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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과거 盧정부땐 "국정원 특수비 투명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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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과거 盧정부땐 "국정원 특수비 투명하게 하라"

'박근혜 문고리' 옭아맨 특활비, 文정부는 다를까?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특수활동비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2017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이하 '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규정돼 있다.

특수활동비의 가장 큰 특징은 운영비, 여비, 업무추진비 등 다른 예산 항목(비목)에 비해 증빙 절차가 엄밀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재부 '지침'은 특수활동비의 증빙에 대해 "현금 사용을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현금 사용시에도 경비 집행의 목적 달성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함으로써 특수활동비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만 하고 있다.

이를 뒤집으면, 영수증 등 상세 증빙자료를 첨부하는 것이 '경비 집행의 목적 달성'에 지장이 있을 경우는 증빙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특수활동비는 '눈먼 돈', '쌈짓돈' 등의 비판을 오래 전부터 받아왔다.

물론 국정원, 경찰 등 기밀 엄수가 필요한 업무를 하는 기관은 비공개 경비를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현실론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경비를 집행하는 공무원이 '얼마를 수령했다'는 서명만 하는 것은 투명성 측면에서 적절치 않고, 최종 사용처에서 발부한 영수증 첨부까지야 어렵다 해도 '어떤 상황에서 얼마를 썼다'는 내역을 모든 경우에 구체적으로 적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 꾸준히 있어 왔다. 필요한 경우 이같은 사용 내역은 비밀 지정 등을 통해 비공개로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수활동비는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 등 누가 봐도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업무를 하는 부서 외에, 청와대, 법무부, 국회 등에도 일부 배정이 돼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정부 전체 특수활동비는 총 8870억 원으로 국정원(4860억), 국방부(1783억), 경찰청(1298억), 법무부(286억), 청와대(266억), 국회(79억) 등에 지급됐다.

문제는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 관련 입장이 정권이 바뀔 경우 달라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 액수를 줄이고 감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는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이에 반대해 왔다. 예를 들면 이렇다.

"19개 부처에 편성되는 특수활동비는 영수증도 사용처도 보고하지 않도록 돼 사적 유용 가능성이 크다. 국민 혈세를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2015.8.31.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특수활동비 대부분은 국정원·국방부·경찰청 등 정보·안보·치안 기관의 국정 수행 활동에 사용되는 것으로, 정보 기관 예산을 공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같은날.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그런데 정확히 10년 전,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전혀 달랐다. 입장이 정반대였던 것.

"국정원이 쓰는 예산이 상당히 불투명하다. 투명성을 최대한 강화해 국회가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각 부처 예산으로 분산돼 있는 특수활동비가 대표적인 국정원 불투명 예산이다" (2005.8.18.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특수활동비'라는 예산은 영수증 없이 지출내역도 공개 안 하고 쓰는 돈이다." (2005.8.9. 유승민 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

"예산은 그 기관의 활동 범위를 보여주는 것인데, 한 나라 정보기관의 예산을 일일이 공개하라는 것은 억지다. 미국에서도 CIA 예산 총액 공개 소송이 있었는데 '국가 기밀과 안보에 관한 사안은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돼있어서 패소했다." (2005.8.10. 익명의 열린우리당 정보위원. ☞관련 기사)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에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회 결산안 처리 과정에서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야당), '못 한다'(여당)는 샅바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관련 기사 : 결산 본회의 무산…'특수활동비' 공개 놓고 갈등) 즉 1987년 민주화 이후, 야당에서는 '시민의 혈세이니 감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자신들이 여당이 되면 '국가 안보가 중요하니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장을 바꿔 온 것이다.

'1000만 촛불'로 탄생됐음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는 이같은 이중성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까? 우선 올해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삭감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2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특수활동비 사용을 절감해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다른 사업에 돌리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이정도 총무비서관이 밝혔다. 또 2018년도 예산안에서,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전년(266억) 대비 70% 수준인 182억 원(비서실 97억, 경호처 85억)만 편성됐다.

다만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올해(4860억)보다 오히려 늘어난 4930억 원이 편성됐고, 정부 전체로 봐도 8938억 원이 편성돼 올해보다 다소 늘어났다. 국방부(1480억), 경찰청(1059억), 법무부(238억) 등은 수십에서 수백억 원 정도 줄어들었지만 전체 규모는 비슷했다.

