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내무부 소속 소방국이 탄생한 후 42년만에 독립 기관으로 태어난 소방청이 첫 수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소방관 처우 개선 등 숱한 과제를 안고 있는 소방청장 인사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이유가 '외부인사' 임명을 원천봉쇄한 새로운 정부조직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독립 기관 소방청 출범의 첫단추를 잘못 꿴 탓이라는 것이다.
4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당초 소방청장 후보군에 권순경 서울소방재난본부장, 조종묵 소방청 차장, 조성완 전 소방방재청 차장 등을 포함시켜 논의했다고 한다. 그중 2014년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경질된 조성완 전 차장이 새로운 정부조직법에 따라 소방청장 후보군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달 25일 개정된 정부조직법 34조 7항에 따르면 소방청장 및 차장은 "소방공무원으로 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직 소방공무원만이 청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셈이다. 소방총감·소방정감만 청장과 차장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조 전 차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의 소방청 축소 방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던 인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조 전 차장은 세월호 참사와 큰 관련이 없는 소방방재청 해체를 추진한 청와대 등과 마찰을 빚었다. 그는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소방조직 독립과 국가직 전환의 '소신'을 밝혔다.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됐다. 조 전 차장은 당시 청와대로부터 '옷을 벗으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조 전 차장은 10월 29일 돌연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국가직 전환을 바라는 소방 조직 내부를 단속하지 못한 이유'로 사실상 경질을 당한 것으로 해석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슬퍼렇게 버티고 있던 청와대 앞에서 소신을 밝혔던 대가는 컸다. 조 전 차장은 이후 문재인 캠프에 합류, 소방직 공무원 처우 개선 등 소방·안전 공약 등을 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차장이 사실상 배제된 상황과 관련해 한 소방공무원은 "조 전 차장은 소방 공무원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박근혜 정부에 의해 경질된 인사여서 소방청장으로 오는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정확한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일선 소방관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일각에서는 소방청장 임명이 미뤄지고 있는 이유를 조 전 청장 임명이 불가능해진 상황과 연관짓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승승장구했던 '소방 관료'들이 정부조직법을 뒤틀어 놓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2004년 노무현 정부 하에서 소방방재청이 출범하면서 외부 인사들에게도 열어둔 소방 수장 자리를, 갑자기 문재인 정부에서 '내부 승진'만 가능하도록 바꾼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정부조직법에서라면 소방청에서는 전직 소방청 출신이 임명될 수 없게 된다. 피우진 보훈처장이나 송영무 국방부장관, 노태강 문체부 차관 같은 인사들처럼 '개혁 인사'를 사실상 '수혈'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정부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상황이지만, 현재 개정된 정부조직법 하에서도 조 전 차장을 임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퇴직 당시 계급인 소방정감 경력으로 신규 채용한 후 소방총감으로 승진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마저 여의치 않다. 소방공무원임용령 시행규칙에 소방령 이상 경력 채용 응시 연령을 '20세 이상 45세 이하'로 한 부분이 발목을 잡는다. 조 전 차장은 53세다.
정부조직법 재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한만큼 시행 규칙을 개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시된다.
소방청 내부 상황에 밝은 한 인사는 "왜 이런 정부조직법이 탄생했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정권 눈치를 보며 승승장구했던 '특정 라인'의 인사들이 결국 기술고시 출신의 '비주류 소방청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소방 '적폐' 개혁은 여전히 요원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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