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이 다가오면서 대북정책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의 향방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 국내 보수 진영은 문정인 특보의 '워싱턴 발언'을 침소봉대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를 좁히려고 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극도로 정치화·신성화되면서 한국이 미국과 조금이라도 다른 입장을 내비치면 미국에 불경죄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여론을 몰고 가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미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2001년 3월에 있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때에도 양국의 대북정책과 미사일 방어체제(MD) 문제가 핵심 의제였다.
그해 1월 20일에 취임한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클린턴의 대북포용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그 대신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DJ의 워싱턴 방문 직전에 노골적인 압력을 가했다. 'DJ가 워싱턴 방문에 앞서 한국 정부가 미국 주도의 MD를 지지하고 참여를 선언하면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MD 참여를 선언하면 부시의 환심을 살 수 있었고, 그래서 한미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지만 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자명했다. MD 참여는 곧 총체적인 국익 손실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오늘날 사드 문제 대처와 관련해서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MD의 일종인 사드 배치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수용한다면, 정상회담에서 이견과 갈등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한미정상회담이라는 평가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두고 성공적인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드 배치에 따른 대가, 즉 우리 국익의 손실은 혹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토론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사드 배치의 절차적 문제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 와중에 이견과 갈등이 불거지더라도 이를 미리 두려워해서 피하기보다는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과정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럼 한미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는 걱정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최악의 한미정상회담"이었다는 DJ-부시의 만남 이후를 복기해보면, 이러한 걱정이 지나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DJ가 부시의 요구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한미관계는 거의 '이상 무'였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국이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재검토하자고 제안하면 한미동맹이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우리 안의 '공미증(恐美症)'을 성찰해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갈등은 통합의 전제라고 한다. 분명 갈등의 요소가 있는데 마치 없는 것처럼 넘어가면 진정한 통합의 길은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다. 한미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견이 있으면 솔직히 말하면서 서로간의 차이를 좁혀나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쪼록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토론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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