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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SSM 진출 재개…"휴지 하나 놓고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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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SSM 진출 재개…"휴지 하나 놓고 개장"

상인들 "사업조정 신청 절차에 헛점 많아"

지역 상인들의 잇따른 사업조정 신청으로 제동이 걸렸던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이 다시 재개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사업조정 신청대상을 제한하며 대형 유통업체를 감싸고 있고 대기업들은 그 틈을 타 교묘하게 점포를 늘리는 중이다. 지역 상인들은 사업조정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며 연대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롯데마트는 11일 서울 목동에 롯데슈퍼 149호점을 개장했다. 또 지난달 개장을 보류하겠다고 밝힌 상계7동점 등 3개 점포를 모두 연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역시 대방동 등 4곳 이상의 지역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열었다.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이마트 에브리데이 역시 지난달 28일 미아점을 개장하고 현재 쌍문동에도 입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처음부터 정해진 사업계획에 따라 입점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SSM 37곳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이 접수된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다시 입점을 밀어붙이자 상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연합회 소속 매장 2만5000여 곳에서 롯데그룹 계열사가 생산하는 제품은 납품을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역 상인들이 기대하고 있는 사업조정 신청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5일 중소기업청이 SSM 사업조정 권한을 시·도지사에 위임하면서 이관 과정에 공백이 생겨 오히려 대기업들이 입점을 서두르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청이 이미 입점한 SSM은 사업조정 신청이 아니라며 대상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일부 시·도 지자체는 사업조정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등 SSM을 둘러싼 대립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 13일 울산 남구 SSM 입점 공사 현장에서 울산슈퍼마켓연합회와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회원들이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이미 연 SSM은 사업조정 대상 아니다"…"친 기업적 유권해석"

13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 모인 전국의 지역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당국과 대형 유통기업을 성토했다. SSM에 대한 사업조정을 신청했거나 준비 중인 지역들끼리 연대해 공동대응을 구축하기 위한 '전국연석회의 준비모임'을 선언하는 자리에서였다.

기조 발언에 나선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선언하고 나서 상인들의 기대가 컸는데 지금은 단지 대기업을 위한 비즈니스 프렌들리임이 드러났다"며 "SSM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떠넘기기 바쁘다"고 비판했다.

신규철 대형마트규제 인천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사업조정 제도의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중소기업청이 이미 개점한 SSM은 사업조정 신청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레미콘이나 맞춤양복 등 다른 분야의 사업조정을 보면 이미 영업이 이루어진 후에도 조정이 이뤄진 예가 많다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법률 자문 결과 사업조정에 관한 법률(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률 제32조)과 시행규칙에도 '현저하게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라는 조항이 있어 이미 진출한 사업에도 사업조정 신청이 가능하다"며 "중기청의 발언은 친 대기업 성향을 드러내는 자의적인 유권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청 기업협력과의 양희봉 서기관은 "해당 조항은 신규 진출할 사업이 미칠 나쁜 영향이 '확정적'일 때를 의미하고 '미칠 우려'라는 부분은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며 "이미 진출한 SSM은 사업조정 신청대상이 아니며 해당 법의 취지 자체가 사업 확장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적용되는 법"이라고 반박했다.

양 서기관은 또 "레미콘이나 맞춤양복에 대한 사업조정 사례는 기업의 사업 확장 자체를 사업조정 신청대상으로 삼은 사례"라며 "개별 SSM 점포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처리기간 90일은 너무 짧아 상인들에게 불리"

▲ 신규철 대형마트 규제 인천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사업조정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프레시안
사업조정 처리기간을 90일로 못박은 것도 도마에 올랐다. 사업조정에 관한 법률이나 시행규칙 어디에도 '90일'이라는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처리기간을 90일로 정한 것은 각 시·도지사가 중기청장의 승인을 받아 운영하는 세부지침에 따른 것인데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신 위원장은 "사업조정 절차에서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약한 소상인들은 협상력을 갖추기 위해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SSM 입점에 따른 피해액을 산출하는데 기준 마련에만 6개월이 걸릴 것이며 협상 기간까지는 최소 1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조업 부문의 사업조정의 경우 평균 1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신 위원장은 "중기청은 90일이라는 기간을 못박은 것도 모자라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민단체의 참여까지 막으려고 하고 있다"며 "대기업에 비해 주장을 개진하기 어려운 소상인들이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지 하나 놓고 개장…꼼수 남발"

전국에서 사업조정을 신청한 지역상인 대표들도 저마다 절박한 심정을 호소했다. 사업조정 권한이 시·도로 위임되면서 시행상의 공백기를 이용해 SSM 출점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식 부산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장은 "거주 인구에 비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 부산"이라며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기청에서 부산시로 사업조정 권한이 이관되는 과정에서 공백기를 노리고 개점을 강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부산에서 사업조정 신청을 한 6곳 중 감천을 제외한 5곳에서 지자체가 이런저런 이유로 신청 접수를 미루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상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아니면 취업도 장사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을 정부가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규철 위원장도 "기존에 입점한 점포에 대한 중기청의 유권해석이 나오자마자 간판도 달지 않은 SSM이 개장하는가 하면 서울 모 지점에서는 화장지 한 상품만 진열해놓고 파는 등 '꼼수'가 남발하고 있다"며 "중기청과 시·도 지자체의 사업조정 권한 이관 과정에서 손발이 맞지 않아 조정 신청이 지연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라고 거들었다.

김용재 광주중소상인살리기 집행위원장은 "지역 사회에 대형마트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기업들이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우리 소상인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광주지역 유통업 매출의 60%를 대기업이 가져가고 있다"며 "현재 사업조정을 신청한 롯데슈퍼 주변에도 SSM 3개가 들어서려 하고 롯데는 의류 복합상가 입점까지 계획하고 있어 장래엔 대기업들이 매출의 80%를 잠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SSM 등록제에 대해서도 "부족한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이정식 협회장은 "등록제로 되면 대기업들이 가맹점 방식으로 지역상인들을 끌어당겨 SSM이 마치 편의점처럼 퍼져 나갈 것"이라며 "영세상인들은 가맹점에 가입할 만한 여유가 없어 고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가제로 전환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24일 국회에서 각 지역 상인 연합회와 시민단체, 법률 자문단이 모여 만든 'SSM 사업조정신청지역 전국연석회의' 출범을 선언하고 전국적 공동대응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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