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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사를 '조선' 논리로 해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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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사를 '조선' 논리로 해부하면

[김종배의 it]<265>박은주 부장 말이 맞다. 서울광장이 '대수'겠나?

제목이 이랬다.

'시위'가 '시민을 몰아낸 서울광장

기사 마지막 문장이 이랬다.

이제는 "휴식과 여가의 공간을 돌려 달라"는 말 없는 다수 시민의 호소에 답해야 할 때이다.

'조선일보' 보도다. '6월항쟁 계승과 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란 이름으로 서울광장을 '점거'한 것을 비판하기 위해 1면 머리에 배치한 기사다.

기사의 골격은 낯설지 않다. 그동안 줄기차게 펴온 주장을 재가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극소수 "목청 큰 집단들"이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말 없는 다수 시민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것을 비판한 내용이다.

삼가자. 일부 극소수 선동세력의 논리로 '조선일보'의 주장에 맞서려 하지 말자. 그래봤자 평행선이다. 소모적인 논란만 커진다.

의탁하자. '조선일보'의 논리로 '조선일보'의 기사를 해부하자. 같은 날 같은 지면에 실린 두 개의 칼럼에서 주장한 것을 잣대삼아 '조선일보'의 기사를 재자. '조선일보'의 입장이 얼마나 일관된 것인지, 얼마나 절절한 것인지, 또 얼마나 적확한 것인지를 재는 데 이처럼 유용하고 평화로운 방법은 없다.

크게 다를 건 없다. 한 칼럼은 '광장공포증'에 휩싸인 이명박 정부와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광장 인파"를 동시 비판하는 내용이고, 다른 칼럼은 서울광장에서 내보인 "좌파의 위선"을 맹공격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칼럼을 잣대로 삼고 다른 칼럼을 눈금으로 삼으려는 이유가 있다. 이런 논리 때문이다.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이 일갈했다. "사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건 광장 따위가 아니라 광장의 인파를 화합하는 민주적 태도와 절차"라고 했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서울광장이 대수이겠는가. 그건 단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서울광장이 갖는 지리적 위치와 사용용도가 아니라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외치는 소리다.

강천석 주필이 그랬다. "6월 10일 서울광장을 메운 군중의 절반은 이명박 정권 1년 4개월 세월이 불러모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반분은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10여만 인파를 '절반'으로 뚝 자른 게 눈에 거슬리지만 건너뛸 수 있다.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강천석 주필은 "이명박 정권 1년 4개월 세월"이, "국민 가슴속에 쌓여갔던 한숨과 분노가" 인파를 서울광장으로 이끈 점을 '절반'은 인정했다.

종합하자. '조선일보'의 두 칼럼에 의탁하면 결론이 나온다.

차라리 서울광장에 나무를 심어 시위를 막자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부질없다.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아니 잔디)만 보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광장의 인파를 화합하는 민주적 태도와 절차"다. "이명박 정권 3년 세월"이 "이명박 정권 1년 4개월"과 같으면 "광장 따위는" 진정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 조선일보 11일자 1면 기사ⓒ조선일보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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