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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좌파 적출이 아니라 민주주의 적출이다"

[추적] '유인촌 전쟁'의 최전방, 문화미래포럼③·끝

지난 5월 황지우 총장의 퇴진으로 이어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를 시작으로, 문화계에 때 아닌 '좌파 적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유인촌의 전쟁'이라 불리는 이 논란의 중심에 뉴라이트 단체들이 있다는 주장 역시 곳곳에서 제기된다. 그 선두에 선 단체, 문화미래포럼을 조명한다. (☞관련 기사 : MB의 '좌파 색출대' 문화미래포럼, 넌 누구냐?)

최근 영화계는 흉흉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한예종 다음 타깃 이름이 공공연히 입에 오른다. 한 영화 단체 관계자는 "최종 타깃이 부산국제영화제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며 불안감을 표했다. 실제로 개막을 석 달 앞둔 부산국제영화제는 현재 감사원 특별조사국의 감사를 받고 있다.

문화미래포럼과 영화계의 '준비된 전쟁'

영화계에 대한 문화미래포럼(대표 정용탁)의 '전쟁'은 사실 오래 전부터 준비왜 왔다. 문화미래포럼이 2008년 11월 출간한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집문당 펴냄)은 실로 많은 지면을 '좌파 영화계 개혁'에 할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정용탁 문화미래포럼 대표는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좌파 사상 전파와 역사 왜곡, 그리고 폭력 섹스까지 옹호하는 인사가 있다는 것은 우리 영화계의 수치"라며 "좌파정권 10년 동안 좌파 인사들이 우리의 근대 역사를 왜곡·비하했다"고 비판했다.

문화미래포럼의 주축 회원인 조희문 인하대 교수(연극영화과)는 한국 영화계가 그동안 "이념과 선동의 레드카펫을 걸었다"며 "'표현의 자유' 확대는 기존의 가치와 인식을 전복하는 빌미로 동원되었으며 '스크린쿼터 수호'는 한국 영화 보호의 명분을 업은 채 반미 선동의 명분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의 '핵심 진지'로 기능해왔던 영화진흥위원회에 대한 거센 비판도 있었다. 조 교수는 "영화진흥위원회를 접수한 좌파 세력들이 영화를 동원한 '문화혁명'을 수행했다"며 영화진흥위원회의 폐지를 주장했다.

▲ "상상력에 자유를!" 문화연대 회원들이 문화부의 '표현의 자유 억압'을 규탄하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뉴시스

"한예종 사태는 시작일 뿐"…휘청대는 영화계

이같은 문화미래포럼의 '선제 공격'에 발 맞춘 듯, 올해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영화계 '좌파 세력 물갈이' 행보가 본격화하고 있다.

'좌파 색출'의 시나리오는 감사에서 시작했다.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독립영화협회, 스크린쿼터문화연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서울영상위원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수많은 영화단체들이 문화부·감사원의 감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런 감사의 내용이 '꼬투리 잡기식'이 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그간 감사를 받았던 기관의 전례는 그 방증이다. 한예종 U-AT 통섭 과정의 경우, 집기를 살 때 의자를 더 구입해서 낭비했다며 지적을 받았다. 사무실 연구원 수보다 의자가 2개 더 많다는 것. 문화예술위원회의 김정헌 위원장의 경우 해임 사유 네 가지 중 세 가지가 사실상 '업무상 실수' 때문이었다. 감사 과정에서 문화예술위원회는 시설물을 번호 키로 관리해서 보안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고, 또 번역을 할 때 두 번 (한 번은 감수) 해서 예산을 낭비했다고 지적 받기도 했다.

