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오세훈 시장! 만들고 꾸민다고 모두 '광장'은 아니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오세훈 시장! 만들고 꾸민다고 모두 '광장'은 아니요"

[가상 대담] '광장 전문가'가 본 광장의 정체성…광화문광장?

지난 1일 개장한 광화문광장이 뜨겁다. 개방 첫 주말 약 39만 명의 시민들이 다녀갔다. 오세훈 시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조경 사업 이후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광화문광장을 바라보는 시민사회도 '뜨겁다.'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를 놓고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3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사회단체 회원 10명이 연행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광장의 설계를 놓고도 논란이 거세다. 광화문광장이 양쪽으로 5차선 도로에 둘러싸여 있어 위험성 논란이 일고 있는 데다, 광장을 가득 채운 조형물은 광장 자체를 협소하게 만들어 정작 '광장(廣場)'이라는 본래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것.

▲ 지난 1일 개장한 광화문광장 전경. ⓒ프레시안

이렇게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광장의 정체성을 심도 깊게 연구한 책이 나와 주목된다. 유럽위원회 주도로 세계의 광장 전문가들이 참여해 펴낸 책, <광장>(프랑코 만쿠조 외 지음, 장택수 외 옮김, 전진영 감수, 생각의나무 펴냄)이 그것. 이 책은 서구에 비해 '광장 문화'가 사실상 부재한 한국에서 '광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이 책에 나온 '광장'의 다양한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광화문광장을 평가해보면, 광화문광장은 '광장'이 아니다. '광장의 본고장' 유럽 학자들이 생각하는 광장의 정체성과 의미를 책의 저자와 유럽인의 가상 대담 형식으로 소개한다.

"광장, 대중의 기억이 집합되는 장소"

프랑코 만쿠조 :
프랑스, 독일, 벨기에, 영국, 러시아 등, 유럽 각지의 시민들이 '광장'에 대한 대담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마침 한국에서도 최근 광장 하나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시작해보자. 여러분에게 광장은 어떤 의미인가?

▲<광장>(프랑코 만쿠조 외 지음, 장택수 외 옮김, 전진영 감수, 생각의나무 펴냄). ⓒ프레시안
피에르(프랑스) :
그 어떤 공간보다 도시의 역사성이 묻어나오는 장소가 아닐까.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콩코르드 광장은 명실상부 프랑스 혁명의 고향이다. 재밌는 것은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이 광장이 사실상 루이 15세의 광장이나 다름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역사적으로 권력이 건설한 광장이 권력의 용도에 끝까지 충실했던 경우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광장에서 처형됐고, 전제 군주제도 그 때 함께 막을 내렸다.

마인호프(독일) : 독일 베를린의 베벨 광장 역시 역사의 상흔이 서려있다. 1933년 5월 10일, 나치 돌격대가 사회주의·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책을 이곳에서 불태웠다. 독일 판 '분서갱유'인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상흔을 어떻게 시민사회의 집합적 성찰로 극복하느냐에 있다. 현재 베벨 광장은 독일에서 민주적인 토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광장에는 149명의 유태인과 사회주의·자유주의 계열의 학자들의 책을 금지했던 당시의 공포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설치돼 있다. 2006년에는 자유발언대 행사가 열려, 전 세계에서 과학자, 의사, 사회운동가, 문화 인사들이 모여 대중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프랑코 만쿠조 : 말씀하신 대로 광장은 유럽에서 단지 '빈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 희로애락이 점철된 공동체의 자산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스 문명도 '아고라'에서 시작됐고, 로마 제국을 이룬 것도 역시 포로로마노의 도시 광장이었다.

마인호프(독일) : 아, '아고라' 얘기하니까 생각났는데…. 작년 한국의 촛불 집회 때 많은 얘기가 오고 갔던 인터넷 토론방 이름도 '아고라'라고 들었다. 요새 정부 압력이 심해져 네티즌이 줄줄이 '망명'한다고 한다. 경찰 사이버 수사대도 이 사이트를 집중 감시한다고….

크루즈(벨기에) : 현대판 '빅 브라더'인가? 어쨌든 '인터넷 광장'도 그런데 '오프라인 광장'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광장이란 충돌과 화해가 교차되는 곳"

프랑코 만쿠조 : 인터넷 얘기는 그만하고, 그러면 이쯤에서 요즘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 문제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여러분들 나라에서는 어떠한가? 광장이 집회 용도로 많이 사용되는가?