정부가 제출한 이같은 특수활동비 편성안은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복병을 만날 전망이다.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불법으로 상납받았다는 논란 때문이다. '이참에 특수활동비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적폐'로 규정하면서도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혈세로 조성된 소중한 국민들의 재산"이라며 "국민의 삶이야 어떻게 되든, 나라가 망가지든 말든, 검은 돈으로 부동산 사고 용돈 나눠 쓰면서 호가호위했던 이들은 전부 단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나아가 "박근혜 정부 국정원은 목적을 벗어난 특수활동비를 집행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 권력이 사용하는 불법행위를 철저히 단절할 것으로 믿는다"는 논평을 냈다.

반면 국민의당은 전날 이용호 정책위의장이 "대공·방첩에 쓰라고 특수활동비를 줬더니 '청와대 특수접대비'로 썼다"고 이번 '상납' 사건에 대해 비판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예산을 다루면서 국내 공작에 쓰인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대폭 삭감하는 등 대수술을 하겠다. 아울러 엄격한 검증과 최소한의 감사가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문 대통령이 국정원 국내정보 파트를 전격 폐지했지만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작년과 동일한 수준인 4930억 원이 편성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국내 정보활동과 수사 기능을 없앴다면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삭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한 감사원 감사, 국회 예산 심사, 기재부 예산 편성 등 모든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난 국정원 예산의 구조적 문제도 이번에 손봐야 한다"며 "국정원 특수활동비 전면 개혁을 위해, 국회부터 모범적으로 특수활동비를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주장은 정의당에서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 대표뿐 아니라 심상정·노회찬 전 대표 등이 앞서 주장한 바 있다. 정의당 대선후보였던 심 전 대표는 지난해 7월 기자회견에서 "국회에 고도의 비밀을 유지할 업무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수활동비를 받아가는 것 자체가 배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의당 예결위원인 윤소하 의원도 이날 "올해 예산부터 특수활동비에 대한 전면적 수술이 필요하다"며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규모를 줄이고, 사용 뒤 증빙자료를 첨부하도록 해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국회를 포함해 각 부처의 3220억 특수활동비 역시 규모를 줄이고, 업무추진비나 특정업무경비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야당으로서 비슷한 주장을 해 왔고, 올해 예산 심의에 임하는 입장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한편 이들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을 입에 올리는 이들도 있다. 자유한국당이다.

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위' 위원장인 장제원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들은 진정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고해성사부터 하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의 모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해 투명하게 낱낱이 공개하라. 그렇지 않을 경우 국회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한 예산 심사와 결산 심사를 받는 법적 절차를 마련할 것이고, 이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국정원 특수활동비 4930억 원에 대한 전액 삭감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귀신 작전'의 일환이지만 특수활동비가 문제라는 점을 역설적으로나마 인정한 셈이 됐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이날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는 없다"며 "한국당은 자기들이 그런 것에 선수였으니까 남도 잘 하겠지 하는 것"이라고 한국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청와대는 의지를 보였다. 국정원·국방부 등 정부 부처와, 여당인 민주당은 청와대의 신호를 못 본 척 미적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나 문재인 정부 때나 야당인 이들은 계속 '개혁'을 주장하고 있고, 여당이었던 한국당은 10여 년 전 야당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특수성, 비공개 집행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이들이 그 머쓱함을 어떻게 감당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정치권 바깥에서는? 대표적인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11월 1일자 논평이다.

"('문고리 상납' 사건에 대한)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의 범죄 혐의를 밝히는 것과 더불어, 차제에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편성을 축소하고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회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기밀성을 이유로 예산 전액을 특수활동비로 편성하고 있고,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국회 예결특위 심사를 거치지 않고 감사원 회계감사도 받지 않는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필요한 경우 실질심사를 할 수 있다고하나 지금까지 매우 형식적이었거나 전문성을 갖춘 보좌진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등 사실상 통제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국정원 스스로 특수활동비를 엄격하게 사용하고 관리·통제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특수활동비를 배정받는 기관들은 기재부 지침에 따라 특수활동비 자체 지침 또는 집행 계획을 수립해야 하나, 이를 공개해 달라는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국가 예산 집행에 대한 외부 견제마저 국정원은 거부하고 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 사용은 이번만이 아니다.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 군 심리전단에 특수활동비를 불법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아무런 통제가 이루어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이 편성 목적과 달리 특수활동비를 마음대로 쓰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국정원 예산 전액을 특수활동비로 편성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인건비·운영비 등은 다른 비목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 국회 정보위원들이 충실히 심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국정원도 감사원 회계감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나아가 미국의 'CIA 감찰관'이나 캐나다 '보안정보심의원회'와 같이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상임위 외에도 정보기관 활동·재정을 감독·조사할 수 있는 전문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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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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