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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마지막 포옹, 그날을 詩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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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마지막 포옹, 그날을 詩로 적었다

[인터뷰] 시집 낸 세월호 유가족 유인애·이중섭 씨

세월호 유가족이 시집을 냈다. 읽어내려가는 한 줄, 한 줄이 눈물이다. 이산하 시인은 "피눈물로 쓴 이 시집에서는 칼로 천천히 살점을 도려내고 천천히 뼈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고 평했다. 이해인 수녀는 "깊은 슬픔 속에 숙성되고 발효된 언어들은 눈물겨운 공감의 언어로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고 추천사를 썼다.

저자인 단원고 2학년 2반 이혜경 양의 어머니 유인애 씨에게 이 시집은 마음속에 있는 '혜경이'를 불러내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배도 처음, 비행기도 처음이어서 들떠 있던 아이, 수학여행 가기 직전에 편도선염에 걸려서 행여나 수학여행을 못갈까 봐 마음 졸이던 아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돼서 돈 많이 벌어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겠다던 철이 일찍 든 아이" 혜경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요식행사로 진도를 다녀간 다음 날인 2014년 4월 18일 싸늘하게 식어 부모 품으로 돌아왔다.


"혜경아" 라고 부를 때 여전히 눈 앞에 살아만 있을 것 같은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그리움은 다른 어떤 말과 주장보다 '세월호 참사'의 무게를 더 잘 느끼게 해 준다. 혜경이 어머니 유인애 씨만이 아니라 유가족 모두가 가슴에 품고 있는 똑같은 그리움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들이 겪고 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고통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 책임이 있다는 걸 시집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이런 이유로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는 세월호 유가족이 쓴 첫번째 시집인 이 시집에 대해 "세월호 문학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중한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이혜경 양의 어머니 유인애 씨와 아버지 이중섭 씨를 지난 25일 만났다. 유 씨는 남편을 '(두 딸의) 아빠'라고 불렀으며, 이 씨 역시 아내를 '(아이들의) 엄마'라고 칭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기자들이 눈물을 더 많이 흘렸다.


유인애 씨의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굿플러스북 펴냄) 출판기념회가 오는 9월 5일 오후 6시 서울시NPO지원센터 대강당에서 열린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단원고 2학년 2반 이혜경 양의 어머니 유인애 씨와 아버지 이중섭 씨. 유 씨는 혜경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굿플러스북 펴냄)를 냈다. ⓒ프레시안(최형락)

마지막 포옹…"혜경아, 잘 다녀와"

프레시안 :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를 읽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한 글자 한 글자 굉장히 어렵게 썼다고 들었다. 그렇게 나온 시집을 받아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유인애 : 시집을 받고도 몇 번을 읽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감정이 달랐다. 시집을 펼쳐보고, 시를 읽을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록새록 틀리다.

프레시안 :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유인애 : 초기에 아빠에게 막 핀잔을 줬다. 밥 먹는 것도 그렇고, 아빠가 미웠다. 아빠가 당뇨가 있어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데, 그런 일로 좀 부대꼈다. 감정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때는 '이러다가 진짜 이혼하자는 말이 나오겠구나' 싶은 생각에 큰애(혜경이 언니)와 아빠 등 다 모아놓고 그랬다. "혜경이 보고 싶으면 우리 서로 숨기지 말고, 참지 말고 이야기하자"고.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집에 와서 "언니, 혜경이 보고 싶은 마음 글로 써"라고 했다. "언니, 원래 글 잘 쓰잖아"라고 하면서 동생이 먼저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마음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셈이니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프레시안 :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시가 있다면?

유인애 : '마지막 포옹'이라는 시가 있는데, 혜경이 피부를 만지며 체온을 느낀 2014년 4월 15일 그날의 포옹이 혜경이와의 마지막이었다.

