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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갑질' 죽음 뒤, 또다른 '갑질'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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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갑질' 죽음 뒤, 또다른 '갑질'이 숨어 있다?

기자의 '갑질'이 고인을 죽음으로?... 대책위 "대구시, 연구원도 책임있다"

"아버지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던 듯해요. 자신을 괴롭힌 기자를 상대로 고소장까지 준비했는데... 결국 견디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아버지 회사나 대구시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입장도 말하지 않고 있네요."

창졸간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30)은 아직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평생을 소박하게 산 분이었다. 아들을 늘 챙겼다. 자신의 퇴근이 늦어지면 아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갔다.

그런 아버지에게 변고가 생겼다. 점심 무렵이었다. "아버지에게 큰일이 났다"는 아버지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급히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들이 만난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지난 10월 31일, 낮 12시께 자신의 직장 지하주차장 자동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날 새벽 3시께 승용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아버지 차에서는 빈 소주 한 병과 재만 남은 착화탄이 발견됐다. 일명 '번개탄'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아버지는 하나 뿐인 아들을 남겨두고 그렇게 가야했을까.

▲ 패션센터 1층 로비에 차리진 고인의 빈소. ⓒ프레시안(허환주)

대관업무 독점하면서 횡포를 부린다?

아버지 손진기(57) 씨가 맡은 일은 대구에 있는 패션센터(한국패션산업연구원 산하) 대관업무와 건물관리다. 유가족, 고인의 회사동료, 고인이 남긴 문자, 유서 등을 종합해보면 고인은 K언론사 기자의 갑질기사, 그리고 이후 자신에게 가해지는 외압 등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이 남긴 문서에 따르면, 고인은 우연히 자신이 담당하는 패션센터에서 A업체가 박람회를 한다는 광고를 접했다.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자신은 알지 못하는 박람회였다. 더구나 광고에 적힌 박람회 날짜는 이미 다른 곳에서 대관 예약을 한 기간이었다.

A업체에 전화를 걸어 박람회를 한다는 날짜는 이미 앞서 5월께 예약이 완료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정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여러 외압을 들어왔다. K언론사 기자가 대표적이었다. 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A업체의 편의를 봐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기존 계약 업체의 신청을 취소시키고 A업체 예약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였다. 고인이 재차 그럴 수 없다고 하자 성을 내면서 고인을 협박했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대구시에 출입하는 기자도 알고 국장님도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냐. (대구)시장님에게 전화하고 당신 십 몇 년 성실히 근무한 것 박살낸다.

패션센터 건물은 대구시 소유로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이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즉, 대구시에서 연구원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해당기자는 대구시장 등을 운운한 셈이다.

이후에도 K언론사 기자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본원까지 찾아가 이와 관련,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취재 명목으로 연구원 관련, 각종 자료요청을 대구광역시를 통해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인의 패션센터 대관업무 관련,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작성해 게재했다. 지난달 16일 발행된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 갑질 도 넘었다' 기사에서는 고인이 대관업무를 도맡아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횡포를 부린다고 주장했다.

기자의 '갑질', 소속 언론사도 공개사과

첫 번째 기사를 낸 이후에도, K언론사 기자의 '갑질'은 계속됐다. 직접 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대관 청탁요청 과정에서) 자신이 고인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기자는 "(고인이) 어렵게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갔는데, 나이도 경험도 있는 분이 그렇게 사람 대응을 하지 못하는가"라며 "내가 부탁(대관 관련)했는데 (예약이 다 찼으니) '전화하지 마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이러니 거기에서 감정이 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화통화를 한 지 3일이 지난 30일, 또다시 해당기자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센터 그대로 방치하나?'라는 기사를 통해 패션산업연구원이 고인을 대관업무에서 빼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이를 견디지 못해서였을까. 두 번째 기사가 나온 다음날인 31일 새벽, 고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괴롭힌 K언론사 기자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그동안 얼마나 당신 글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해 보았는지요. 당신이 쓴 글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을 바랍니다."

