지류가 모여 삼거리 독가촌 마을 앞을 지난다. 고개에는 안부가 자리하고 있다. ‘막힌(絶) 계곡(谷)의 안쪽이 매우 넓다(浩)’는 뜻이다.
[덕유삼봉산] 1254m. 삼봉산은 거창의 진산이다. <거창고읍지> 및 <조선환여승람> 거창군 산천조에도 “삼봉산은 거창 북쪽 오십리에 있으며 무주로부터 대덕산 서쪽 가지”라 적혀 있다. 해발 1254m의 거봉으로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얻었다. 향적봉에서 바라봤을 때 이 봉우리가 뚜렷한 ‘山’자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한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산세를 지니고 있어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하는 삼봉산은, 정상의 주봉을 중심으로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 신선봉,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 등으로 이름 붙은 자연산경과 금봉암(金鳳庵)이 어우러져 소금강을 연상케 한다. 거창과 무주를 경계 짓는 삼봉산은 이같은 덕유연봉(德裕連峰)이 시작되는 첫 머리봉.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삼봉산을 ‘덕유원봉’이라 부르며 자긍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금봉암] 금봉암은 고제면 봉산리 삼봉산(1254m) 기슭에 있다. 금강은 본디 봉황새만이 깃 드는 곳을 일컫는데 절이 황금빛 봉황의 이름을 갖고 자리한다. 금봉암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절터에 1905년 주상면 거기리에 살던 불심 깊은 청송심씨가 세운 절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청송심씨가 풍수가 잡아준 지금의 절 자리에서 원을 세우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가마솥 뚜껑 덮인 장수 샘물을 마셔가며 백일동안 단식기도를 드렸다 한다. 기도가 끝나던 날 이상하게도 어느 곳에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황금빛 새가 날아와 기도처를 세 번이나 돌고 난 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그 뒤 절을 짓고 금봉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이름난 세 개의 바위, 세 개의 용머리, 세 개의 바위샘이 있다. 요사체 뒤에 용바위, 용굴에서 내려와 얼굴을 쑥 내민 세 개의 용머리가 있는데 맨 윗쪽 용머리가 옛날 거창 부사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봉암을 나한도량으로 영험스런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세 개의 샘이 자랑거리로 이름나 있다. 석불바위 뒤에 숨어 있는 샘은 피부병에 좋다 하며,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샘이고, 용바위 용굴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소사고개] 680m.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남 거창군 고제면의 경계지역이지만 고갯마루에 형성된 마을은 고제면 소사동이다. 무주구천동에서 거창으로 연결되는 1089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매점 겸 식당이 한 군데 있다. 현재는 마을 이름을 따서 소사고개로 부르지만 원래의 이름은 경계선이라는 의미의 ‘지경령’이다. 소사라는 마을 이름의 내력은, 동내 집집마다 마당에 가는 모래가 깔리는데, 일년 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笑沙峴)으로 불렸다 한다.
[초점산(삼도봉)] 1248m. 전북과 경북, 경남의 도계를 이룬다. 군으로는 무주와 김천, 거창이다. 민주지산이 있는 삼도봉에서는 매년 3개 도 합동으로 화합행사가 열리지만 이곳에는 그런 행사가 없다. 서쪽으로 덕유산의 군봉들이 가까운 거리로 다가서 있다.
[대덕산] 1290m. 대덕산은 이곳에 사는 사람이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덕택을 입었다 하여 대덕산으로 불렸다 한다.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 분기점, 즉 해발 1250m의 초첨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렸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나제통문] 구천동 33경으로 선정된 절경 가운데 제1경은 나제통문이다. 무풍면과 설천면 사이의 석모산의 바위를 뚫어 만든 굴문인 나제통문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무주군은 오랫동안 경상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접경지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인 적천현과 신라 땅인 무산현으로 나뉘어 있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로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땅을 가르는 경계였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오랜 세월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같은 군 안에서도 풍습과 문물이 다르고, 말씨마저 서로 달랐다. 지금도 설천 장날에 가면 사투리만으로도 무주와 무풍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무풍면 사람들은 큰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갈 때 주변의 거창이나 대구로 향하지만, 설천면 사람들은 무주읍이나 대전으로 일을 보러 간다고 한다. 생활권역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현재는 이곳에 옛날식 초소를 지어놓고 옛 복장을 한 수문장이 서있다.
[덕산재] 644m. 대덕면 덕산마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덕산재라고 한다. 삼도봉과 대덕산 사이의 고개로 예전부터 전북과 경북의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지금은 무주에서 성주를 잇는 30번 국도가 지나간다. 고갯마루에는 작은 휴게소가 있다. 일제강점기 발행된 고지도에는 ‘주치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십승지지(十勝之地)]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의 하나이다. <정감록(鄭鑑錄)>에 근거한 역사적 용어이며, 십승지라고도 한다. 십승지지에 관한 기록은 <정감록> 중에 감결(鑑訣),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운기귀책(運奇龜策)>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도선비결(道詵秘訣)>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 등에 나타난다. 대체적으로 공통된 장소는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동북쪽,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 등이다.
십승지지는 조선 후기의 이상향에 관한 민간인들의 사회적 담론이었다. 십승지 관념은 조선 중·후기에 민간계층에 깊숙이 전파되어 거주지의 선택 및 인구 이동, 그리고 공간인식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십승지지는 조선 후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간인들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다. 십승지의 입지조건은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침해가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곳이었다.
사람은 이상적인 장소를 희구하며 살고자 한다. 이상향에 대한 관념은 동서양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달랐으며 문화 속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불교의 극락과 정토, 기독교의 천국과 에덴동산, 도교의 무릉도원, 삼신산, 청학동 등은 사후 아니면 관념적인 이상세계를 일컫는 말이고, 현실의 이상향을 표현한 말로서도 길지(吉地), 낙토(樂土), 복지(福地), 명당(明堂), 가거지(可居地) 등의 용어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승지(勝地)라는 말이다.