▲ 올해로 14회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현재까지도 감사원 특별조사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문화부와 뉴라이트의 '좌파 색출' 행보의 최종 타깃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정부 측에서는 "8000만 원 이상 국고 지원을 받는 모든 단체는 감사원 감사를 의무화"한다고 하지만, 이렇듯 많은 문화예술단체에 전방위적 감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이례적다. 또 8000만 원 미만의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문화단체들까지 현재 문화부 감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영화인회의 최현용 사무국장은 이같은 문화부의 '표적 감사'를 놓고 "감사를 위한 감사"라며 "정책이나 행정을 위한 감사가 아니라, 사실상 트집을 잡기 위한 감사"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 영화 단체 관계자는 "감사가 언제 끝날지, 결과는 언제 발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보통 이런 식으로 감사를 끌고 빌미가 생기면 문화부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를 교체한다"고 말했다. 현재 감사를 받고 있는 560여 개 단체들 중 540개 정도가 문화계 단체들이다.

한편, 문화연대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그간의 문화계 감사가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저인망식 표적 감사였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의혹'이 아닌 '공공연한 진실'"이라고 밝혔다. 문화연대는 또한 "(감사를) '정상적인 업무 수행일 뿐'이라고 순진하게 믿어주기에는 매번 드러나는 시나리오가 너무나도 뻔뻔하다"며 "대체로 문화부의 압력으로 시작해 문화미래포럼, 빅뉴스 등 뉴라이트 조직의 협동 공격에 힘을 받아 표적 감사를 실시하고 감사 후에는 사소한 이유들로 명분을 만들어 기관장을 해임하거나 구조 조정을 지시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타깃, 독립영화

독립 영화 역시 위기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 계획에는 '독립 영화'라는 명칭이 삭제되었으며, 그간 한국 독립 영화의 '성지' 역할을 해온 시네마테크에 대해서도 2010년부터 기존의 '위탁' 형식의 사업이 아니라 '공모' 형식의 사업으로 사업 절차가 변경되었다. 독립 영화를 의미하는 '다양성 영화 영역'의 예산 역시 대폭 줄었다.

▲ 문화미래포럼 조희문 교수는 '반미·독재 타도 영화'의 예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흔을 그린 영화 <오! 꿈의 나라>를 들었다. ⓒ프레시안
독립 영화에 대한 이같은 '압박'은 사실 문화미래포럼이 꾸준히 제기해온 주장과도 일치한다. 문화미래포럼의 영화분과 회원인 조희문 교수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독립) 영화 운동의 근저에는 외세 배격의 주장이 있었고, 이는 이북의 선전 이념과 맞닿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반미·독재 타도 영화'의 예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흔을 그린 영화 <오! 꿈의 나라>, 서울올림픽 당시 상계동 철거민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을 꼽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 위축되는 것은 비단 영화계 뿐만은 아니다. 대중음악 평론가 서정민갑 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 유무형의 압력과 피해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내에서 신망이 높기로 유명했던 김철호 원장의 경우 2009년 1월 임기 9개월을 남겨놓고 돌연 사퇴했으며, 국립오페라합창단 역시 지난 3월 사실상 강제 해산됐다.

지난 5월 2일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는 록밴드 '윈디시티'가 정부 비판 발언을 했다가 공연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윈디시티는 네 번째 곡인 <카니발>을 연주하는 동안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자", "진정한 페스티벌은 촛불 집회 아니겠느냐" 등의 말을 했고, 당시 주최 측은 공연 도중 음향 시설 전원을 껐다.

문화미래포럼, "좌파 세력 물갈이" 꾸준히 요구해

이명박 정부 들어 김철호 국립국악원 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 노무현 정부 당시부터 문화예술기관장을 맡고 있었던 사람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지난 3월 12일 취임 직후 유인촌 장관이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발언한 이후의 일이었다.

▲19일 오후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황지우총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뉴시스
문제는 이같은 '문화계 물갈이 정책'이 단지 문화부 독단의 행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 정부 들어 몸값이 잔뜩 올라간 문화미래포럼의 경우 오래 전부터 문화계의 '인적 청산'을 주장하며 문화부에 여러 정책 대안들을 내놓은 바 있다.

작년 9월 문화미래포럼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에게 제출한 '문화 예술계 현안과 과제'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영화제 등 각종 기관 단체에 포진하고 있는 좌파 이념 편향의 인력에 대한 청산"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었다.(☞관련 기사 :"좌파를 적출하라!"…문화미래포럼의 '한예종 죽이기')

이들은 이 문건에서 '좌파 세력의 근거지'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연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진흥위원회 등을 꼽았다. 이들의 제안이 표적 감사 및 기관장 해임 등의 경로로 현실화된 '첫 번째 타깃'이 바로 한예종 사태였던 것이다.

