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반(反)이민 행정 명령은 미국뿐 아니라 무슬림 국가와 유럽연합(EU) 등 '전세계적'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민주주의의 삼권분립 대원칙을 흔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폭주와 사법부의 견제가 무섭게 충돌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미국 내에서 트럼프 '탄핵 운동'이 벌써 시작되었다."
지난 3일(금요일)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가 며칠 전 트럼프가 서명한 '반(反)이민' 행정 명령의 집행을 중단하라는 매우 이례적인 판정을 내렸다. 다음 날(토요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연방 항소 법원이 미국 법무부의 반(反)이민 행정 명령의 효력을 즉시 회복시켜달라는 긴급 요청을 기각하여, 미국 전체가 대혼란과 충격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한국보다 훨씬 더 엄중하고 철저한 '삼권 분립 원칙'에 입각한 미국 행정부와 사법부 간의 견제 제도가 한국 국민에게는 매우 생소하여,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을 둘러싸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법정 싸움과 국정 혼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혼란스러운 법정 공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 법률 상식 3개를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 삼권 분립의 원칙
첫째, 연방 지방 법원은 대통령의 행정 명령(Executive Order)이 헌법과 실정법(Statutory Law)에 어긋난다고 볼 때 이의 집행을 중단하라고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즉각적인 효력을 발생한다. 일개 연방 지방 법원이 행정부를 이처럼 강력히 견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자랑하는 삼권 분립의 원칙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행정부는 법무부를 통해 연방 지방 항소 법원에 중단된 행정 명령의 복구를 긴급 요청할 수 있고, 항고장을 접수시킬 수 있다. 항고장을 접수한 연방 지방 항소 법원은 항고를 담당할 판사를 임명하고 항고 심리를 시작해야 한다.
셋째, 연방 지방 항소 법원이 법무부의 항고를 기각하면, 법무부는 연방 대법원(The Supreme Court)에 다시 항고할 수 있다. 연방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보통 1년 이상 걸린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과 사법부의 충돌
이제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을 둘러싼 치열한 법정 공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1월 27일(금요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반이민 난민 행정 명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테러 위험이 높다고 보는 무슬림 7개 국(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미국 입국과 비자 발급을 90일 동안 금지하고, 난민 입국을 120일 동안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 행정 명령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 행정 명령은 7개 국 무슬림 국적자에게만 적용된다. 세계에는 46개 무슬림 국가가 있다.
둘째, 효력 기간이 일시적이다(90일과 120일).
셋째, 현재 미국 밖에 있는 외국인에게만 적용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3가지 특성을 부각하면서,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테러리스트의 입국을 방지하기 위한 한시적인 행정 명령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 행정 명령이 발표된 그날 이후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 곳곳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하고 유럽과 이슬람 국가 지도자들은 이 행정 명령의 즉각 철회를 주장하고, 일부 국가들은 보복 조치를 경고했다.
2월 3일(금요일): 워싱턴 주(州)의 시애틀 연방 지방 법원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은 "기독교인에게만 우호적이고 무슬림에게는 배타적인 결정이며, 이는 '헌법과 미국적인 가치'에 위배된다"며 이 행정 명령의 효력을 미국 전역에서 잠정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법원 가처분 '명령'(Injunction)이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이 명령이 소수의 특정 주(州)가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즉각적인 효력'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의 집행이 즉시 중단(Legal Limbo)되었다.
2월 4~5일: 트럼프 행정부는 법무부(DOJ)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제9 연방 항소 법원에 반이민 행정 명령의 즉각적인 복귀를 '긴급 요청'하고, 항고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제9 항소 법원은 법무부의 긴급 요청을 곧바로 기각하고, 이번 항고 사건을 맡게 될 판사 3명을 임명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연방 항소 법원은 피고 측인 법무부와 원고 측인 워싱턴과 미네소타 주에 항고심 절차 심리에 필요한 '추가 자료'를 6일(월요일)까지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여기서 정확히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미국 언론마저 이 점에 대해 혼란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 법원에 접수된 항고는 두 가지 측면(Aspects)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의 집행 중지를 명령한 시애틀 연방 지방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연방 지방 법원의 권한인지 아닌지를 심사하는 '기술적 문제(Technicality)',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의 행정 명령 자체가 대통령 권한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위헌' 심사이다.
본 칼럼은 시애틀 연방 지방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한 '기술적 문제'에 대한 항고 심리를 살펴본다.