포터(영국) :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은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등 반전·평화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의 메카로 불린다. 지난해 4월 G20 정상회담 반대 집회도 트라팔가 광장을 비롯한 런던 시내에서 열렸다. 아시다시피 유럽 시위대는 과격하기로 유명한데, 시위대의 일부 폭력 행사가 있더라도 한국처럼 광장 전체가 폐쇄된 적은 없다.

피에르(프랑스) : 광장은 기본적으로 소통의 공간이다. 프랑스에서는 광장이나 거리마다 정치색이 다른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샹젤리제는 대체로 우파의 거리로 인식되고, 이 때문에 좌파는 바스티유 광장에서 나시옹 광장 쪽으로 행진하며 시위하는 게 관례다.

▲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차벽으로 둘러싸인 서울광장. 서울시는 서울광장 안에서의 시민 추모제를 불허했다. ⓒ뉴시스


마인호프(독일) : 한국의 서울광장은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의 단체들의 행사는 불허해서 논란이 인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피에르(프랑스) : 시민사회에서 광장의 역할은 다양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5월 한국의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 서울광장의 사진을 보니 '사람' 대신 '경찰 버스'로 가득한 듯 보였다.

스탄케비치(러시아) : "광장의 중심은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한 때는,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지구촌 어디선가는 광장이 사람 위에 군림하기도 한다. 러시아에선 광장이 통제와 공포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시절도 있었다. 구소비에트 시절의 러시아 붉은 광장이 대표적이다. 이 때 광장은 중국의 천안문 광장처럼 체제 과시를 위한 상징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프랑코 만쿠조 : 광장은 역사적으로 시민들이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하는 공론장이자, 민주주의의 실험장으로 기능해 왔다. 프랑스의 바스티유 광장, 스페인의 카탈루냐 광장 등 많은 유럽의 광장들은 권력층의 부당한 통치에 대항하는 대중들의 흔적이 서려있는 곳이다.

광장은 아무것도 없는 무형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시민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아주 특별한 장소다.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계층과 권력의 서열화에 대한 '예방적 본보기'가 된다. 가장 좋은 광장이란 바로 충돌과 화해가 교차하는 곳이다.

"만들고, 꾸민다고 해서 모두 광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코 만쿠조 :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광장의 매력이 오랫동안 계승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마인호프(독일) : 광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비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광장은 물리적 공간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갖기보다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규정되기 마련이다. 광장은 시민들이 교류하는 장터이자 문화이고, 예술과 의식인 동시에 '사람들' 그 자체다.

크루즈(벨기에) : 벨기에 나무르시에 있는 담 광장은 언뜻 보면 광활한 공터처럼 보인다. 그러나 벨기에인들은 인위적으로 만든 장식이나 조형물보다는 누구나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너른 광장을 선호한다.

▲ 벨기에 나무르에 위치한 담 광장의 탁 트인 조경. ⓒcatmoon.egloos.com

담 광장은 원래 16-17세기에 공동주택이 세워지면서 형성되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나무르가 폭격을 당한 이후로 한 동안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1986년이 되어서야 나무르의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었는데, 이 때 주차 공간은 모두 광장의 지하주차장으로 변경되었다.

지금 광장은 지하주차장 때문에 바닥면이 약간 올라가 있다. 이 공간에 누구나 앉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브라질 이페 목재가 사용되었다. 새롭게 태어난 광장은 이제 활력이 넘친다. 지금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축제가 이뤄지는 행사와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포터(영국) : 영국의 광장 역시 1년 내내 시민들의 자발적인 축제가 끊이지 않는 문화 공간이다. '광장 문화'는 관 주도의 대규모 광장을 인위적으로 조성해 문화를 '파급'하는 것으로 절대 형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현실의 삶을 교류하고,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자발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일궈낼 때, 넓은 공터는 비로소 '광장'이 되는 법이다.

▲ 영국 트라팔가 광장은 시민들의 자발적 축제와 문화 행사로 가득한 난장의 공간이다. ⓒ신화사=뉴시스

스탄케비치(러시아) : 그런 면에서 한국의 광화문광장을 보면 공간 자체가 조금 협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 조형물이 너무 많아 방문객의 동선 자체가 마치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처럼 한정되어 버린다.

피에르(프랑스) : 광장이 너른 공간이 아니라 볼거리로만 가득 찬 공간으로 한정될 때, 시민은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볼거리를 구경하는 객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프랑코 만쿠조 : 동의한다. 광장의 생명력은 시민 공동체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있다. 그것이 결여된 채 일단 만들어놓고 꾸민다고 해서 모두 광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오늘 대담은 여기서 마치기로 하자. 긴 시간 수고 많으셨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