승지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자연경관과 거주환경이 뛰어난 장소를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조선 중·후기의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피폐로 말미암아, 개인의 안위를 보전하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피난지를 뜻하였다. <정감록>에서는 그 여남은 장소를 십승지지라고 표현하였다.
십승지지는 <정감록>이라는 도참서의 키워드로 등장한 이래, 조선시대 민간인들의 지리인식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당시 민간인들은 정감록의 십승지지를 믿고 십승지를 찾아 나섰으며, 실제 거주지를 그곳으로 옮긴 경우가 있었고, 풍기의 경우처럼 지금까지 그 후손이 살고 있는 사례도 있다. 외침으로 인한 전란과 정치적 환란의 굴곡에서 살림살이가 피폐하였던 민간인들은 정감록을 믿고 피난, 보신(保身)의 삶을 일구어 나갔던 것이다.
십승지의 위치에 관해 <정감록>의 감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몸을 보전할 땅이 열 있으니, 풍기 금계촌, 안동 화곡, 개령 용궁, 가야, 단춘, 공주 정산 마곡 진천, 목천, 봉화, 운봉 두류산, 태백으로 길이 살 수 있는 땅이다.”
이어서 열 곳 승지의 구체적인 지리적 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첫째는 풍기 차암 금계촌으로 소백산 두 물골 사이에 있다. 둘째는 화산 소령 고기로 청양현에 있는데, 봉화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갔다. 셋째는 보은 속리산 증항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운봉 행촌이다. 다섯째는 예천 금당실로 이 땅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 여섯째는 공주 계룡산으로 유구 마곡의 두 물골의 둘레가 2백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 일곱째는 영월 정동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만 하다. 여덟째는 무주 무봉산 동쪽 동방 상동으로 피난 못할 곳이 없다. 아홉째는 부안 호암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열째는 합천 가야산 만수봉으로 그 둘레가 2백 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정선현 상원산 계룡봉 역시 난을 피할 만하다.”
십승지지는 <정감록>의 문헌에 따라 위치와 장소가 조금씩 달리 나타나며 추가되기도 하였다. <남격암 산수 십승 보길지지>에는 감결에서 말한 열 곳 외에도 여러 장소가 더해졌다. 그 지역은 모두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으로서, 풍기와 영주, 서쪽으로 단양과 영춘, 동쪽으로 봉화와 안동이 보신처라고 하였고, 내포의 비인과 남포, 금오산, 덕유산, 두류산, 조계산, 가야산, 조령, 변산, 월출산, 내장산, 계룡산, 수산, 보미산, 오대산, 상원산, 팔령산, 유량산, 온산 등도 해당 장소로 들었다. 한편 <정감록>의 서계이선생가장결에는 “황간 영동 사이에는 가히 만 가호가 살아나고 청주 남쪽과 문의 북쪽 역시 모습을 숨길 수 있다”고 다시 몇 군데가 추가되었다.(자료 출처 : 아름다운소통(협), 백두대간학교, 국리공원관리공단, 한민족문화백과 등)
[백두대간학교]
백두대간학교 이철승 교장선생님은 오랜 동안 백두대간학교 수석가이드로 활약해주셔서 낯익은 얼굴입니다. 산행 경력 30년의 저명한 M.T.디자이너이며 국가공인 숲길체험지도사(산림청), 응급처치법 강사(대한적십자)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낭 하나 메고 지리산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렸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며 얼굴이 환해집니다. 천상 산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연이어 정맥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백두대간 가이드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산악회 가이드, 기업체 가이드, 목적산악회 가이드 등으로 활약하며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가이드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인문학습원 백두대간학교 개교부터 가이드로 동분서주했습니다.
백두대간 교양강좌, 트레킹학교 등의 실무를 도맡아 진행했고, 아이들과 뚜르드몽블랑(TMB), 몽블랑 일주 트레킹을 다녀왔으며, 흥덕고등학교 백두대간 종주대 <백두대간 하늘길를 걷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백두대간 숲길을 거닐며 바람과 햇살, 구름, 안개, 곤충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하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진 산줄기 ‘백두대간’ 총 길이 1,625km의 백두대간은 단순한 산줄기가 아닙니다. 이 땅 모든 산줄기와 강줄기의 시원입니다. 또한 한반도 허파이자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이 땅에 기대어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근간입니다. 백두대간 줄기 따라 물이 흐르고, 마을이 생겨 사람들이 깃들어 살았습니다. 공동체가 형성되고 문화가 생성되었습니다. 백두대간은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생명의 근간인 백두대간을 찾아가는 백두대간 종주는 우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우리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보따리를 찾아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지난 6년간 60강에 걸쳐 백두대간 아름다운 산하를 걸었던 백두대간학교는 백두대간의 결정체인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습니다. 총 길이 1,625km의 백두대간 중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남측 구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도 고성 향로봉까지 701km입니다. 이중 비법정탐방로 79.9km를 제외하면 도상거리 621.1km입니다. 접속구간을 포함하면 실제 백두대간 종주거리는 약 1,000km에 이릅니다.
2016년 9월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과 문화를 찾아 떠납니다. 마음 한켠 간직해왔던 꿈을 찾아 떠나는 희망의 발걸음입니다. 백두대간 종주는 힘든 여정이지만 도반들과 함께라면 거뜬하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혼자 걸으면 나의 길이 되지만, 함께 걸으면 모두의 희망이 됩니다.” 모두의 희망인 ‘백두대간 종주’ 힘차게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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