트럼프의 트윗과 반대 진영의 싸움
트럼프 대통령은 4일과 5일 무려 7개의 트윗을 날리며 로바트 판사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과 사법부에 대한 협박성 트윗을 무려 7개나 날리며 법정 공박에 가세했다.
"소위(so-called) 판사라는 자가…"
"판사 한 명이 우리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와 사법 체계를 비난하라."
민주당 진영에서도 거센 반대 물결이 일고 있다. 전직 국무부 장관, 외교 안보 고위 관료, 대학 총장 등, 그리고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IT(정보 기술) 기업이 연방 항소 법원에 트럼프의 행정 명령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2월 6일(월요일): 이날 오후 7시 법무부와 워싱턴과 미네소타 두 주의 '추가 자료'를 접수한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 법원은 내일(2월 7일) 오후 6시에 전화 통화를 통한 첫 구두 변론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2월 7일(화요일): 예정대로 이날 오후 6시에 3명의 재판관과 피고와 원고 양쪽 진영 간의 구두 변론이 이루어졌다.
8일 아침 <워싱턴 포스트>는 1면 기사 "재판부의 날카로운 질문"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와 원고 양쪽에 매우 '송곳 같은' 기술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2월 9일: 샌프란시스코 제9 연방 항소 법원의 재판부는 이날 만장일치로 이슬람권 7개 국민의 미국 입국과 비자 발급을 일시적으로 금지한 행정 명령의 효력을 미국 전역에서 잠정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이민 관련 행정 명령과 사법부 '가처분'의 충돌 사례
여기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14년 '이민 개혁' 행정 명령이 연방 지방법원의 중단 가처분 판결에 부닥쳐 결국은 연방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사례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2014년 11월,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영주권자의 불법 체류자인 부모들에게 취업을 허가하는 '이민 개혁'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텍사스 등 주 정부가 이에 반발하면서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2015년 2월, 텍사스 주의 브라운스빌 연방 지방 법원이 오바마의 '이민 개혁' 행정 명령 효력 즉각 중단을 결정하자 법무부가 텍사스 연방 항소 법원에 항고를 접수했다.
2015년 11월, 위의 항소 법원이 법무부의 항고를 기각했다.
곧바로 법무부가 연방 대법원에 재항고하고, 2016년 6월 연방 대법원은 '찬성 반대 4 대 4'로 법무부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여기서 특히 강조할 점은 오바마가 서명한 행정 명령은 미국에 입국해 있는 불법 체류자에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로서, 현재 미국 밖에 있는 7개 무슬림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하는 트럼프 행정 명령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방 대법원에서 오바마의 이민 개혁 행정 명령을 기각하는데 걸린 시간이 1년 7개월이나 되어 막대한 행정 자원의 낭비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법정 공방 결과에 대한 전망은?
여러 가지 전망이 가능하다.
시나리오 1 : 만약 지난 9일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 법원이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면, 엄청난 국정 혼란과 분열이 생겼을 것이다. 시애틀 연방 지방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기각돼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의 효과가 복구된다. 이 경우 연방 지방 법원이 연방 대법원에 항고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시나리오 2 : 사안의 심각성과 국정의 혼란을 고려하여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 법원이 '절충 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었다. 현재 3명으로 이뤄진 재판부를 11명으로 늘리는 '전원 합의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피고인 법무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 어찌 됐건, 이런 시나리오 역시 현실화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 법원이 피고 법무부의 항고를 기각했으므로, 시나리오1과 시나리오2는 현실에서 멀어졌다.
그렇다면, 세 가지 가능성이 남는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가 패배를 인정하고 반이민 행정 명령의 중단을 선언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이민법이나 이민 행정 명령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고심 결정이 나오자 트위터를 통해 "법정에서 보자"고 밝혔다. 끝까지 법정 싸움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제 두 가지 가능성이 남았다.
미국 법무부가 연방 항소 법원의 행정 명령 복귀 기각 결정에 불복하고 연방 대법원에 다시 항고하는 경우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사법부의 법정 공방이 장기간(1년 이상) 지속하며 심각한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미국 헌정 사상 딱 한 번 있었던 사례를 트럼프가 따를 수도 있다. 법원의 항고 기각을 무시하고 행정 명령을 밀어붙이는 경우다. 이게 마지막 가능성인데,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시나리오를 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분명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정치와 조급한 성과주의의 결실인 반이민 행정 명령이 사법부의 견제와 국민의 반대에 부닥쳐 미국의 장래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혼란을 증폭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