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노동제(5-day workweek)와 주40시간 노동제(40-hour work week)는 같은 말 같지만, 같은 말이 아니다. 하루 8시간 주 5일을 일하면 40시간과 같다는 건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 주당 노동시간 기준이 40시간으로 바뀐 게 노무현 정권 때이니 10년도 훨씬 넘었다. 그런데 주40시간제는 사라지고 '주5일제'로 말이 바뀌면서 요술처럼 실질 노동시간이 늘어나 버렸다.
노동시간과 관련하여 1주일이 며칠이냐는 물음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여전히 닷새(5일)다. 한 주가 이레(7일)라는 상식은 근로기준법에선 무력화된다. 근로기준법의 주40시간 조항이 적용되는 날 수가 닷새에 불과하며 나머지 이틀(2일) 동안 이뤄지는 노동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제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40시간에 당사자 동의하에 주12시간의 연장근로(extended work)를 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일개 관료가 관리하는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의 40+12시간 공식은 주5일에만 적용될 뿐, 나머지 이틀(2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쥐뿔같은 양심은 있었는지, 근로기준법 노동시간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이틀에 대해서는 하루 8시간씩, 모두 16시간만 일을 시킬 수 있다며 선심을 쓴다. 그래서 고용노동부 행정 해석을 통해 발효되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40+12+16=68시간도 합법적인 주당 노동시간이 된다.
이 해석도 곰곰이 따져보면 자가당착이다. 주40시간 법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이틀에 대해 하루8시간 법 조항을 적용하는 이유는 뭔가. 행정 해석이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려면, 주5일이 지난 이틀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조항이 적용되지 않으니 이틀 중 첫날 24시간, 다음날 24시간을 합쳐 최대 48시간이 가능해야 한다. 주 최대 40+12+24+24=100시간이 합법이어야 하는 셈이다.
법 해석의 일관성을 더 밀어붙이자면, 노동시간 조항만이 아니라 노동자 보호와 관련된 다른 조항들도 '주5일'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해석을 확장한다면, 노동시간 조항만이 아니라 다른 조항들도 '주5일'에만 적용되고, 나머지 이틀에 대해서는 적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실 2천만 노동자 중에 절반 가까이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합법적으로 제외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논의 자체도 사치스럽다.
하루(1일) 8시간, 이레(7일) 40시간이라는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깔아뭉갠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 해석이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헬조선'을 만들어낸 원인이다. 이런 이유로 주5일제를 도입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장시간 노동 현실은 바뀔 수 없었다.
7월 17일 제헌절을 국정 공휴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5일제 도입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드니, 자본가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보상해야 한다며 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식목일과 제헌절을 '빨간 날'에서 날려버렸다. 그 결과, 법적 규제를 받는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노동시간이 늘어났다.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미명 하에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역설적으로 근로기준법 노동시간 규제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 노동시간은 증가했다. 52주×8시간×2일=832시간에 더해 식목일과 제헌절을 합쳐 모두 16시간, 최소 연간 총 848시간. 이를 표준 노동시간 8시간으로 나누면, 365일 중 106일에 대해 법적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존재했다는 이 기상천외한 행정 해석 때문에 주5일이라는 미명 하에 주40시간 노동제가 무력화됐다는 사실을 도입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알고 있었을까.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요. 알고 침묵했다면 사악한 것이다. 이 비판은 당시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무능하고 무식했던 필자 자신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버스 기사가 인명 살상 사고를 내면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업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돼지농장의 지하 똥오줌 저장소를 청소하러 들어갔다 죽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법 집행(law enforcement)은 고사하고 2천만 노동자 중에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합법적으로 제외되는 노동자 수는 가늠조차 어렵다.
1970년 11월 전태일이 불타 들어가며 지키라고 부르짖었던 근로기준법에는 하루 8시간 노동과 주 48시간 노동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나 역사상 가장 '친노동'이라 자부했던 대통령의 집권기에 주5일제라는 미명 하에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기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노무현 정권 이후 10년이 지나 또 다른 '친노동' 정권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은 주5일제 도입 당시 청와대 고위직이었다.
이제 '주5일제' 사기극을 끝낼 때가 되었다. '주5일제'를 폐지하고 '주40시간제'를 도입하고, 1주는 이레(7일)라는 상식을 복원해야 한다.
극우 박근혜 정권에 복무하며 노동운동 탄압과 노동자 착취에 복무했던 이기권 장관이 새 노동부 장관 임명 전에 결자해지의 자세로 "1주는 닷새"라는 웃기는 행정 해석을 무효화 하길 기대하는 건 정녕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와 같은 것일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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