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이명박에 이은 박근혜의 출현은 그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가까운 미래에 마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듯 이런 종류의 정치적 참화(慘火)가 재발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검찰과 특검에 의해 쏟아져 나온 대통령 관련 비리 정보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쏟아져나오는 탄핵 반대의 인파는 그 불길한 조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루어지는 모든 정치적 논의는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는데, 복잡하게 엮인 사회적·역사적 모순을 풀어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 가지 관점으로, 근본적인 원인은 박정희 이래 왜곡된 교육으로 인한 주인 의식의 실종이라는 진단이 유의미하다면 당대에 이 문제를 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이 나라 국민들을 생존 경쟁에 매달리게 하는데 성공한 박정희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는 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박정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박근혜의 배반'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그 배반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러나 4년이라는 긴 세월을 들키지 않고 '대통령 놀이'를 즐기다가 결국 탄핵에 직면하게 된 사람이다. 그는 대통령 당선 이전에 이미 통치자로서의 역량이 현격히 부족하다는 것이 지적되었고, 다수의 유권자들 또한 그가 등장하는 여러 장면을 통해 그 결함을 '발견'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어떻게 청와대 입성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일차적으로는 이미 드러난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기 어려웠던 언론 상황,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전달을 오히려 방해하는 대선후보 TV토론 방식 등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보수 언론은 '문재인은 절대로 안 된다'는 미신에 가까운 전제에 근거, 결국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그들도 복을 빌며 그런 황당한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로 볼 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정치적 선택의 내공이 빈곤하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아직 많은 유권자들이 후보가 실제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었는지 판단할 만한 선택권자로서의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은 후보의 이미 확인된 무능함조차 주목하지 않는 기이한 특징을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 시대적 과제로 떠올라 있는 가장 간절한 화두는 땅바닥에 패대기쳐져 있는 '민주주의의 복원'과 '마피아 시스템의 청산'이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백성(民)이 주인(主)되는 정치체제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다들 열심히 민주주의 길 닦았으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수레바퀴를 완전히 거꾸로 돌렸다. 백성은, 주인은커녕 졸(卒)이었다. 우습게 알았다. 그렇게 나라가 이 꼴 되었다. 민주주의 할 의사도 없고, 민주주의 훈련도 전혀 되어있지 않은 부도덕한 막무가내 정권들이었다."(<대통령 복도 지지리 없는 나라> 6쪽)
저자는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총론적·원론적 해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전면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문에 가깝다. 따라서 해법치고는 매우 어려운 해법이다.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지난 국민의 선택이 이명박·박근혜라면, 그리고 최근에 드러나고 있듯이 적지 않은 이들(소위 보수인 척하는)이 여전히 함량 미달의 후보들에게 맹목적인 호감을 표하는 수준이라면, 아직 변화를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하늘이 점지하는 영웅적 후보의 탄생을 열망하는 이들의 문제는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저자는 그런 오판을 줄이기 위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주목한다. '하이에나 같은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 '바람잡이들이 사라져야 한다', ''금수저 문화' 당연시하는 공직자들이 대오각성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씨알들이 깨어나야 한다' 등.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으로 되어 있으나, 정작 국민은 이 나라 곳곳에서 개돼지 취급을 당하고 있다. 대통령으로부터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거들떠보지 않아도 되는 개돼지 취급을 당했다. 고착화하고 있는 신분 차이도 날로 두드러지는 중이다. 나향욱의 생각은 그렇게 혼자만의 것이 아닌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함석헌 선생이 강조하던 씨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씨알들은 우매하지 않다. 항상 당하고만 있지 않는 게 씨알이다. 이제는 씨알들이 그야말로 깨어 있는 씨알 노릇을 해야 한다. 더 이상 개돼지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이 나라의 씨알들은 스스로 눈높이도 높여야 한다."(위의 책, 51~52쪽)
물론 씨알들은 깨어나야 하고 특히, 언론은 그것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 관계가 왜곡된다면 양자 모두에게 손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언론 출신인 저자가 언론의 태도 변화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역시 이 문제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잘 알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JTBC의 사례를 보라. 그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언론단체로부터 상을 받는 복을 누리고는 있지만 연일 협박과 소송에 시달려 업무를 정상적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보수 언론들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는 지금도 여전하다. 박근혜를 공격하는 데까지가 그들의 역할이다.
"분서갱유의 다른 이름은 민주주의 짓뭉개기다. 이른바 좌파 성향의 언론사와 문화계 인사 등 정권에 불손하고 비판적인 1만여 명을 골라, 블랙리스트 딱지를 붙여 따로 관리하며 불이익을 주는 천벌 받을 짓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 나치나 빨갱이 정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삼권 분립한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법원장 사찰도 했다. 박근혜는 "모두 나는 모르는 일"이라 할 것이다. 박근혜는 자기와 최순실이 저지른 일까지도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를지도 모른다. 그렇다. 5천만 백성들이 너무나 안됐다. 불쌍하다. 그래서 대통령은 잘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다."(위의 책, 86~87쪽)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감정은 '분노'다. 무능하고 못된 대통령에 대한 분노, 그것을 이용하는 바람잡이들에 대한 분노, 언론에 대한 분노, 그리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씨알들에 대한 분노다.
'100만 촛불집회'가 온전하게 상징하고 있는바, 분노할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분노하라고 저자는 촉구하는 것이다. 분노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노예로 살기를 거부할 것이요, 그렇다면 바람잡이들의 어설픈 주인 노릇을 끝내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건강한 권위가 실종된 우리 현실에서 모처럼 귀를 기울일 만한 노익장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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