그들의 '잃어버린 10년'…'매카시즘 공포' 부활하나

작년 10월 있었던 영화진흥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지난 10년 좌파 정권에서 우리 영상 문화 쪽이 얼마나 편향적이었는가"라며 영화계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대표적인 우파 문화예술인으로 꼽히는 정재형 동국대 교수(영화학과)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한예종 사태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몇 십 년 동안 닦아 놓았던 터전과 기득권을 하루아침에 몇몇 (좌파) 엘리트들과 정치 권력이 무시했다"는 것이다.

'좌파 정부를 등에 업은' 한예종 및 문화예술단체들이 기득권 문화인사들이 가지고 있던 '밥그릇'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이 문화미래포럼 등 뉴라이트 문화단체들의 주장이다. 그렇듯 문화계에서도 '잃어버린 10년'의 논리가 무차별적 '좌파 낙인'과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계에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색깔 논쟁'에 대해 미술인 고승욱 씨는 "좌파 적출이 아니라 민주주의 적출이다"라고 일축했다. "뉴라이트 단체가 내세운 '좌파 적출'이란 프레임 속에서, 문화부가 내세운 법의 차별적 적용이 합리화되고 있다"는 우려였다.

여전히 한예종 학생들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며 문화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표적 감사와 문화예술인 탄압에 맞서 한예종 사태에 이은 '더 큰 싸움'을 준비 중이다. 매카시즘 공포마냥 구태의연하고 살벌한, 2009년 대한민국 문화계의 풍경이다.

문화예술인 "유인촌 장관은 MB정권의 나팔수인가"

지난 15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는 미술, 영화, 음악 등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문화행정 정상화와 예술 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이날 문화예술인들은 "이명박 정부 1년 반 만에 문화부는 정부의 나팔수가 되었고, 문화와 예술은 막무가내 식 개발 사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명분으로 전락했다"며 문화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문화부가 생각이 다르면 모두 '좌파'이고, 비판하는 사람은 '배후자'의 사주를 받는다고 간주하고 있다"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부의 '좌파 적출' 행보에 대해 "냉전시대 마녀사냥 그대로"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적 목적에서 진행되는 저인망식 감사, 이를 명분으로 한 공공기관장 해임과 사퇴 종용, 그리고 문화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이명박 정부 들어 본격화되었다는 평가다.

'문화 정책'은 없고 '홍보 정책'만 있는 문화부

현 정부 들어 문화부의 문화 정책이 문화예술 진흥이 아니라 국정 홍보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 학부)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가 '권위적 시장주의'에서 점차 '전제적 국정 홍보'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5월 4대강 정비 사업과 새만금 사업의 국정 홍보를 담당하던 신재민 씨를 제2차관에서 제1차관으로 임명한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원 교수는 이같은 인사 개편에 "문화 정책을 외부 정책을 위한 수단이 되도록 했고, 그를 수행하기 위해 내부적 조직 정비를 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현 정부가) 참여정부 시절의 국정홍보처를 폐지하고 문화부에 통합시켰지만, 집권 1년이 지나면서 국정홍보부처의 크기나 예산규모를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홍보처 기능을 넘겨받은 문화부의 올해 정부 정책 홍보 예산은 국정홍보처 시절의 예산을 이미 넘어섰다. 2008년 90억8000만 원이던 예산은 2009년 189억8000만 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37억 원보다 53억 원 늘어난 액수다.

'대한늬우스' 등, 정부정책에 대한 관제 홍보 역시 논란거리다. 지난 2월 문화부는 '나라사랑 켐페인'의 일환으로 빅뱅 등 인기 가수에게 '나라사랑랩송'을 부르게 하겠다고 밝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제5공화국 당시 <아! 대한민국>과 유사한 국가주의적인 발상이란 비판 역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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