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뒤늦게 경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고는 하나, 2명에 불과했던 여성 후보 가운데 조배숙 의원에게 뒤졌다는 것은 '차기 민주당의 여성 지도자'였던 추 의원에게 분명한 충격이다.
컷 오프 통과자가 발표된 후, 일찌감치 최고위원 선거를 준비해 왔던 조배숙 의원의 눈가에 맺힌 눈물도 이를 보여준다.
400명 남짓의 민주당 선출직 중앙위원들은 왜 추미애를 버렸을까?
"당론 무시하고 동료 의원 배제하며 통과시킨 노조법, 추미애 발목 잡아"
예상치 못한 '추미애 탈락'의 1차적 원인은 지난해 추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강행 통과시켰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파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추 의원은 다른 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당론까지 어겨가면서 노조 전임자의 유급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도입과 복수노조 시행의 1년 6개월 유예를 담은 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첨예한 갈등 속에서 추 의원은 민주당의 당론과 상관 없이 중재에 나서, 이 법안은 이른바 '추미애 노조법'으로 불렸다.
또 추 의원은 같은 민주당 소속 환노위 위원이었던 김상희, 김재윤 의원까지도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추 의원이 강행 통과시킨 노조법은 지난 1월 1일 새벽 김형오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됐고 사실상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야당들은 이를 막지 못했고, 이미 상임위에서 통과된 노조법의 강행처리는 '강력 규탄'하는 것도 각이 잘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추미애 의원의 컷 오프 탈락의 이유를 "노조법 개정 이후 의총에서 다른 의원들이 추 의원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는 말로 설명했다. 동료 의원들의 이 같은 분노는 노조법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진짜 입장'과는 별개로, 추 의원이 보인 행보가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민주당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가 컸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 노조법을 이른바 '추미애 중재안'으로 통과시키고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던 추미애 의원. 당시 추 의원은 "억울하다"며 거리에서 '대국민 대화'를 자청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
당으로부터 중징계까지 받았지만, 추 의원은 이후에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예비 경선 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추 의원은 "저부터 자세를 낮추고 변화하겠다"고 했지만, "국민과 잘 소통하는 지도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지도부"를 거론하면서 '겸손' 보다는 '비전 제시'에 주력했다.
한 번은 실수로 용서 받을 수 있다지만 두 번은 쉽지가 않았다. 추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찬성했던 과오는 2년 전 정세균 전 대표와 맞붙어 아깝게 졌던 전당대회를 통해 씻김을 받았지만, 추 의원에게는 '당론을 배신했던' 새로운 기억이 여전히 가까이에서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노조법 파동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을 추 의원에게서 등 돌리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민주당의 차기 여성 지도자라는 대중적 이미지 또한 옅어지게 만들었다.
'동행정치' 추미애, '중도의 대표' 김효석의 탈락과 486의 전원 생존
'소신 있는 행보'로 유명한 추 의원이지만 자신만의 컨텐츠는 정작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진보 담론'을 화두로 내세우면서 자신의 과거 신념과는 별도로, '담대한 진보', '역동적인 복지국가' 등 '일단 좌회전'을 시도하는 가운데 추 의원이 내세운 슬로건은 '동행 정치'였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앞다퉈 진보를 얘기하고, 심지어 정동영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핵심 공약이었던 부유세까지 들고 나왔다. 민주당의 '좌클릭'을 추동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라기 보다는 극심해지는 양극화에서 기반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차기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의원이 복지 담론을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하지만 추 의원에게는 "노조법 개정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다"는 합리성은 보여도,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잠재적 민주당 지지층이 원하는 개혁성은 보이지 않는다. 중도의 대표 주자를 자청했으나 추 의원과 똑같이 '예비 경선에서 탈락한 3선 의원'이 돼 버린 김효석 의원의 패인도 마찬가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전라남도 담양이 지역구인 김 의원과 구 민주계의 대표주자인 추 의원의 패배는 더 이상 민주당에서 '호남+중도'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는 두 의원의 패배와 486(40대, 80년대 학번, 6월 항쟁 세대) 그룹 후보자 3명의 전원 생존을 겹쳐 놓고 보면 더 확연해진다. 16명의 예비 후보 가운데 9명을 가리는 컷 오프에서 "1명, 잘 해야 2명"이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던 486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부 본선에 진출했다. 이 3명이 약속했던 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이른바 '빅3'와 함께 지도부 입성에도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486 그룹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생물학적인 나이도 젊지만, 상대적으로 더 왼쪽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486의 전원 생존은 단순한 세대교체 열망에 더해 486으로 표현되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민주당 내의 열망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의 예비 경선이 '정치 고수'들인 선출직 중앙위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해 치러졌다는 점은 추 의원이 조배숙 의원에게 지는 수모를 겪게 된 또 하나의 이유다. 1명이 3표를 가지고 있는 컷 오프 특성상 이들 선거인단은 "누구를 떨어트려야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본선에서 유리할까"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이는 자연히 서로 다른 계파 간의 '짝짓기'를 만들어 낸다.
추 의원은 여기서 실패했다. 반면 조배숙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를 위해 상당히 많은 공을 들여 왔다. 상대적으로 늦게 출마 결심을 굳힌 추 의원은 이런 '짝짓기'와 관련된 물밑 작업을 할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추 의원이 이런 짝짓기 없이도 조배숙 의원을 이길 수 있다고 자만한 것 같다"고 민주당 관계자가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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