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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남자랑 결혼하면 죄인?…성·인종 차별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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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남자랑 결혼하면 죄인?…성·인종 차별은 그만!

[토론회] "인종 차별 성찰 없는 '다문화 사회'…허울 좋은 꿈"

#사례 1. 4년 전 결혼과 동시에 한국에 온 인도 여성 A씨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검은 피부 때문에 아이가 받을 차별이 두려운 것. 한국 사람과 생김새가 별 차이가 없는 중국이나 베트남 이주 여성과 달리, 그는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곧잘 '검둥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례 2. 국제 결혼을 통해 6년 전 한국에 온 베트남 여성 B씨는 "시집 잘 왔다"는 주변의 말이 달갑지 않다. 그에게 있어 그 말은 칭찬의 의미가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운 좋게 한국에 온 것에 감사하라"는 의미다. 이 어법 속에서 결혼 이주 여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팔려온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다.

#사례 3. 다문화가족협회 정혜실 대표는 지난 1994년 파키스탄 인 남편과 결혼해 입국할 당시, 한 시간 동안 입국 심사를 받았다. "어떻게 먹고 살 작정이냐", "왜 결혼했느냐"라는 심사관의 질문이 이어졌고, 정 씨가 "내가 미국 남성이랑 결혼했다면 이렇게 붙잡아 두겠느냐"라고 반발하자, 입국 심사 직원은 당연하듯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 이주 여성, 남편이 파키스탄 인이란 이유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오 한국인 여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콩고 난민,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 속에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강당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다.

▲ 26일 서울 서대문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강당에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인종 차별을 고발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프레시안

'나 이제 할 말 있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인종차별주의를 고발했다. 성·인종차별 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 토론회는 지난달 인도인 교수 보노짓 후세인 씨와 그의 한국인 동료가 버스 안에서 성·인종 차별적 모욕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관련 기사 : "'버스 모욕' 印 교수-'살해 협박' <반두비> 주인공")

'인권 사각지대' 속 이주노동자…입국 시 임신·에이즈 검사까지

후세인 씨의 사례는 언론의 보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대다수 이주민들은 여전히 일상적으로 성·인종 차별적 폭력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 다문화 시대는 허울 좋은 꿈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 미셸 씨는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품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 임신, 에이즈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며 "이는 곧 이들이 한국 사회에 위협적인지, 노동력으로 쓸모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 콩고 출신 난민 토나 이욤비 씨. ⓒ프레시안
미셸 씨는 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나 여타 한국인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신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리는 '인간'이기보다 '수입된 노동력'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고용주는 최소한의 인권 보호없이 노동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라고 비판했다.

콩고 출신 난민 토나 이욤비 씨는 "'단일 민족'을 중시하는 한국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난민들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며 "북한 탈북자의 경우, 그들 역시 난민이지만 '같은 혈통'이란 이유로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관성이 없고, 인종 차별적인 난민 정책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 레티마이투 씨는 "똑같이 국제 결혼을 했는데 서양에서 온 여성은 대우를 받고, 동남아시아에서 왔고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하면 대번에 무시 당한다" 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짓밟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주노동자가 '일자리'와 '한국 여성'을 훔쳐간다?…"전형적인 성·인종차별주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인종 차별이 성 차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다문화가족협회 정혜실 대표는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일이 적잖다"며 "이는 이들 여성을 주체성 없이 일방적으로 유혹 당하는 '피해자 여성'으로만 간주하는 가부장적인 사고"라고 지적했다.

▲ 다문화가족협회 정혜실 대표. ⓒ프레시안
정 대표는 이어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일부 이주 남성들이 한국 여성에게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을 저지른다며 크게 분노하는데, 한국인 여성들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왜 한국인 남성에 의한 성폭력·가정 폭력에는 침묵하는가"라며 "이는 여성의 성을 '민족'의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꼬집었다.

정정훈 변호사 역시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 중 하나가, '일자리를 훔치는 그들이 우리의 여성과 안전까지 훔치고 있다'는 식의 담론이다"라며 "그렇듯 혈통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인종주의는 성차별 논리로 직결되기 쉽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허울 뿐인 말이나 생색내기식 정책이 아니라, 인종 차별에 관한 전사회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를 주최한 성·인종차별대책위원회는 후세인 씨 사건과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성·인종 차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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