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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벨벳 혁명의 주역이 말하는 한국의 '촛불 혁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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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벨벳 혁명의 주역이 말하는 한국의 '촛불 혁명론'

촛불 혁명이 성공하려면 일상의 혁명이 필요하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올해 초봄까지 이어진 촛불 집회는 한국 현대사를 새로 썼다.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했고 새 정권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들어섰다. 예전에도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물러나거나, 영구 독재를 꿈꾼 이가 민주적 절차를 끝내 받아들인 사례가 있지만, 이번에는 철저히 헌법적 질서에 따라 모든 과정이 차분히 이행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우려했던 정국 혼란은 (거의) 없었다.

피지배자가 지배자를 갈아치운다는 좁은 의미로만 보면 촛불집회는 이제 촛불혁명으로 불리울 수도 있을 법해 보인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기존 질서 체제(헌법 체제)를 뒤엎지 않고 오히려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는 점,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와 이 정부를 만든 시민이 아직 근본적 변화를 (성급히) 추진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보면 촛불집회를 유럽을 뒤흔든 68혁명이나 가까운 벨벳 혁명 등과 비교하기는 조금 일러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기억에서도 희미해져버린 듯한 촛불집회의 성과와 의의는 무엇일까. 이를 우리의 눈과 외부의 눈을 통해 고민하는 자리가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마련됐다.

제36회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해 이날 경희대에서 열린 '피스 바 페스티벌(Peace BAR Festival)'은 '벨벳과 촛불 이후: 자유, 시민 미래'를 주제로 원탁회의를 열어 촛불집회의 의의를 되새겼다.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원탁회의에는 미카엘 잔토프스키 체코 하벨도서관장과 리베르토 바우티스타 전 콩고(CoNGO) 의장, 게리 제이콥스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 최고경영자, 박영신 연세대 명예교수, 송재룡 경희대 대학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촛불집회를 '촛불혁명'으로 명명했다.

▲21일 경희대서 열린 세계 평화의 날 기념 행사에서 미카엘 잔토프스키 체코 하벨도서관장이 발언하고 있다. ⓒ경희대 제공

"성공적인 혁명이란 실패로 끝나는 것"

가장 흥미로운 발언은 미카엘 잔토프스키 도서관장에게서 나왔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 독재 체제를 피 흘리지 않고 뒤집어 민주공화체제로 뒤바꾼 잔토프스키 도서관장은 벨벳 혁명의 당사자다. 이 혁명으로 극작가였던 바츨라프 하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었고, 민주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에도 올랐다. 심리학자이자 영문 번역가였던 잔토프스키 도서관장은 혁명 당시 시민포럼을 창립해 혁명을 주도했고, 민주정이 들어선 후에는 대통령 언론보좌관으로서 행정부에서, 이후 상원의원으로서 의회에서 활약했다. 하벨 전 대통령의 전기를 써 '하벨보다 하벨을 더 잘 아는 인물'로도 알려졌다.

잔토프스키 도서관장은 혁명과 같은 급진적 체제 변화의 시기에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히려 '실패한 혁명'이 더 위대할 수 있다는 기묘한 말까지 했다.

"모든 혁명, 급진적이고 특히나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올바름을 회복하려는 혁명의 경우 결과적으로 어렵게 끝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은 성공한 혁명이다. 프랑스에서는 왕정제가 무너졌고, 소련에서도 공산 체제가 무너졌다. 하지만 수천, 수만 명이 그 과정에서 희생됐다. 국가는 폐허가 되었고 전쟁으로까지 치달았다. 그러므로 어쩌면 유일한 성공적 혁명은 실패로 끝나는 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체코)의 혁명이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점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촛불혁명)도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잔토프스키 도서관장은 정의 회복이라는 이상향이 현실과 부딪힐 때 오는 반향이 결코 극복하기 쉬운 과제가 아님을 경험자로서 강조했다. 혁명 이후 오히려 숙고가 더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는 하벨 전 대통령의 고민을 예로 들어 "집단적 정의를 실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의 예를 들어, (독재 체제를 유지한) 공산당원 전체를 처벌할 수는 없었다"며 "결국 사람들이 다 만족할 수는 없었고, 누군가는 '(벨벳 혁명은) 실패'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실패했다손 치더라도 영광스러운 실패였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잔토프스키 도서관장의 말을 받아 원로 사회학자인 박영신 명예교수는 촛불집회가 진정 촛불 '혁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큰 시민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박 명예교수는 우선 촛불집회의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혁명의 완성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힘줘 말했다. "촛불혁명을 거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우리 세상이 바뀌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제 우리의 도 다른 희생이 필요하고, 또 다른 각오가 필요하며, 또 다른 운동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특히 박 명예교수는 이제 촛불집회의 의의를 국경을 넘어 이웃에게로 전파할 사명을 우리가 가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겨울 촛불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희생정신을 갖고 동시대인의 삶, 아픔, 죽음을 생각했듯, 이제 우리의 관심을 이웃으로 확장할 사명을 촛불 정신이 갖고 있다. 촛불혁명은 우리나라 테두리 안에서의 민주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안 이웃을 향한 관심에서 촛불이 끝난다면, 지역의 혁명으로 남을 뿐이다. 이웃 일반을 향한 관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범세계 수준으로 우리의 고민을 확장해 이 세계에서 고통 받는 이웃을 향한 관심으로 확장할 때만이 촛불혁명이 의미 있는 역사로서 기록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일상을 어떻게 꾸려갈 것이냐에 관한 고민은 촛불의 당사자였던 한국 패널들의 공통된 고민으로 보였다. 송재룡 대학원장 역시 박 명예교수와 함께 촛불 이후의 중요성을 다른 패널보다 더 강조했다.

