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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또 징계…학교 비리 폭로 교사의 '잔인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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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징계 또 징계…학교 비리 폭로 교사의 '잔인한 여름'

[인터뷰] '파면 무효' 처분 받았지만 다시 징계 된 양천고 김형태 교사

"입시로 바쁜 고3이지만, 집회에 나올 시간 정도는 있어요. 선생님은 학교 비리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해직되셨는데…."

양천고등학교 김형태 교사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5일 오후, 양천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19) 학생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서울 양천구 양천고등학교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시민·사회단체, 양천고 재학생·졸업생 60여 명이 모여 김 교사의 재징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형태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던 양천고등학교 상록재단의 비리를 세상에 알렸다는 이유로 지난 3월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 사유는 김 교사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켜" 국가공무원법 중 비밀 엄수의 의무, 직무 태만, 성실의 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것. (☞관련 기사: "시대가 바뀌었다" 사학들 환호…교사들 줄줄이 해직)

▲ 학교법인 상록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양천고등학교. 상록재단은 재단 비리를 고발한 김형태 교사를 지난 3월 파면에 논란을 빚었다. ⓒ프레시안

그러나 지난 6월 8일 교육과학기술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김 교사에 대한 '징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징계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것. 양천고 상록재단은 김형태 교사를 파면하면서 인사위원회를 거치지 않았고, 징계위원장이었던 이모 씨를 상대로 김 교사가 제출한 기피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징계 취소 처분을 받은 김 교사는 가까스로 6월 25일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복직 5일 만에 양천고 상록재단은 김 교사에게 '직위 해제'를 명령했다. 곧이어 학교 측의 징계위원회가 재개됐다.

"복직 5일 만에 다시 나가라니…"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징계위원회에서 소명을 마친 김형태 교사가 학교 밖으로 나오자, 김 교사를 응원하며 집회를 진행하던 전교조 조합원, 학생, 시민단체 회원들의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를 만나 사학 재단의 문제점과 파면 조치 이후의 소회를 물었다.

ⓒ프레시안
"파면 이후 줄곧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어요. 얼마 전 팔의 신경 수술을 받아서 몸도 많이 아팠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들러 따뜻한 커피도 주고, 힘내라고 응원도 해주고…. 학교와 아이들이 나에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 줄 그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징계 취소 결정이 났을 때,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너무 행복했는데…"


지난 3월 9일 양천고의 파면 결정 이후, 김 교사의 복직을 위한 학생, 학부모, 지역 주민의 성원은 뜨거웠다. 약 3개월 동안 학생, 학부모의 탄원서와 서명이 끊이지 않았다. 150여 명에 이르는 자필 탄원서 외에도 종이 서명 2000명, 전자 서명 1000명 등 김 교사의 복직을 위한 지지가 잇따랐다. 파면되던 날 동료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김 교사의 '고별 동영상'도 화제가 돼 누리꾼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양천고 측은 파면 직후 학교 정문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김 교사에 대해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김 교사가 학생을 선동해 학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법원은 이를 기각해 김 교사는 계속 1인 시위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법정 분쟁으로까지 번진 상황을 보면서 학생과 교사들이 받은 상처는 컸다.

"아내는 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재단과의 싸움을) 다 그만두고 꽃집이라도 차리자고 하더군요. 내가 꽃을 좋아하니까, 이제 편하게 지내자고…. 그러나 교사로서의 마지막 양심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올바른 편에 선 사람이 오히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다면, 그 부당한 조치가 권력에 의해 끝내 시정되지 않는 것을 보고 자란다면,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의 불의에) 침묵하거나 방관하게 될까봐…. 정의는 끝내 이긴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교사로서의 마지막 양심입니다."

6월 8일 교원소청심사위의 징계 취소 결정 이후, '김형태 선생님 부당 파면 철회 공동대책위원회'는 9일 양천고 앞에서 '징계 취소 축하 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학교 측은 '이미 기간제 교사가 대신 맡고 있다'며 김 교사에게 수업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복직 5일 만인 30일, 학교는 김 교사에게 재징계를 위한 직위 해제를 통보했다. 소청심사위의 징계 취소 결정이 '절차상 하자'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절차를 다시 갖춰서 다시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것. 그러나 김 교사의 징계위원 기피 신청은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립학교는 치외법권인가"

지난해부터 있었던 일제고사 논란을 계기로, 사학재단에서 해직 교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해당 교사는 이런 중징계 조치의 근본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다. 사학재단이 눈 밖에 난 교사를 내쫒고자, 서울시교육청이 공립 교사를 해직할 때 내세운 '일제고사 반대', '복종·성실의 의무 위반' 등을 징계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립학교는 사실상 '치외법권'에 놓여 있습니다. 사립학교법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민주적인 학교운영위원회와 인사위원회가 없다면, 재단에 대한 견제 기구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 결국 학교는 장삿속으로 운영되고,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가 고스란히 돌려받게 됩니다. 재단에서는 일제고사를 핑계 삼아 그동안 민주적 학교 운영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소위 '미운털 박힌 교사'를 해임하고 있습니다"

▲ 6일 양천고등학교의 재징계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양천고 졸업생들. ⓒ프레시안
학교 내에서 전교조 분회장을 맡아왔던 김 교사는 민주적 학운위와 인사위를 요구하고, 재단 비리의 문제점 역시 꾸준히 제기해 왔다.