결혼 7년 만에 큰애를 낳았다. 그리고 혜경이는 2년 뒤 생각지 않게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아이들이라 그런지, 어디를 간다고 하면 항상 안아줬다. 유치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해도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안아주곤 했다. 아이들이 큰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혜경이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할 때도 그랬다. 그날 유부초밥을 싸준 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혜경이가 "나 간다"라면서 집을 나섰다. 손으로는 설거지를 하면서 "혜경아!" 하고 불렀더니, 혜경이가 "엘리베이터가 왔다"며 그냥 가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불렀다. "혜경아, 엘리베이터 그냥 놔두고 들어와 봐"라고. 설거지하느라고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 혜경이가 뒤에서 "엄마, 왜?"라고 했다. 혜경이 목소리에, 고무장갑을 벗고 뒤로 돌아 안아줬다. "잘 다녀와"라고 하면서 꼭 안아줬다. 자라는 내내 안아주던 걸, 그날 빠트리면 안 되니까.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빠는 그런다. 그날 화장실에 있어서 혜경이를 안아주지 못했다고.


이중섭 : 그때 화장실에 있어 몰랐는데, 엄마와 혜경이 사이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유인애 :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까 큰애도 후회가 되는지, 자기는 방에서 자느라고 혜경이가 가는 걸 못 내다봤다고. 그러면서 "엄마만 혜경이를 배웅했다"고 한다. 큰애가 지금 직장을 다니는데, 워크숍을 간다고 해도 안아준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 그날의 아침 속으로 / 잃어버린 순간을 잡는다 / 그날 아침 딸과 나의 짧은 시간 / 살포시 감싸 안은 그날 아침 / 부엌에서의 포옹 장면 / 나는 한 장의 각인된 수채화를 완성했다 / 사랑스럽게 안아주고 / 사랑스럽게 안겨주던 / 따뜻한 심장이 맞닿은 / 엄마와 딸의 마지막 포옹"(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중 '마지막 포옹')

▲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앞두고 열린 촛불집회에서 생존자 학생들과 유가족 부모가 포옹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어머니, 아버지 못지않게 혜경이 언니도 힘들었을 것 같다. '언니의 1000일'이라는 시를 보면 그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유인애 : 큰애가 쓴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 1000일이었던 지난 1월 9일 큰애와 나눈 이야기를 시로 옮겼다. 어릴 때는 주변에서 누가 쌍둥이냐고 물어보면 싫어했는데, 지금은 혜경이와 자신이 닮았다고 말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큰애도 진도로 내려온다는 걸 안산에 있으면서 학교 상황을 살펴보라고 했다. 그러다 혜경이가 뭍으로 올라온 날(2014년 4월 18일) 새벽, 큰애에게 전화했다. 그랬더니 첫 마디가 "엄마, (혜경이에게) 잘해줄걸"이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없으면 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생각난 듯 "잘해줄걸"이라며 울었다.

그날 이후 큰애가 혜경이 방에서 공부한다.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혜경이 방에서 공부하면 더 잘 된다"며 혜경이 방을 자주 드나들었다. 엄마에게는 혜경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혜경이 이름만 나와도 엄마가 우니까. 하지만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 큰애에게 "꿈에 혜경이가 나오면 메모할 테니 말해 달라"고 했다. 큰애는 꿈에 혜경이가 나오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오늘이 너와 헤어진 지 1000일 / 난 혼자서 너와 나눴던 대화를 / 하나씩 떠올려보고 있어 / 자기만의 생각을 고집하던 우리 둘 / 그런 게 철없던 아름다움이지 // 잘 있지? /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중 '언니의 1000일')

"긍아, 동전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혜경이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를 쓴 것 아닌가 싶다.

유인애 : 사람은 죽어서도 옆에 같이 있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었다. 그래서 혜경이가 옆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시를 썼다. 혜경이가 보고 싶은 마음을 시로 옮겼지만, 그래도 일반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지인들에게 시집을 선물하면서도 뒷장에 '4월 16일 아이들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혜경이를 잃은 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서서 다닌다.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는다. 혜경이에게 미안해서.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상하행선 열차가 교차하는 순간 '차라리 부딪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 이런 마음을 얘기했더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죽을 용기는 없는 것 같다"며 가지 않았다.(울먹)

아빠는 남자라서 참으며 표현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혜경이가 너무 보고 싶으니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혜경이 방 앞에서 "혜경아!" 하고 소리 내 불렀다.(울먹)