해당 기자는 고인에게 협박하거나 괴롭히지 않았다면서 대관 관련해서 알아보는 과정에서 대관업무에 문제점이 많다고 판단돼 기사를 썼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고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K언론사는 15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면서 해당기자는 사건 후 사표를 제출했고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에서 해당기자의 잘못이 크다는 것.

K언론사는 "해당 기자는 순수한 동기에서 관련 취재를 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경위를 들여다 본 바 가까운 지인 대관을 돕기 위한, 즉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취재 과정에서도 통상적 취재 윤리에 위배되는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고 기사 역시 과장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K언론사는 관련해서 "이 사건을 교훈삼아 기자들에 대한 취재 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해 다시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며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해 고인의 자살 경위를 명백하게 밝히고 해당 기자의 위법행위가 드러나면 엄중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체조사 결과, 해당기자의 기사는 물론, 취재 과정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는 이야기다.

기자의 '갑질'만이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 대책위에서 주최한 집회에 참석한 고인의 아들. ⓒ프레시안(허환주)
하지만, 17년 동안 대관업무를 담당해온 고인이 기자의 '갑질'만으로 죽음까지 선택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구나 고인은 개인적으로 해당기자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 중이었다.

그랬던 고인이 극단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고 손진기 노동자 사망관련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고인이 속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그리고 이곳을 관리·감독하는 대구시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고인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되레 고인이 그동안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사후대책을 마련했다는 것.

실제, 16일 첫 기사가 나온 바로 다음 날, 대구시에서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 공문을 보냈다. 언론보도에 따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향후 조치 계획을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단체나 정부의 경우, 비판 기사가 나오면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해명보도자료를 내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면, 조치 계획은 필요 없다. 그런데 공문을 받은 연구원 측은 일주일 뒤, 대구시에 공문을 보낸다. 기사 내용 관련해서는 내부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으나 개선 방향 계획이 적시됐다. 기존 고인 전담으로 진행된 대관 업무를 온라인 시스템 적용을 통한 신청 업무와 현장지원을 통한 관리 업무로 이원화함으로써 대관 사용에 따른 논란을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고인을 신청 업무를 배제하고, 현장지원, 즉 시설유지 업무만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연구원 측은 전 직원 대상 윤리경영 등을 교육일정에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매년 1회 이상의 정기적인 '고객응대 서비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임직원 행동강령’ 관련교육 등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자체적인 사실 확인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개선 방향은 사실상 고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식이었다. 관련해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담당자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경욱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기자가 첫 번째 기사를 쓴 뒤, 대구시와 연구원 측에 끊임없이 요구한 것이 고인에 대한 인사 이동이었다"며 "그런데, 그 요구 관련해서 대구시에서 공문을 통해 사실상 압박을 가했고, 연구원은 그에 따라 마치 고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인사 이동을 한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아무 잘못하지 않았던 고인 입장에서는 17년 동안 해온 업무에서 쫓겨나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 컸을 것"이라며 "또한, 사후대책이라고 만든 것이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교육하겠다고 하니, 고인 입장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더구나 애초 해당기자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려던 고인은 이 마저도 '위'에서의 압력으로 주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이 세상을 뜨기 전날 법무사와 해당기자 고소건 관련, 전화통화한 내용에서는 법무사가 고소장 관련 언제 가지러 올 것이냐고 묻자 "위에서 (고소를) 만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이러한 일련의 내용을 보면, 연구원이나 대구시에서 오히려 '갑질'한 기자보다 고인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박을 더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구시 "압력 가한 적 없다"

하지만 대구시는 그런 주장을 적극 부인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연구원에 공문을 보낸 것을 두고 "기사가 났으니 관련해서 알아보라는 취지로 공문을 보낸 것"이라면서도 이전에도 기사가 나자마자 곧바로 공문을 보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시가 고인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을 두고 "대책위에서는 감사를 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감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대책위에서 고소를 한 뒤, 수사를 통해 밝혀지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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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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