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정치권은 내년 6·13지방선거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13일은 딱 1년을 남겨둔 날이기도 하다.
경남은 전남과 함께 현직 도지사가 없는 광역자치단체 2곳 중 한 곳이다. 전남은 이낙연 전 도지사가 국무총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됐다.
하지만 경남은 홍준표 전 도지사가 지난 대통령선거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서면서 꼼수사퇴 논란까지 일으키며 보궐선거 자체를 없게 해 전남과는 성격이 다른 공석이다.
또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보수정당의 텃밭이라는 경남의 정치지형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 지지율 상승이라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경남의 정치권은 이 같은 양상이 내년 지방선거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결과로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정치권을 중심으로 내년 경남도지사 선거 후보군에 자천타천 거론되는 인물들은 20명 가까이 된다.
그중에서도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권민호 거제시장의 거취 문제로 지역 정가가 소란하다. 지난 13일 오후 권 시장을 거제시청 시정상황실에서 직접 만났다.
-지난 4월 18일 대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탈당의 계기는. 또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4년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 첫 출마를 했을 때 거제를 방문했다. 그때 열린시장실에서 만났다. 시장실이 특이하다고 하기에 대통령이 되면 집무실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대선 5일 정도 남겨놓고 비서를 통해서 탈당을 하고 도와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도 달랐고, 해당행위가 되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게 문 대통령과의 첫 인연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두 번의 정권 동안 나라를 잘 이끌어보겠다고 했으나, 그러지를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중간에 탄핵을 당하는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 이제는 보수가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쌓여 왔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후보가 거제 출신이고, 4년 전에 도와달라는 요구도 있었고 해서 이번에는 탈당해서 도와주고자 했다. 거제가 당면한 여러 가지 현안과 시정들을 풀기 위해서는 새롭게 들어설 정부와 협력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을텐데, 당이 다르면서 고향이니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고, 진정성도 없을 것이기에, 또 시정도 잘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탈당을 했다.
-대선 막판 자유한국당 복당 사태가 벌어졌다. 연락은 없었나.
△탈당할 때도 특별히 만류를 한 사람이 없었고, 바른정당 의원들의 자유한국당 복당 때도 공식적으로 제의를 한 사람도 없었다. 자유한국당 정치인들 중 절친하게 지냈던 많은 분들이 무소속으로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는 것이 낫지 않으냐고 조언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탈당을 했으니, 새로운 정치판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무너졌다. 3대 부자와 3대 가난이 없다고 했듯이, 자유한국당이 부자일 때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다. 지금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보수가 무엇을 개혁하고 변화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최근 장관 인선과 청문회, 추경예산안 등과 관련한 자유한국당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적인 경쟁관계이지만 옳은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발목잡기식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높이 사야 한다. 정치적 논쟁보다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여야가 협치를 해야 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아쉬운 면이 있다.
-오늘로서 내년 지방선거가 꼭 1년 남았다. 내년 도지사 선거 출마 여부는.
△재선 시장을 하고 나면 3선 시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재선에서 당선된 뒤 기자들을 만나 밝히기도 했다. 정치도 봉사라고 생각한다. 시장직 8년 하면 해볼 것들은 다 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어야 한다.
사실, 나의 정치입문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외도’를 한 것이다. 그래서 늘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정의 경험들을 살려 도정에 접목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2년 전부터 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입당설과 관련해서 당 내부 반발이 거센 것으로 알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기까지는 4개월 정도 고민했다. 탈당 권유도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4년 전 인연도 있었고 해서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탈당 후에 바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비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으로부터는 탈당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는 몇몇 기득권 세력들이 나를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문재인 후보를 도와주자는 생각만 했다. 입당은 대선 이후에나 한 번 생각을 해보자는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탈당했다. 탈당 후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입당 권유가 상당히 많았다.
그런 과정에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상당히 오르자 비난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을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당을 하겠다고 했다. 반발은 또 생겼다. 그 후 단 한 번도 민주당에 입당하겠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내부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고려한 나머지 반발을 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안타깝다. 이제, 민주당은 집권당이다. 열린 모습으로 인재 영입도 해야 한다.
-만약, 민주당 입당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당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든 법률상으로든 특별한 문제점이 없다면 누구든지 입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반대하는 내부적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입당을 한다면 형식과 절차, 모양새를 갖춰서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막을 명분은 없다고 본다.