김 교사가 밝힌 양천고 상록재단의 비리는 △교비로 운영해야 하는 독서실 운영비를 학생들에게 월 3만 원씩 걷는 등, 불법 운영했다는 점 △재단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특정 업체가 수의 계약으로 양천고의 위탁 급식을 맡아 폭리를 취해왔다는 점 (특히 2005년에는 급식실 사용료 1194만 원을 학교에 납부하지 않은 점) △체육복을 학교 내에서 판매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직접 체육복을 비싼 가격에 팔아 폭리를 취한 점 △양천고에 동창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001~2006년 졸업예정자에게 1인당 8000원씩 3383만 원을 동창회비로 걷은 점 △학교 예결산을 공개하지 않고,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위조한 점 등이 있었다.

속속 밝혀진 양천고의 '백화점식 비리' 의혹으로,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해 감사에서 교장·교감 등에 대한 징계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징계는 경징계에 그쳤고, 정작 문제의 당사자인 이사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단은 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 교사에 대해 지난 3월, '파면'이라는 강경 조치로 맞대응했다. 김 교사의 파면이 '보복성 징계'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김 교사에 이어 지난 3월 파면된 영광중학교 황철훈 교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황 교사는 교사가 직접 선출하는 인사위원으로 구성된 '민주적 인사위'와 교감·부장교사 등 보직에 대한 직선제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황 교사는 "재단에서는 파면 사유로 일제고사를 문제 삼았지만, 민주적 인사위 투쟁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징계 무효 처분을 받고 이날 다시 출근을 시작한 황 교사는 "오늘 교장이 다시 징계위를 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교과부의 묵인과 방조가 없다면, 결코 사학재단들의 이런 만행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진실을 가르치려 했을 뿐인데…아이들에게 미안할 뿐"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징계 무효 결정을 내린 것은, 제가 제출했던 징계위원 기피 신청서가 수용되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징계위원 5명 모두가 하나같이 재단 쪽 인사들로 저에게 불리한데, 기피 신청은 이번에도 거절당했습니다. 보다 정확한 소명을 위해 징계 혐의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건만, 이것도 거절됐어요. 이번에도 또다시 '절차적 하자'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날 열린 징계위원회에서는 총 9가지 항목을 들어 김형태 교사에 대한 실책 여부를 조사했다. 항목 가운데는 '전교조 본부에서 제작한 버튼 및 촛불 집회 홍보물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학교장 허락없이 본인의 시집으로 수업을 했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파면 당시 징계 사유였던 '(김 교사가) 자신의 시집을 학생에게 강매했다'는 항목은 학생들의 증언으로 없던 일로 판명돼 '학교장 허락 없이 본인의 시집으로 수업'한 것만이 문제가 됐다. 문제가 된 시집은 10년 전 김 교사가 자신의 학급에서 백혈병에 걸린 학생을 돕기 위해 출판한 것으로, 인세 전액이 학생을 돕는 데 쓰였던 책이다. 김 교사는 이 시집을 특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문예창작반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데 사용했으며, 무료로 학생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힘들었던 건… 파면 이전에는 내가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는데, 이제 도움을 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단 거예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짐이 되어버렸어요. 그게 가장 가슴 아프죠."

학생들이 신경 쓰일까봐 시험 기간에는 1인 시위를 하지 않았다는 김형태 교사는 "단지 진실을 가르치려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사는 징계위원회 이후 통상 1~2주가 걸리는 재징계 결정을 앞두고 있다. 동시에 양천고 정모 이사장의 횡령과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지난해 10월 정모 이사장을 남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지난 3월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전교조는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이 사건을 항고했고, 서울고등검찰청은 지난달 29일 수사를 명령해 남부지방검찰청에 사건을 송부했다.

전교조는 지난달 성명을 내고 "소청심사위원회의 징계 취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김형태 교사를 직위해제했다는 것은, 양천고 상록재단이 앞으로도 횡령과 비리, 학교 파행 운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피눈물로 되찾은 교단을 다시 빼앗지 말라"고 촉구했다.

양천고 관계자는 김형태 교사의 징계를 두고 <프레시안>과와 전화 통화에서 "소청심사위원회의 징계 무효 사유는 절차 상의 하자 때문이었지 징계 사유의 부당함을 지적한 게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가 판단하기에는 김형태 교사가 교사로서 위법한 행위를 했다"며 "다만, 구체적인 징계 사유는 인권과도 관련돼 있기 때문에 언론에 말하기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검찰의 재수사를 두고 "학교에서는 아직 잘 모르는 일"이라며 "이미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 처리가 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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