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저녁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대기업 대표들의 간담회는 특별한 결론을 내기보다 서로의 의견과 입장을 교환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허심탄회한 만남"이라며 간담회 주제와 형식을 두지 않고 재계의 의견을 듣겠다고 마련한 자리인 만큼, 재계는 이날 간담회에서 단골 청원 사항인 규제 완화 요청부터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인한 어려움 등을 토로했다.
재계는 문 대통령의 관심 사안인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중소기업과의 상생 분야에선 전향적인 계획을 밝히며 호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최근 화두가 된 초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법인세 증세 등 민감한 현안에는 양측이 서로 말을 아꼈다. 호프 미팅으로 분위기를 돋운 후 이어진 만찬을 겸한 간담회 자리여서 심도 깊은 이야기는 나오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사드 보복부터 신고리 5·6호기 문제까지 언급
먼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골목상권과 상생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신세계가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손경식 CJ 회장도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정부에서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달라"고 제안했다.
구본준 LG 부회장은 "LCD 국산장비 개발을 위한 중소 장비업체와 재료업체 등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파주 공장에 대한 과감한 지원으로 큰 도움이 됐고, 이는 결국 일자리 창출과 지역 발전으로 이어졌다"면서 "앞으로 해외 진출 시 중소 장비업체와 공동 진출해 상생 협력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구 부회장은 또 "LG 디스플레이에서 1000억 원의 상생펀드를 조성했고, 이 중 50%는 2차, 3차 협력업체를 직접 지원할 예정"이라며 "LG와 1차 협력업체의 계약 시 1차 협력업체와 2·3차 협력업체의 공정거래를 담보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사드 영향으로 중국에서 매출이 줄면서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협력업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수소연료차를 적극 개발할 것이고 이를 위해 국내외 스타트업과의 상생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되는 규제의 완화를 건의한다"고 했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만약 신고리 5·6호기를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주기기를 공급하는 두산중공업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질 것이 우려되지만 해외에의 사업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금춘수 한화 부회장은 "태양광 사업 진천·음성 클러스터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상시업무 종사자 8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입지 규제 완화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비율의 상향 조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소재 에너지 분야를 바탕으로 융합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며, 2차전지 음극재 등 사업을 통해 신규 일자리 창출에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중소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30년 이상 유지하면서 서로 성장해 왔다"며 "앞으로도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기업 측의 건의와 제안들에 문 대통령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앞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만큼, 그에 입각해 재계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서로 묻고 답하는 자유로운 대화를 이어갔다면서 문 대통령은 기업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기업이 처한 현실이 어떤지 자세히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재계의 규제 완화 건의에 대해 문 대통령은 "나도 공약한 게 있다"고 공감을 표하면서도 "그렇더라도 꼭 필요한 규제도 잘 구분해서 해야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약속하며 "규제는 암덩어리, 원수"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썼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다만 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추진이나 국회에 계류 중인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대기업 특혜 우려에도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기업들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전보다 상황이 풀린 것은 없는지 일일이 자세하게 물었다고 전했다.
文대통령 "착한 기업 이미지가 '갓뚜기' 만들어"
공식 간담회에 앞서 상춘재 앞뜰에서 20여분 간 열린 호프 타임에서도 문 대통령은 참석 기업인들에게 일일이 기업의 사업 근황을 물으며 인사를 나눴다.
특히 이날 간담회 참석자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함영준 오뚜기 회장에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라고 부른다"면서 "고용, 경영 승계, 사회적 공헌 등에서 착한 기업 이미지가 갓뚜기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업이 된 것 같다. 기업도 국민 성원이 가장 큰 힘이니까 앞으로 잘 발전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호프 미팅을 마무리하며 건배사로 "기업이 잘 돼야 나라 경제가 잘 된다. 국민경제를 위하여, 더불어 잘 사는 경제를 위하여"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CJ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참석했다.
정부에선 김동연 경제부총리,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반장식 일자리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문 대통령은 28일 오후 7개 기업 대표들과 만나 이틀째 간담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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