저는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을 해야 답답한 가슴이 조금 가라앉는다. 제가 혜경이 이름을 부르면 마음속에 있던 혜경이가 밖으로 나온 것 같아 생기가 돈다. 하지만 혜경이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혜경이가 마음속에 그대로 갇혀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프레시안 :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버지께서 많이 참는다고 하셨는데, 시집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이중섭 : 인터뷰 하러 오기 전 시집을 또 읽었는데, 혜경이를 다시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맞벌이라 엄마가 주말에 출근하면 제가 아이들을 씻기곤 했는데, 시집을 보면서 아이들 어릴 때가 생각났다. 아이들 엄마에게 참 고마워하고 있다.


엄마가 마음을 잘 표현해줘서 혜경이가 자랑스러운 엄마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혜경이 얼굴만큼이나 예쁜 표지도 마음에 든다. 엄마가, 저에게는 집사람이지만, 가끔 저에게만 마음을 드러낸다. 그래도 절제를 잘하는 편이다.

유인애 : 이름이 혜경인데, 아빠가 "긍아, 긍아" 하고 불렀다. 아이들을 늦게 봐서 아빠가 아이들과 잘 놀아줬다.

이중섭 : 아이들 어릴 때 지금은 합동분향소가 있는 안산 화랑유원지에 인라인스케이트 타러도 가고,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유인애 : 아무리 잘해줬다고 해도 아이가 떠나고 나니까, 못 해준 게 계속 생각난다. 그런 게 저를 많이 괴롭힌다. 요즘 엄마아빠들을 보면, "혜경이에게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많이 든다. 그 말을 하자, 큰애가 "엄마아빠도 우리에게 잘해줬어"라며 위로해줬다.

하루는 아빠가 직장에 데려다주면서 가수 이남이 씨의 노래 <울고 싶어라>를 들려줬다. 예전에는 와 닿지 않았는데, '떠나 보면 알 거야'라는 가사를 듣고 막 울었다.(울먹) 아빠가 왜 우느냐고 그랬는데…. 그래도 뭐든 게 다 연관되기 때문에 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거실에 누워 계신 아빠 곁에서 / 아이 지저분해 하는 말도 없이 / 가만가만 쪽가위로 손질한다 / 그러면서 한마디 말했는데 / "아빠 콧구멍 크다" / "긍아, 동전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 부엌에서 들려주는 엄마 말에 / "그럴지도 몰라" / 비유하며 둘러대도 / 아빠는 좋아서 환하게 씨익-"(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중 '그리운 손길')

▲ 아버지 이중섭 씨가 혜경이의 모습이 담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배도 비행기도 처음, 혜경이는 들떠 있었다

프레시안 : 혜경이는 평소 어떤 아이였는지. 또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유인애 : 혜경이 삼우제를 지내고도 세월호 참사가 이렇게 엄청난 일인 줄 몰랐다. 뉴스도 잘 안 봤다. 어르신들죽은 사람 물건은 치워야 하는 거라고 해서 큰애랑 혜경이 물건을 정리했는데, 큰애가 혜경이가 쓰던 매니큐어는 치우지 말자고 해서 그거 하나 남아 있다.


혜경이 꿈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는데, 뷰티 학원을 한 달 반 정도 다녔다. 지금도 화장품을 호호 불어 가며 정리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메이크업 박스가 새 것이나 다름없어서 혜경이와 같은 꿈을 가진 아이들이 잘 썼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증했다.

아빠는 그래도 혜경이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주고,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게 위로가 좀 된다고 한다.

이중섭 : 학교 성적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루는 혜경이가 "아빠, 나 다 1번만 찍었는데 11개 맞았어"라고 했다.(웃음) 그 정도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했다.

공부는 강요에 의해서 되는 것 아니라는 생각에, 좋은 학창시절이라는 기억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만큼은 혜경이에게 여한이 없다.


프레시안 : 정말 다정한 엄마아빠라는 생각이 든다.

유인애 : 키우면서 야단도 쳤다. 그런데 아빠가 정말 아이들에게 잘해줘서 혜경이가 혼자 있어도 많이 생각할 것 같다.

