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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정부의 이중 긴장, 예견된 일이었다"

[페미니즘 정치포럼] ③ '젠더 정치'로 바라본 19대 대선과 문재인 정부

"문재인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이미지는 합리적이며 온정적인 가부장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한번도 존재한 적 없고, 허상으로만 존재했었다. 한국에서 가부장은 (엄한 아버지와 같이) 위계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 상징으로 존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보여준 청와대 첫 출근 모습은 이전까지 한국 정치인들에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온정적인 아버지 역시 전통적인 가족 질서 내에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임기 초반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젠더 정치 내 이중 긴장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문제다."(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청와대로 첫 출근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는 김정숙 영부인. ⓒ연합뉴스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19대 대선과 정권교체, 또 이런 민심을 받아 안고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성과 소수자의 문제는 왜 중요하지 않은, 나중의 일로 치부되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만 따져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찍었는데 말이다.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존중받는 정치를 원하는 정치적 주체들은 문재인 정권과 정치권을 상대로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이런 고민을 나누는 '페미니스트 정치포럼'이 지난 16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렸다.

페미니스트 대통령 vs. '여성 비하' 참모들

문재인 정부의 임기 첫 한 달을 얼룩지게 만든 이슈 중 하나가 성평등 이슈다. 대선 과정 중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2017년 2월 21일)한 문 대통령은 피우진 보훈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유리천장'을 깨는 파격적인 인사를 했다.(강경화 외교장관은 토론회가 끝난 뒤인 지난 18일 임명이 확정됐다.)


동시에 문 대통령이 발탁한 인사 중엔 왜곡된 성의식으로 점철된 책을 쓰고 여성의 의사에 반해 허위 혼인신고를 한 전력을 가진 이들도 포함됐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과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얘기다.(안 후보자도 토론회가 끝난 뒤인 지난 16일 오후 늦게 자진 사퇴했다.)


이런 일이 우연히 발생한 것일까? 이날 포럼의 발제를 맡은 이진옥 대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탄생 전부터 페미니즘 선언과 남성주의 복원이라는 이중적 모순을 갖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 이후 성평등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으며 남녀 동수 내각의 점진적인 실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동시에 차별금지법 제정 약속을 뒤집었으며, 동성애 반대 발언을 했다. 동성애에 대한 명시적 반대 발언은 1997년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도 안 했다. 문 대통령이 동성애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서 한 말이 '전통적인 가족의 질서를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이성애적 가족 질서에 기댄 전통적인 가족을 내세운 성의 보수화를 일종의 선거 전략으로 깔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문재인은 홍준표 '돼지발정제' 논란에 대해 침묵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성의 보수화, 남성주의 강화를 정치적 전략을 삼고 있었다는 분석은 여러 사건들을 통해 입증된다.

지난 4월 26일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국방안보 관련 행사를 하는 자리에 성소수자임을 자처한 여성이 문 후보에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이날 행사장에서 시위를 벌인 성소수자 13명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연행됐다. (문재인 후보 측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경찰에 전달했다.) 이진옥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 행사에 뛰어들어 '동성애 반대' 발언에 항의하는 성소수자들. ⓒ연합뉴스

이 대표는 또 문재인 당시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돼지발정제 논란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은 점도 '성 보수화 전략' 중 하나로 지적했다. 문 후보는 4월 23일 TV토론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후보가 강하게 비판한 이 이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당시 심상정·안철수 후보는 홍 후보의 자진 사퇴를, 유승민 후보는 사과를 요구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4명의 여성 후보가 나왔던 18대 대선과 달리, 19대 대선은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 15명 중 유일한 여성 후보였다. 문재인 후보만이 아니라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모두 성적 보수화 흐름을 공유하고 있었고, 심상정 후보는 여기에 균열을 냈다. 부인의 정계 진출 이후 전업 가사노동자로 살아온 남편 이승배, TV토론에서 동성애 지지 발언을 한 것 등이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이런 '균열'은 실제로 유권자들을 움직였다. 심상정 후보의 열렬한 지지세력 중 하나가 20~30대 여성이었다. 실제 투표 결과에서도 심상정 지지가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

또, 선거 초반 상승세를 타던 안철수 후보가 '단설 유치원 증설 반대' 발언으로 상승세가 꺾인 것 역시 젠더 정치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이 대표는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육아, 교육에 대한 정책 투표 흐름이 나타났다"고 했다.

한국의 진보는 남성의 얼굴인가

이번 선거에서 페미니즘 정치는 흐름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나 결과를 뒤집는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남성들 간의 유대'가 확인되고 있다. 탁현민 행정관 문제가 불거지자 배우 문성근 씨가 탁 행정관을 옹호하고 나섰고,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 문제에는 한인섭 서울대 교수 등이 비호하고 나섰다.

"홍준표 후보의 돼지발정제 논란은 책에 실린 내용 때문에 불거진 것이었다. 탁현민, 한인섭 교수를 둘러싼 성 인식에 대한 논란 역시 마찬가지로 책에 실린 내용을 둘러싼 것이다. 그런데 탁현민, 안경환 두 사람을 둘러싼 논란은 텍스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경험한) 두 사람의 인성과 품성에 대해 말한다.

한국에서 민주화의 얼굴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 간의 남성 유대에 기반해 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모습이 확인되는 셈이다."

A 대위 처벌과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직후인 5월 24일 육군 A대위가 동성 군인 간 성행위로 군 기강을 저해했다며 유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은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동성애 반대'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었다.

올해 초부터 육군 내에서 군인 수십 명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결과로 A 대위가 영외에서 다른 군인과 합의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 인권단체들은 A 대위 처벌의 근거가 된 군형법 92조 6(군인, 준군인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가 위헌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국회의원 12명도 A 대위의 무죄와 군형법 92조 6의 폐지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냈다.

"A 대위에 대한 처벌이 내려진 5월 24일 대만에서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대법원 결정이 내려졌다. 그 누구도 타인의 행복추구권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근거였다. 국민당 장기독재 아래 40년 동안 계엄통치를 받았던 대만이 이런 정치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여성운동의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대만 진보의 얼굴로 당선된 사람은 여성(민진당 차이잉원)이다. 대만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38%다."

탈원전, 대체복무제 등 다른 진보적인 정치 이슈에 대해서도 대만은 한발 앞서 나갔다.(문재인 정부도 원전 폐쇄 정책을 추진해 지지를 받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은 35살의 천재 프로그래머 오드리 탕을 디지털담당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최연소 장관인 그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장관이기도 하다.

한국과 대만에서 동성애에 대해 상반된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는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가 깔렸다는 지적이다.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이 정치에 더 많이 진출할수록 '더 많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이 대표는 주장했다.

"이제까지 한국의 진보는 보수와 진보, 민주와 반민주라는 대립적, 대결적 구도를 재생산하면서 소수자와 다양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데 동조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다양성 확산시키고 더 많은 민주주의로 나갈 것이냐, 아니면 민주/반민주 대립구도 속에서 소수자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배제하는 과거의 모습을 답습할 것인가는 페미니즘 정치에 달려 있다."

▲ 16일 페미니스트 정치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이진옥 대표. ⓒ여성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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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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