큰 선거는 무소속으로는 힘들다. 선거라는 게 조직이 있어야 되고, 도지사에 도전하게 된다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서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무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당시 지역 국회의원일 때 맞섰던 이야기가 있다.
△2002년 지방선거를 할 때 김기춘 의원이 재선 국회의원에 출마했는데 2년 전에 도의원 공천을 줄테니 한나라당에 입당을 하라고 했다. 거부했다. 그 이전에 두 번이나 무소속 도의원 후보로 집권당에 도전했기 때문에 제안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다 차려놓은 ‘밥상’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김한표 국회의원이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일면식도 없었지만 내가 치열하게 도와줬다. 김기춘 의원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서운했던 것 같다.
선거 이후 한나라당에 갔다. 정당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나을 것 같았다. 비난이 쏟아졌다. 김한표 의원을 전폭적으로 도왔던 것 때문에 모든 핵심당원들이 거부했다. 하지만 입당을 했다. 그러고는 2002년 지방선거 때 도의원 공천을 주지 않았다. 경선도 치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전략공천 했다. 김기춘 의원에게 항의했다. 그러면서 “내 발로 들어온 정당이니 어떤 수모를 당하더라도 끝까지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를 보고 ‘대인’이라고 하면서 마음 속에 새겨놓겠다고 했다.
그해 당선된 거제시장이 한달여만에 구속돼 시장직이 공석이 됐다.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되자 도의원을 시장에, 나를 도의원에 공천했다. 무투표로 당선됐다. 그리고 재선도 됐다.
이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5명이 나왔다. 나는 이명박 후보 경남선거대책위원장을 자청했다. 그가 살아온 과정이 대통령감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김기춘 의원이 “너, 그러면 안돼”라고 했다. 일종의 경고였다.
김기춘이라는 인물은 검찰 엘리트 코스를 다 밟은 사람이다.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까지. 승승장구했다. 그기에 대들었으니.
결국,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시장선거에 출마했는데 6명의 후보 중 현직 시장과 내가 막판에 1대 1로 붙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내가 이겼다. 그런데 3일 만에 이유도 없이 검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당시 검사에게 항의를 했다. 선거 망칠 일 있냐고. 이유가 뭐냐고도 물었다. 철저하게 보안에 붙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3시간 만에 언론에 크게 나왔다. 그게 전화위복이 됐다. 선거 과정에서 아무도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고, 시장이 된 후 홀가분하게 시정에 몰두할 수 있었다.
시장 재선 때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지만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두고 현재 거제지역 더불어민주당 몇몇 인사들이 나를 보고 적폐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느냐. 나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 나의 소신대로 살아오고 정치를 해왔을 뿐이다.
-평소 가지고 있는 정치철학은.
△정당의 이념이 정치인을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방식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본다. 나는 언제나 소신껏 이야기하고 정치를 해왔다. 타협하지 않고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해 왔다. 실용주의 정신으로 오늘까지 왔다. 합리적 실용주의와 소신이 나의 정치철학이다.
-홍 전 지사의 경남도정에 대해 평가한다면.
△강한 도정을 강단 있게 끌어온 점은 있다. 하지만, 무상급식 지원 중단 문제가 벌어졌을 때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을 우려해 재고해야 한다고 말을 했었다. 그랬더니 거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사는 곳이니 무상급식 지원을 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그렇게 부딪혀 봤다.
또 1조4,000억 원에 달하는 경남도의 부채를 다 갚았다고 하는데,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빚 갚는 데만 치중하다보니 각 시군에 투자가 일어날 수 있는 부분, 성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부분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
-조선업 위기 종합대책상황실을 운영했다.
△조선은 지난 40년간 거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산업이다. 또한 사라지지 않을 산업이기도 하다. 현재의 위기는 해양플랜트산업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설계분야의 원천기술이 많이 떨어져 있다. 때문에 적자구조 속에서 해양플랜트산업이 지속돼 왔던 것이 문제이다.
또 선박건조 분야는 우리가 유럽이나 일본보다 뛰어나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저임금 구조가 장점이었다. 그런데 현재 임금구조는 중국보다 3~4배 많다. 심지어 신흥 국가에 비해 20배 가량 많다. 고비용 구조로서는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
앞으로는 적자구조이면서도 실적 위주로 지속돼 온 해양플랜트산업이나 고비용 구조의 선박건조 분야에 대한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거제는 관광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문재인 생가 복원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 같은데.