혜경이가 키도 작고, 많이 약하다. 그래도 잔병치레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수학여행을 앞두고 편도선염이 와서 닷새 정도 입원했다.

이중섭 : 그때 혜경이가 수학여행 못 갈까 봐, 병원에서 다시 입원하라고 할까 봐 엄청 걱정했다.

유인애 : 뷰티학원 등록한 날, 같이 집에 오는데 너무 좋아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해서 좋은 데 취직할 거야"라며 "엄마아빠 여행 보내 줄 게"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철이 일찍 들었나 보다 생각했다.

이중섭 :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다. 먹고살기 바빴다고 해야 하나.

유인애 : 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준비해 놓으려고, 해외여행 같은 걸 안 갔다. 큰애 등록금은 다 마련해놨는데, 혜경이 등록금은 반 정도만 모아 놨다. 그런데 혜경이는 대학 등록금을 써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갔다.

병원에서 재입원 안 해도 된다고 했더니, 수학여행 갈 수 있다며 좋아서 엄청 들떴다. 에이, 그게 그런 길인 줄 모르고.

▲ 세월호가 침몰한 자리에 노란 부표가 떠 있다. ⓒ프레시안

박근혜 가고, 혜경이가 올라왔다

프레시안 : 꼭 1년 전(2016년 8월 11일) 단원고 2학년 2반 교실에서 혜경이 물건을 정리했다. 그때 심경이 어땠는지.

유인애 : 눈물이 진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계속 흘렀다.

이중섭 : 세월호 참사는 단원 고등학교와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다. 하지만 교실을 비우는 문제로, 재학생 부모들과 유가족 간 갈등이 심했다.

혜경이가 학교를 다닌 기간은 비록 1년하고 두 달 정도지만, 혜경이 숨결이 담겨있는 물건을 내 손으로 정리하려고 하니. 정말 많이 울었다. '혜경이가 아직 명예졸업을 못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과 '아이들의 물건을 치우지 않고 버티는 게 우리의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겹쳤다. 지금도 오가는 길에 단원고를 보면, 한도 서리고 애정도 느껴지고 그렇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던 날, 세월호가 육지로 인양됐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이중섭 : 3월 31일이었고, 몹시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목포신항으로 내려가 1박2일을 있었다.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대선후보들이 왔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목포신항을 다섯 번 오갔다. 세월호에서 꺼낸 철근만 몇십 톤이고, 차량도 200여 대가 넘는다. 그리고 선체에서 세 구의 시신이, 침몰 지역에서는 한 구의 시신이 수습됐다.(현재까지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세월호 늘 기억하고 있다"며 "늦었지만 정부를 대표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또 세월호 특조위 2기 구성을 약속했다.

이중섭 : 18대 대선 때 박근혜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등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보수적이었다. 많은 것들이 가려져 있던 때니까.

참사 다음 날(2014년 4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 진도체육관을 찾아왔다. 그런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행보로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박 대통령이 가고 난 뒤, 혜경이 시신이 수습됐다.

세월호 참사 100일 당시(2014년 7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국회의원들과 안산 분향소에서 서울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을 같이 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 문재인 당시 의원이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와 함께 동조단식을 했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고,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문재인 정권 100일이 좀 지났는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에게 어떤 것을 요청하면 부담이 크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또 문 대통령은 전 대통령과 달리, 국민의 아픔을 잘 보듬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 세월호 참사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연합뉴스

"'박근혜 탄핵'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다"

프레시안 : 세월호가 인양됐지만, 진상규명이 제대로 밝혀지기까지 갈 길 멀다. 유가족 입장에서 그래도 이것만큼은 꼭 밝혀졌으면 하는 게 있다면?


