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관리공단 담당자들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및 권리 행사 방해) 등으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지난 2015년 이뤄진 두 회사의 합병이 국민연금에 불리한 결정이었다는 걸, 법원이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게 433억 원의 뇌물을 주면서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등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21부(재판장 조의연)는 8일 문 전 장관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연금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기금 운영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국민연금기금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손해를 초래해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크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문 전 장관은 현직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위치였다. 실제로 압력을 넣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국민연금에 불리함에도, 기금운용본부 내부 투자위원회가 찬성을 의결하도록 유도한 혐의로 기소된 홍 전 본부장도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이) 기금 자산의 수익성과 주주가치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하는 책무가 있음에도 기금에 불리한 합병 안건에 투자위원회의 찬성을 이끌어 냈다"며 "국민연금공단은 장래 재산상 이익을 상실했고 반대로 이재용 삼성그룹 대주주는 이에 상당하는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2015년 합병 당시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 주식 11.21%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0.35 대 1'이었는데,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은 합병에 반대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국민연금공단은 민감한 결정에 앞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열게끔 돼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무시됐고, 기금운용본부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어 합병 찬성 결정을 했다. 외부 전문가가 참가하는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열리면, 합병 반대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절차를 무시했다는 뒷말이 나왔었다.
결국 법원은 2015년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 의결이 부당했다고 인정했다. 다음 궁금증은, 국민연금공단이 왜 이런 부당한 행위를 했느냐다. 그 대목이 석연치 않으므로 정치적 압력 가능성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다.
이런 가능성을 인정하면, 삼성이 박 전 대통령 측에게 뇌물을 줬고, 박 전 대통령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했다는 주장 역시 성립한다. 박 전 대통령 및 이 부회장에게 뇌물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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