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밤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동성애 반대" 등의 언급을 한 데 대해 시민단체들이 잇달아 성명을 내어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26일 성명을 내어 "대선 후보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차별·혐오표현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민변은 정연순 회장 명의의 이 성명에서 "어제 토론회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동성애로 인해 국방력이 저해되느냐',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등의 질의응답을 했는데,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표현이 아무런 제재 없이 사회에 유통된다는 것은 인권과 헌법 정신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세계인권선언과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권의 보편성을 천명하고 있다"며 "보편적 인권의 내용에는 인간이 자신의 젠더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라 누군가를 자유롭게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포함된다. 따라서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이성애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누리는 이 권리를 성소수자들도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인권선언과 헌법의 정신"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이러한 헌법과 인권을 수호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는 대통령직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전 국민이 시청하는 TV 토론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배척하는 차별적인 발언들을 서슴지 않았다"며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찬반'을 논의하는 것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존재 그 자체를 반대하던 나치들의 행동과 같다"고 맹비판했다. 민변은 "부당한 차별의 가장 큰 표징은 바로 존재에 대한 찬반, 분리·배척"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대선 후보들의 차별적 발언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간의 존재 그 자체는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젠더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인간의 의식적 행위가 아닌 존재의 문제이고, 국가가 법적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변은 "나아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의 미국 사회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처럼, 대선 후보들의 이러한 표현이 사회 전반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과 차별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우려하면서 "대선 후보들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차별 발언을 당장 중단하고, 이들에게 과오를 조건 없이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민변은 이어 "말뿐인 사과로 이 사태를 모면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없앨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민우회, 여성의전화 등 한국 여성운동 단체들의 연대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도 같은날 성명을 내어 "대통령 후보들의 동성애 혐오 발언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여연은 "문재인 후보는 '군대 내 동성애로 인한 국방력 약화'를 운운하며 동의를 구하는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대해 즉각 동의를 표시하면서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여성혐오적 발언과 성폭력 범죄 공모 관련 후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홍 후보의 '동성애 혐오발언' 요구에 동조한 인권 변호사 출신 문 후보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의 초점을 문 후보에게 맞췄다.
여연은 "현재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문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지속적으로 반동성애 행보를 보였다. 지난 2월 13일 보수 교계 대표에게 '동성애나 동성혼을 위해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는 입장을 전달했고, 그 직후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는 자신의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들의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에 거듭 반대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고 지적하며 "동성애에 대해 그 누구도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가질 권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여연은 "현재 군대에서 진행되는 동성애자 색출과 처벌은 반인권적 만행"이라며 "이에 동조하는 일부 대통령 후보들의 행태는 한국의 인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이들은 홍 후보에게 "반여성, 반소수자 후보인 홍 후보는 성폭력 범죄 공모에 가담한 자로 이미 후보 자격이 없다. 혐오를 선동하는 선거 전략을 당장 멈추고 사퇴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하는 한편, 문 후보에게는 "소수자 혐오 세력에 기대어 성소수자의 치열한 인정 투쟁 역사를 모욕하고 인권 수준을 퇴행시키는 저열한 선거 전략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연은 "대통령 후보로서 동성애자를 반대한다는 언사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것은 향후 우리 사회를 차별과 혐오, 배제로 분열시키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대선 주자는 성평등 운운할 자격이 없다"며 "문 후보는 국민 앞에 사과하고 문 후보의 선거 캠프는 성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성평등 정책을 당장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게이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27개 성소수자 권리 운동 단체들의 연대체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문 후보의 유세 현장에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무지개행동은 이날 시위 참가자 13명이 경찰에 연행된 사태에 대해 "불법 연행"이라고 반발하는 한편 "무고한 성소수자들의 요구를 묵살"했다고 문 후보 측을 비판했다.
무지개행동은 육군 내 동성애자 군인 색출 사건을 거론하면서 "혐오가 극에 달한 가운데 성소수자들은 범죄자로 색출되고 불법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고 규탄하는 한편 "선거 전부터 성소수자 탄압을 예고하는 문 후보의 경거망동은 심히 우려스럽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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