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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판결에 유감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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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PD수첩 판결에 유감이 좀 있다

[법치의 표리(表裏)]<29>"보도 '옳다'"이전에 "기소 '잘못됐다'"했어야

지난 1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08년 4월 29일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이 방송된 지 거의 2년이 흐른 후에 나온 판결이다. 물론 검찰이 항소했고 상급심의 판결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논쟁에 일단락이 지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조목조목 분석한 다음 PD수첩이 보도한 내용을 허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간 검찰과 일부 언론에 맞서 보도의 진실성을 주장한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정말 눈물이 나올 만큼 반가운 판결이었을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판결을 반겼고 일부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여준 판결이라고까지 칭송을 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밝힌다면, 필자도 이 판결의 결론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 없이 찬성한다. 최근 논란이 된 여러 사건 중에서도 최소한 이 사건에 대해서만은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정부정책을 비판한 보도의 내용을 문제 삼아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단죄하는 상황이라면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더 얘기할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심 판결이 선고된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판결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사건에 대해 나오는 얘기들을 들어보면서 과연 지금의 상황이 바람직한 것인지, 정말 보도의 진실 여부를 법원에서 가렸어야 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기소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했어야
▲ 현행 법에 의하면 PD수첩 보도의 사실 여부는 아예 따질 필요가 없었다ⓒ프레시안

보도 내용의 진위를 시시콜콜 따져보기 전에, 만일 PD수첩의 내용이 허위라면 농림수산부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것인지 먼저 판단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만일 설사 보도 내용이 부정확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형사적으로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아예 진위 여부를 문제 삼아 기소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명쾌하게 선언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PD수첩이 광우병에 관한 보도를 한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제작진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는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것이다. 둘째는 PD수첩의 보도로 인해서 국민들의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가로서 자신 있게 말하지만, 이 두 가지만으로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어떤 법에 의하더라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적어도 사법적인 판단을 내릴 때에는 이 점을 분명하게 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검사들에게 "명예훼손이 성립하냐"고 물어봤었다

친하게 지내는 검사들과 PD수첩 사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일이 있다. 대개 보도 내용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번역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기도 하고, 단순하지만 반박이 쉽지 않은, "정말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한 것이라면 미국 정부가 자국민들이 먹도록 허용하겠냐"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광우병에 대해서 완벽한 문외한인 나는 그런 의견에 애써 반박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만일 정말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치자. PD수첩 제작진이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와 한 인터뷰 내용을 오역했고, 보도 내용이 대부분 허위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정말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냐"고 묻는다. 적어도 법을 직업으로 한다는 사람 중에 여기에 대해서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8년 7월 29일에 검찰은 일종의 중간수사발표를 한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PD수첩 측에 다우너소 동영상에 대한 왜곡 보도, 아레사 빈슨의 사인에 대한 의도적 오역, MM 유전자형이 인간광우병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단정, 라면스프 등을 통한 광우병 감염위험 과장 보도 등 모두 19개 항목에 대한 해명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당시 제작진의 변호인은 이러한 검찰의 질의에 대해서 "언론이 광우병 의심 소라고 한다고 해서 정운천 전 장관에 대한 어떤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이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인데, 그때마다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해야 하고 PD들이 불려나간다면 말이 되겠는가"라는 지극히 당연한 반박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언론 보도 어디를 찾아보아도 이러한 변호인의 주장에 대한 검찰의 대답은 찾아볼 수 없다.

법원이 간통의 '실체'도 파헤쳐야 하는가

사법부나 검찰은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그럴 권한도 없다. 국민적인 스타가 간통죄로 기소되었다고 치자. 모든 국민이 그 스타가 실제로 간통을 했는지 궁금해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일 고소가 취소되면 법원은 실제 간통을 했는지 판단하지 말고 공소기각을 해야 한다. 간통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고소가 취소되면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검찰이 방송 제작진에게 라면스프를 통해서는 광우병이 전염되지 않는데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잘못이 아니냐고 묻기 위해서는 그것이 범죄의 성립요건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여전히 보도 내용의 진위에 대한 공방만이 오고 갈 뿐이다.

PD수첩 사건에 대해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 일부 언론에서는 "민사 사건에서는 정정보도 판결이 난 사안인데 어떻게 허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라면서 판결을 비판한다. 그런 기사를 쓴 분들께 진심으로 묻고 싶다. 만일 보도 내용이 틀렸다면 처벌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떤 논리로, 어떤 범죄가 성립한다는 말인가.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판결이 보도 내용의 진위에 대해서 장황하게 따지고 들어간 것은 자칫 앞으로의 언론 보도를 위축시킬 빌미를 제공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보도 내용에 대해서 집요하게 사실 여부를 따지는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에 무의식적으로라도 밀린 것은 아닐까.

이 사건 판결문은 A4 용지로 45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허위라고 주장한 보도 내용에 대해서 일일이 근거를 들면서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데 판결문의 거의 끝부분인 43페이지에서 법원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표현된 내용이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인 경우에는 …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하며, 특히 국민의 생명 및 건강에 관련되는 정부 정책이라면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또한 "정부 정책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의 수행을 그 사명의 하나로 하는 언론 보도의 특성에 비추어, 정부 정책이 국민의 생명 및 건강에 위험을 줄 수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상당한 근거에 기초한 언론보도를 통하여 그와 같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는 등의 감시와 비판행위는 언론자유의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인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하여 바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도 하고 있다.

PD수첩 수사-재판에 4대강을 대입해보자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 내용대로라면 애초에 보도내용의 진실 여부를 법원에서 따져볼 이유도 없다.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설사 일부 보도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기소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매체가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보도하면서 각국의 실패 사례를 들었다고 치자. 4대강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나서서, 성공 사례도 있는데 굳이 실패한 사례만, 그것도 부정확하게 보도함으로써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고소를 했다고 치자.

그런 경우에 검찰이 또 다시 제작진에게 보도 내용을 해명하라고 '공개 질의'를 해도 괜찮은 걸까. 취재자료 원본 전체를 봐야만 보도의 의도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제출을 요구하거나, 제작진의 내심의 의사를 국민들의 궁금해 한다는 이유로 이메일을 공개해도 괜찮은 걸까. 그 후에 법원이 다시 보도 내용을 일일이 따져가면서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이, 설사 그 결과 무죄를 선고한다고 하더라도, 바람직한 것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PD 수첩 판결의 결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판결문은 너무나 길다. 정부정책을 비판한 보도는 그것이 설사 부정확하더라도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는 없다는 짧고도 분명한 판결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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