이중섭 :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침몰 소식을 왜 국정원에 가장 먼저 보고했을까? 이 점이 가장 궁금하다. 국정원 세월호에 각종 작업을 지시하며 직원들 휴가까지 관여한 이유도 궁금하다. 이 정도면 세월호와 정권 간에 어떤 일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관련 기사 :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진실'은 있다)


2014년 4월 15일 저녁 혜경이에게 '안개가 많이 껴서 집에 다시 갈 수도 있다'는 카카오톡이 왔다. 그래서 전화 통화도 했다. 그러다 밤 9시가 되니, 출항한다고 했다. 사고 당일 인천에서 출항한 배는 세월호뿐이다. 해양경찰청이 세월호의 출항을 허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할 때 단원고는 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당시 교장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유가족 입장에서는 학교에 대한 의구심도 상당하다. 또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선생님 중 배가 침몰하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이라면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단원고에 대한 진상규명도 이뤄졌으면 한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참사 은폐 왜곡 시도는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정말 노골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외면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중섭 : '박근혜 탄핵'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감추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했다고 생각한다. 국가안보실장이 당일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는 사실도 기가 막힌데, 비서실장은 당일 대통령의 행적은 기밀이라며 끝까지 우겼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원한이 참 많다.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구조했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군 통수권자로, 해군과 해경에게 지시를 내려 국민을 구하라고 했어야 할 것 아닌가. 수습된 시신 중 손가락이 휘어지고 손톱이 빠진 경우가 있다. 배에 물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살려 달라'고 얼마나 몸부림쳤으면…. 서로 불행이다. 어떻게 저런 지도자를 만났을까.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탄핵'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다고" 봤는데, 국민들도 정권 교체의 가장 큰 이유로 세월호 참사를 꼽는다. 또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대한민국은 달라졌다고 한다.


유인애 : 지난 겨울 고향 아줌마가 친정어머니에게 "혜경이 엄마, 어디 갔느냐?"고 해서 "촛불집회 갔다"고 했더니, "빨갱이들 있는 거기에다가 폭탄 하나 떨어뜨리면 좋겠다"고. 창피하지만, 주변에서도 그런 쪽(종북좌파)으로 몰아간다.


이중섭 : 아직도 구 새누리당 말만 믿는 사람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싫다'며 새로운 정보를 접하지 않고, 가짜뉴스만 본다.

한 번은 처가에 갔더니, 동네 어르신이 세월호에 대해서 물으셨다. 그래서 당사자인 우리가 차근차근 설명하며 "그동안 박근혜 정권이 감추고 그래서 탄핵도 일어난 것"이라고 했더니, "이제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봅슬레이 행사를 했는데, 서명을 받기 위해 피켓을 들고 있는데 한 젊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책임을 물어야죠? 왜 문 대통령에게는 책임을 안 물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얼른 가세요"라고 하며 보냈다. 반면, 아이들과 행사장을 찾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세월호 참사, 알지?"라고 말하며 자발적으로 서명다. 99%는 같은 마음이지만, 1%는 생각이 다른 경우도 있다.


"혜경이를 쓰고 또 쓸 것이다"


▲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유인해 지음, 굿플러스북 펴냄) ⓒ굿플러스북
프레시안 : 시집 저자 소개에 "혜경이를 쓰고 또 쓰다. 그리고 또 쓸 것이다"라고 했는데, 앞으로 계획은?

유인애 : 한 줄을 쓰더라도 혜경이에 대한 생각으로 매일 매일 쓴다.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지금 내 심정이 이렇다 하면, 그걸 그냥 쓴다. 문학적인 것은 아니고 내 마음을 그냥 쓰고 있다. 시를 쓸 당시 감정을 나중에는 기억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시구 하나하나에 보충 설명을 붙여 놨다. 서툰 글이라도 자신이 겪은 일을 써야 그 마음 그대로 표현된다.

프레시안 :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

유인애 : 시집이 나오자, 후회와 두려움이 앞섰다. 동생도 그렇고 주변 작가들도 '혜경이가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고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혜경이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아침을 안 먹는다. 혜경이를 생각해서. 그리고 점심을 먹으면서는 늘 "혜경아, 같이 밥 먹자"라고 한다. 시집이 나왔어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이중섭 : 세월호 참사가 어느 국회의원의 말처럼 단순 교통사고는 아니지 않나. 이 일을 계기로 '국가란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곳이다. 세금이란 사람을 구조하는 데 쓰는 것이다'라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시집이 나오긴 했지만, 혜경이가 상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혜경이와 함께한 가족의 이야기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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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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