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11일만에 검찰 출두를 위해 포토라인에 선 박 전 대통령을 보는 달성의 민심은 상실감뿐 아니라 분노, 우려 등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21일 오후 달성군 화원시장에서 만난 원모(85.화원읍)씨. 그는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오랫동안 지지해온 열성 지지자였다. 국정농단 게이트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대통령을 믿었지만 일말의 신뢰는 채 오래가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고령의 원씨는 격분했다. "대선 때 화원삼거리에서 나하고 악수까지 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박 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해왔다"며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쳐 왔길래 대통령 되면 잘 할 줄 알았다"고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판단을 잘못해 최순실이랑 같이 나라를 망쳐 전 세계 망신거리가 됐다. 동네 망신이다. (그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이 안 온다"면서 "잘못했으면 벌 받을 것 받아야 한다"고 검찰 조사를 받으러 들어간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한 표를 준 권경철(75.화원읍)씨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대구 사람이라면 전부 박근혜 지지했을 거다. 나도 선거 때마다 박근혜를 뽑았다. 헌데 이번 사건으로 대통령 자체에 많 이 실망했다. 검찰 수사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달성군은 박 전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처음으로 당선된 후 내리 4선을 한 곳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달성군에서만 80.87%의 득표율을 얻어 대구 전체 80.14%보다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정계 진출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함께 한 달성군이지만 대통령직 파면 이후 정치적 고향의 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차갑게 돌아서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사용했던 지역 사무실은 화원시장으로부터 700m가량 떨어져 있다. 현재는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당시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추경호(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지역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화원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던 박영순(53)씨는 배신감과 더불어 슬프다고 털어놨다. "최순실이 시켰든 본인이 나섰든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한 것 아니냐. 나라를 흔들어놨다"며 "나도 그렇고 우리 남편도 그렇고 달성군 사는 사람들은 거의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것은 배신이다. 이럴 수 있냐. 화도나고 한편으론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사건의 전말을 지켜보며 수치스러움을 느꼈다는 주민도 있었다. 조모(40.화원읍)씨는 "최순실 국정농단부터 미르·K재단까지 드러난 사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라며 "청와대 나오는 순간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걸 보고 정말 수치스러웠다"고 고개를 저었다.
검찰 조사에서 진상규명과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영숙(61)씨는 "박근혜는 숨기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믿을 수 가 없다. 구속해야 하지 않겠냐"며 "오늘 검찰에 불려갔으니 모든 진실이 명백히 밝혀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앞으로 잘 지켜보자"고 했다.
2030세대는 탄핵과 검찰 수사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정치권 자체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올해 대학생이 된 최서현(20)씨는 "대통령을 탄핵시킨 힘은 국민들로부터 나왔다. 결국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것 아니냐. 떠밀려 탄핵 한 것이다. 오히려 정치권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서모(30)씨는 "대통령 탄핵은 바꿔야 할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앞으로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국민들 촛불만 믿지 말고 정당들이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소수의 달성 민심은 여전한 '박근혜 사랑'이었다. 황모(73.옥포면)씨는 "젊은 사람들은 구속돼야 한다고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며 "(검찰) 조사에서 진실이 다 밝혀질 것이다. 탄핵도 옳지 못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화원시장에서 20년째 두부장사를 하는 최모(67)씨도 "탄핵이고 구속이고 모르겠다. 할 말이 없다. 박통(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이 결국 잘못한 것 아니냐. 검찰에서 다 드러날 것"이라 고 내심 기대했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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