"상징적으로 은유하자면, 촛불이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의에의 요구가 나타나야 한다. 이제 촛불시민혁명은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을 되찾은 우리가 할 일은 대규모 운동으로서의 시민 운동이 아니라, 우리 일상을 주체적이고 참여의식이 있는 생활정치 무대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의식이 자리 잡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나친 시장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우리 삶이 진부해지지 않도록, 천박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권 차원의 문제, 외부로의 확장 문제 못잖게 촛불집회 당시 숭고함을 되새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회자였던 김민웅 교수는 패널들의 주장을 정리한 후 지난 촛불집회의 특징을 열거하다 특히 보통 사람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광화문 시위 양상을 보면 이름 없는 사람들, 즉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 비정규직 청년, 중학생, 학력 수준이 낮다고 멸시당한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말한 '힘없는 자의 힘(power of the powerless)'이 실현된 것이고, '목소리없는 이들의 목소리(voice of the voiceless)'가 들렸다는 게 촛불의 광장이 지닌 매우 소중한 측면이다. 문제는, 혁명이 제도화하며 이 때 광장에서 목소리를 낸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치화하지 못하고, 사회화하지 못하고, 역사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집회는 끝났고 정권은 바뀌었다. 하지만 지난 겨울 광장에서 시민은 단순히 정권 교체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촛불집회가 '혁명'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프레시안(최형락)

촛불의 완성에 대학의 역할도 필요하다

아카데미 행사였다는 점답게 촛불집회를 혁명으로 완성하기 위해 대학의 역할, 시민운동사회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강조되어 나왔다. 특히 비정부기구 운동에 천착한 리베르토 바우티스타 전 콩고 의장이 이 점을 강조했다.

바우티스타 전 의장은 마르코스 독재 시절 필리핀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평생을 비정치기구 활동가, 곧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다. 콩고(CoNGO)는 이름에서 확인 가능하듯 세계시민사회단체연합(Conference of NGOs in Consultative Relationship with UN)의 약자다. 1948년 출범한 유엔의 자문 지위를 지닌 국제 NGO 협의체로,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가 회원이다.

바우티스타 전 의장은 혁명은 언제나 실패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와 학계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NGO나 비판적 사회운동(CSN) 세력이 특정한 이벤트에 대응해 크게 일어날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건, 항상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사회 변화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이 특정한 시민의 움직임을 역사적 맥락에서 풀이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변화의 움직임을 역사적 연속성에서 바라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왜 내가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내 촛불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바우티스타 전 의장은 촛불집회 이후의 체제가 비록 조금 실망스럽더라도 역사적 맥락성으로 바라보며 너무 지치지 말라고도 했다. 모든 혁명의 결과 기존에는 풀뿌리였던 이들이 정부 당국자(권력자)가 되기 마련이고, 이를 꼭 실패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중요한 건 사람들이 투쟁의 이야기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임을 재차 강조하며 "그래야 혹시라도 새로운 정부가 시민을 배반한다면 다시금 시민이 촛불을 켤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였던 만큼, 말미에는 북핵 문제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바로 핵무기에 관한 반성으로 탄생한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 World Academy of Art and Science) 최고경영자가 특히 이 문제에 관해 근본적 지적을 했다. WAAS는 인류를 영구적 파멸로 몰아넣을 핵무기의 탄생을 목격한 앨버트 아인슈타인, 로버트 오펜하이머, 버틀런드 러셀 등 각계 대표적 지성이 1960년 창립한 연대기구로 과학·예술·인문의 통합적 사유와 지식의 공적 실천을 지향하는 단체다.

제이콥스 최고경영자는 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가 절정에 달했을 당시 미국 내 학생운동의 핵심이었던 UC버클리를 졸업했고, 이후 인도로 건너가 상당 기간을 현지에서 살았다.

제이콥스 최고경영자는 지금의 북핵 위기 핵심은 한반도 위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고, 근본적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냉전시대 말, 우리는 핵무기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앨 기회를 놓쳤다.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큰데, 당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이 계속해서 핵 권력을 쥐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인류는 핵위협에 영구히 노출됐다. 기존 핵 보유 5대 강국이 문제를 키웠다. 자신들은 핵을 보유한 채 다른 이들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게끔 강제했다. 진정 비판을 받아야 할 주체들이 비판받아야 한다. 현재 북핵 위기의 핵심은 한반도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미국은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의 위협에 반응하지 않는다. 북핵이 미국 본토를 노릴 수 있다는 위협에 반응한다."

하지만 코앞에 닥친 현실을 마냥 무시하고 원칙론에만 함몰될 수는 없다. 현재 우리에게,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가장 어려운 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한국은 미국과 북한 간 핵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엉뚱하게 사드 배치로 인한 유탄을 맞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제이콥스 최고경영자는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하며, 이를 잘 하는 것만으로도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서독의 사례를 들어 강조했다.

"냉전기간 서독이 한국과 유사한 상황에 처했다. 소련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서독 내에 핵무기까지 배치됐다(미국의 핵무기 전진기지가 됐다). 당시 서독은 딱히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서독이 한 일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 정치를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서독의 이런 역동성이 동독에 압력을 가했다. 이 시민 사회의 역동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매력적인 힘이다. 한국도 이 역동성을 살려나갈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다."

시민의 힘을 키워가야 한다는 점은 패널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결국, 촛불과 북핵사태 모두 우리 사회가 일상의 힘을 어떻게 키워갈 것이냐는 숙제를 안긴 셈이다.

박 명예교수는 "우리는 트럼프가 생각하는 답답한 나라를 거부해야 하고, 영국이 끌어가는 브렉시트라는 옹졸한 생각의 틀도 벗어나야 한다"며 "이런 저항의 힘을 시민 사회, 시민이 아니고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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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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