△거제에서 대통령이 2명이나 배출된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국민들의 관심도도 높아졌다. 거제는 관광도시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큰 자원이다. 역사적 의미도 고려돼야 하겠지만, 관광자원의 한 축으로서도 발전시켜나갈 필요성이 있다.
대통령 생가는 평일에 200~300명 정도, 주말에는 1,500~2,000명 정도가 다녀가고 있다. 현재 임시주차장과 화장실, 안내판 등은 마련해놨다. 생가는 문재인 대통령 부모님이 6·25전쟁 때 흥남에서 피난을 와서 세들어 살았던 집이다. 소유권 문제가 있다. 또 청와대에서도 대대적인 정비를 원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문제는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저소득 주민을 위한 ‘300만 원대 아파트’가 전국적인 화제이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그래서 서민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분들에게 새집을 가질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300만 원대 아파트를 공약했다. 당선 후 공약을 추진하는 데 난관과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부지 매입비만 없다면 건축비 300만 원 중반대의 아파트는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지 문제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땅을 행정적으로 용도변경을 해주면서 해결했다. 용도 지정이나 변경이 5년마다 이루어지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기간에 상관없이 개발에 묶여 있는 땅들에 대한 용도변경을 추진했다.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없어서 경남도 차원에서도 거부하기도 했다. 개인의 땅을 개발 가능하도록 풀어주고 일부를 기부받는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특혜의혹마저 일기도 했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를 크게 벋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추진이 가능하다고 끊임없이 설득을 했다.
국가가 12평짜리 소형 아파트는 건축비용의 85%를 무상으로 지급한다. 지자체는 12%를 의무적으로 지원하게 돼 있다. 그러면 개인은 건축비의 3%만 부담하면 된다. 현재 575가구가 추진되고 있다.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오고 있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새집 마련 사업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됐으면 한다.
-현재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시정사업은.
△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이다. 애초에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었다. 하지만 1조8,000억 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에서 국가는 인·허가만 해달라고 요청했다. 자금과 시공과 분양은 민간부문과 거제시가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가산단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정부와 지자체와 민간이 협력해서 만든 최초의 국가산단인 셈이다. 지금은 국토부의 국가산단 지정 승인과 관계된 마지막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관광산업도 활성화시켜야 한다. 장목관광단지의 경우 20년간 표류를 했다. 현재 모 기업에서 4,200억 원 정도의 투자제안과 협력체결을 하고 경남도개발공사가 주도해서 추진하고 있다. 또 기존 대명콘도에 이어 거가대교 부근 저도에 한화리조트도 내년 6월쯤 오픈 예정으로 건설되고 있다. 학동 케이블카 사업도 민간투자자를 물색해서 잘 추진되고 있다. 남부 탑포관광단지에 3,600억 원 투자 규모의 리조트와 콘도, 골프장 등 종합관광타운도 행정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이 완성되면 거제의 관광산업이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현재 거제시 경제에 대한 진단과 전망은.
△거제의 경제는 조선산업이 7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분야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러나 이것에만 목을 메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의 재정운용을 지역경제 살리는 것으로 전환했다. 골목상권이나 재래시장 활성화에도 치중하고 있다.
-권민호 시장에 대해 거제시민들은 ‘네가지가 없는 시장’이라고 한다.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가지거나 누리고 살지 않았다. 시장이 됐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공무원 사회도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열린시장실은 그런 의미에서 시행했다. 권위적인 시장실을 버렸다. 7년째 유지해오고 있다. 시민 누구든지 자유롭게 오가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근무복의 차별도 없다. 현재 시청 공무원이 1,200명쯤 된다. 그러다보니 시민과 공무원이 뒤엉켜 구분이 안됐다. 그래서 근무복을 만들어 나눠줬다. 공무원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시장이든 시청 직원이든 근무복이 똑같다.
관용차도 없다. 처음 시장 4년 동안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시정에 반영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재선 이후에는 경차를 구입해 출퇴근을 하고 있다. 에피소드가 있다. 출근길에 음주단속을 하던 의경이 “아저씨 한 번 불어보세요”라고 하더라. 호칭 때문에 기분이 조금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장이 아닌가. 음주측정을 마치니 또 “아저씨 가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 시장인데”라고 했더니 “농담하지 말고 빨리 가세요”라고 하더라.(웃음) 그런 경우도 있었다.
수행비서도 없다. 있으면 편하겠지만, 그정도 일은 스스로 해도 되겠다 싶었다. 소탈한 시정을 하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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