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세계 최대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989년(텐안먼 사태가 일어난 해)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결정을 내린 뒤 역풍이 불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무디스의 결정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왜 이 시점에서 설득력이 없는 강등 결정을 내렸을까"라는 의문까지 증폭되고 있다.
당장 미국 월가의 풍향계로 불리는 <블룸버그>의 금융 전문 칼럼니스트 앤디 머커지는 25일 '무디스가 중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결정은 시기적으로 묘하다(Moody's China Cut Is Curiously Timed)'는 글을 통해 "지난달 중국 최고 수뇌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논의하기 위한 중요한 회의를 연 뒤, 시진핑 국가주석이 과도한 부채를 줄이기 위한 결연하게 나서고 있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디스가 이렇게 비관적인 판단을 내린 것은 무모하다"고 비판했다.
머커지는 "중국의 국가부채는 국영기업들의 방만한 차입 경영에서 비롯되는 문제"라면서도 중국 정부가 이 문제를 개선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부채상환능력 차별, 해외차입 비율 고려없는 이중잣대
칼럼에 따르면 1년 전, 미국 블룸버그는 중국의 신용평가사들이 트리플 A 등급을 부여한 중국 기업들의 채권에 대해 투기 등급으로 분류를 했다. 하지만 해당됐던 127개 채권 중 현재에는 14개(11%)만이 투기 등급에 머물고 있다. 중국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칼럼은 무디스가 2년 반 전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1으로 강등했음에도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했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2월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1(이번 무디스의 강등 결정으로 중국도 A1이 됨. 편집자)으로 강등했을 때와 비교하면, 일본의 5년 만기 국채의 부도에 대비한 보험료는 현재 절반 수준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무디스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근거는 장기적으로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전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무디스의 등급 체계 중 A1은 최고등급인 트리플A로부터 다섯번째로 한국(Aa2)보다 두 단계 아래다. 무디스는 중국의 부채가 늘어나고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재무 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며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무디스는 성명을 통해 "중국 경제 전반의 레버리지(차입)가 향후 몇 년간 더 늘어날 것"이라며 "예정된 개혁이 레버리지 증가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막을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앞잡이 평가사'가 시진핑 압박에 동원" 비난도
하지만 중국 정부는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결정에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 재정부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신용평가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중국 경제가 마주한 어려움은 과대 평가하고 정부의 공급 측면의 개혁과 수요 확대 능력은 낮춰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중국 내에서는 시진핑 집권 2기(2018~2022)를 맞는 오는 11월 제19차 당대회(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미국의 앞잡이'라 불리는 무디스가 트럼프 정부의 '시진핑 길들이기' 압박에 동원된 것이라는 시각도 팽배하다.
사실 무디스가 강등 결정의 근거로 내세운 부채 문제와 경제 둔화 우려는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온 것이고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시점에서, 그것도 시진핑 정부가 '일대일로' 등 국제적으로 대규모 자본 유치가 필요한 프로젝트에 주력하는 시기에 덜컥 '잔치에 재뿌리듯' 강등 결정을 내린 것은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편에서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무디스 등 서방의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외부 차입이 많은 서구 국가의 부채 상환 능력을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외부 차입이 별로 없는 일본이나 중국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며 부채상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이중잣대'의 평가방식을 적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의 기관지 <인민일보>는 25일 중국 상무부 연구원의 '무디스 등급 강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라는 해외판 평론을 통해 "불과 몇 년 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위기와 유럽의 채무 위기를 초래했던 원인이 뭔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디스의 평가 체계의 신뢰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나아가 신문은 "중국 채무의 95%는 외채가 아닌 내부의 빚이며, (중국은) 3조 달러가 넘는 외환을 가지고 있다"며 "이번 등급 강등으로 인해 중국에 미치는 영향은, 외채에 크게 의지하는 신흥 시장국보다 훨씬 적다"고 강조했다.
중국 채권시장 규모는 약 9조 달러(약 1경50조원)로 미국과 유럽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하지만 외국인의 채권 보유 비중은 1.5%(중국 인민은행 집계)밖에 안 돼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적다.
영국의 금융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도 "중국의 채권시장 내 소수인 외국인 투자자와 달리, 대다수 중국 기관투자가는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의 등급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무디스는 2018년까지 중국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2020년까지 45%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비율은 유럽연합(EU)에서 제시하는 경계선 60%보다 낮은 수준이며, 서구의 주요 시장경제국 및 신흥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무디스는 중국의 총부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는 점도 지적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008년 160%에서 지난해 말 260%로 급증했다. 무디스는 "지방정부 자금조달 및 국영기업 채무확대로 인해 정부의 우발채무 비율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국 재정부는 "신예산법 시행 이후 원칙적으로 지방정부는 기관과 개인의 채무에 대해 담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부채 관리가 가능하다"면서 "예산법과 국영기업법에 의거해 국영기업은 독립적인 채무 부담을 가지기 때문에 중앙국영기업과 지방국영기업의 채무 모두 정부 부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무디스는 또 향후 5년의 잠재성장률이 약 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2010년 10.6%를 기록한 이후로 둔화해 2016년 6.7%까지 떨어졌다.
이에 대해서도 중국은 관영 <신화통신>의 사설을 통해 반박했다.
통신은 "무디스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전망한 것"이라면서 "작년 하반기 이후 올 들어 중국 경제는 안정 속에 양호하게 발전하고 있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1분기 GDP 증가율은 6.9%로 전년동기 대비 0.2%포인트 상승했고 주요 경제지표의 증가세도 예상보다 좋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통신은 "중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안정적인 상태에서 양호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무디스의 강등 결정 이후 중국의 10년만기 국채 수익률과 위안화 역시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중국의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만기 5년) 프리미엄(금리)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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