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갑자기 마을 뒷 산에 사드를 들인다고 했다. 춥고 더운 날에도, 궂은 날에도 차로 20분을 이동해 매일 김천역 앞에서 촛불을 들고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한 달하고 열흘 전 새벽, 성주 소성리 롯데골프장에 사드가 기습반입됐다. 경찰은 주민들을 집 밖으로도 나가지 못 하게 하고, 사드가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지난 수 개월간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었다.
김천시 남면 월명2리, 아랫마을, 윗마을 합쳐도 15가구, 50명도 채 되지 않는 이곳 주민들은 300일 전 촛불을 처음 들었다. 마을 뒷산 너머에 배치된 '사드'라는 듣도보도 못한 미군 무기 때문이었다.
사드가 배치된 달마산은 이곳 주민들에게 일상이었다. 여름이면 나물 뜯으러, 가을이면 송이 캐러 가곤 했고, 마을 입구에서 등산로를 따라 700m만 가면 골프장이 보인다. 그러나 사드라는 무기가 들어온 후 이곳 주민들은 정체 모를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박점순(59)씨는 "시도때도 없이 머리 꼭대기 위로 헬기가 날라다녀 소들이 불안해 뛰어다녔고, 사람도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었다"면서 "너무 가까워 헬기 배 부분을 작대기로 찌르면 닿일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또 "4월 26일 사드가 들어온 그 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경찰이 마을 곳곳에 서서 집 밖으로도 못 나가게 했다. 꼴도 보기 싫다가도 다 자식같은 데 안쓰럽더라. 우리를 싸우게 한 윗 사람들이 나쁜 놈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명리는 김천보다 성주 소성리에 더 가까운 마을이다. 겨울이면 골프장 앞 초소까지 보이는만큼 골프장 바로 옆 마을이다. 낮에는 새소리가 지저귀고 밤에는 개구리가 우는 곳. 마을로 들어오는 순간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는 볼 수 없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면 산등성이마다 텃밭과 과수원이 늘어섰고, 색색의 집이 듬성듬성 서있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대도시에서 자식 키우며 일하다 귀농한 이들이다. 그러나 공기 좋고 물 좋은 마을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왔지만, 지금은 인구가 적은 마을에 분통이 터진다. 사는 사람이 더 많았더라면, 대기업이나 대도시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사드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작은 마을이라고 대의(북핵)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하진 않았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추문현(70)씨는 "자식들 다 키우고 4년 전 편하게 살아보려고 땅사고 집 짓고 들어와 살았다. 그런데 난데 없이 사드를 배치한다고 했다. 국가가 국민 행복권을 박탈할 권리가 어디있는가"라며 "성주,김천집회, 광화문, 국회까지 안 가본데가 없다. 사실 노조가 도로에서 집회할 때 욕 많이 했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돼보니 그 마음을 알겠더라.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1년 전만해도 삼삼오오 모여 복숭아, 자두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평화롭게 살았던 주민들은 마을 모이기만 하면 사드 이야기만 한다. 사드가 무슨 무기인부터 들어온 이유, 효용성, 배치 절차까지 모든 것이 석연치 않았던 사드에 대해 공부하고 서로 지식을 나누다보니 이제는 사회, 경제. 역사, 외교까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최모(67)씨는 "그 추운날에도, 차타고 내려와 사드 반대 촛불을 들었다. 대통령도 바뀌고 나라가 변하고 있다는데 사드는 아직도 그대로라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황모(66)씨도 "3.6km에는 비인가자를 못 들어오게 하는 미군 교범에 나온대로만 해달라"며 "텍사스에 있는 사드를 그대로 들여왔는데 우리나라에 온다고 그 기능이 달라지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믿을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김경수(64)씨는 "사드를 갖다놓고 주민들한테 미안하다, 양해를 구한다고 한 사람이 없었다. 사드 앞에서 참외를 깎아먹겟다느니 헛 소리를 하고 있다"면서 "주민들 생각은 전혀 안 하고 믿어야 한다고만 한다. 휴대폰도 앞 주머니에 넣으면 심장에 해롭다는데 무기인 사드는 오죽한가"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여차배(60) 월명리이장은 "미국은 자국민만 우선시한다. 우리 정부라도 국민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있다"면서 "사드에 대해서는 대선 이전과 똑같다. 모두 사드를 두고 정치질 하는 것 같다. 김천시장과도 만났지만 국방부 직원한테 설득당하고 나온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원래 살던 주민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면서 텅 비게 된 마을이었지만 이장댁의 노력으로 모두가 한 가족이 됐다. 여름이면 느티나무 아래서 함께 점심을 먹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이날도 주민들은 김천역 앞 300일째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삼삼오오 겉옷을 챙기고, 파란 깃발을 든 채 느티나무 아래로 모였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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