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비난의 대상을 미국의 민주당 정권들에서 북한 정권으로 옮겨갔다. 이를 잘 보여준 장면이 2017년 11월 8일 한국 국회 연설이었다. 그는 "북한 정권은 미국과 동맹국에 했던 모든 보장, 합의, 약속을 어기면서 핵과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예를 들었다.
첫째는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기본 합의다. 그는 "플루토늄을 동결하겠다고 94년에 약속한 이후에도 북한은 합의의 혜택은 거두면서 즉각적으로 불법적 핵 활동도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플루토늄 활동을 중단했지만,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개시했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북한 독재체제는 핵 프로그램을 궁극적으로 폐기하고 비확산조약에 복귀하겠다고 했지만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포기하겠다고 협상한 무기를 실험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북한은 아직까지 NPT에 복귀하지 않았고, 2006년 10월에는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셋째는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된 2009년 말부터 2010년 초까지의 상황이다. 2009년 말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6자회담 재개에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2010년 초에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워싱턴을 방문해 추가 협의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런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고가 발생하자, 김계관의 방미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이를 두고 트럼프는 "2009년 미국은 다시 한 번 협상하여 북한에 관여(engagement)를 제시했지만, 북한의 답은 한국 해군 함정을 침몰시키고 46명의 해군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발언 속에는 "북한과의 외교는 항상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고는 합의를 깼기 때문에 실패해왔다는 점을 역사가 보여준다"는 미국의 굴절된 역사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건 트럼프 행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규정하고 사사건건 이 합의의 파기 기회를 엿봤고 결국 성공했다. 뒤이어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도 제네바 합의와 9.19 공동성명의 무산 책임을 북한에 돌리면서 "같은 말을 세 번 사지 않겠다"며 "전략적 인내"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런데 북핵 문제를 "엉망진창"으로 물려줬다며 오바마를 맹비난했던 트럼프가 정작 오바마의 역사 인식의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다. 물론 북핵 상황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데에는 북한 정권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약속과 합의 위반으로 따진다면, 그 책임은 미국(그리고 때로는 한국)이 더 크다는 것이 팩트에 가깝다. 몇 가지 사례만 짚어보자.
북한이 1990년을 전후해 비밀리에 플루토늄 10kg 정도를 추출했다는 의혹이 여전히 정사(正史)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당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한 90g이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2008년에 확인되었다. 이를 근거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북핵 문제의 시작은 미국의 허위 정보에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92년 1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었던 ‘팀 스피릿’ 중단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해 10월 양국의 대선을 앞두고 재개 방침을 발표했다. 이는 이듬해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이어졌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대한 미국의 이행 성적도 낙제 수준이다. 매년 50만 톤씩 제공키로 했던 중유는 공화당의 반대로 번번이 늦춰지거나 축소되기 일쑤였고, 2003년까지 제공키로 했던 경수로도 30%의 공기도 채우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추구한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한다"고 해놓고선, 이후에도 북한을 상정한 모의 핵 공격 훈련을 실시했다는 점이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 담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고, 이듬해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미공동코뮤니케를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그리곤 북한을 "악의 축"이자 핵 선제공격 대상에 올려놓았다. 결국 실 끝에 매달렸던 제네바 합의는 우라늄 농축 문제로 북미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반전(反轉)의 기회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 제재를 가했고 이에 북한이 격렬히 반발하면서 9.19 공동성명도 휴짓조각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가 2007년 들어 북미 직접 대화에 나서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북핵 검증 문제가 첨예한 이슈로 부상했다. 대개 알려진 상식은 북한이 검증의정서를 수용하지 않아 6자회담이 파국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시 검증은 다음 단계에서 논의하기로 했었던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도 인정한 바이다. 2008년 6월 헤리티지 재단 연설에서 라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3단계에서 다루기로 했던 검증과 원자로에 대한 접근과 같은 이슈를 2단계로 가져왔지요." 경기 중에 골대를 옮긴 셈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중단된 6자회담은 9년이 지나도록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과거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잘못된 정책의 기초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부시 행정부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이에 해당된다. 트럼프의 국회 연설은 그 결정판에 해당된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가 무엇일까? 1974년부터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정보국 등에서 북한 문제를 다뤄온 로버트 칼린은 트럼프의 연설을 보고 이렇게 지적한다. "팩트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2001년 1월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나타난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함으로써 더더욱 실패한 정책을 야기할 뿐이다." 그가 말한 "더더욱 실패한 정책"에는 전쟁 가능성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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